하얗게 멍든 종이
며칠 전, 세 번째 소설을 투고했다.
정확히 말하면, 첫 번째는 자전적 소설, 두 번째는 성인을 위한 동화, 그리고 이번에도 다시 자전적 소설이니 소설만으로는 두 번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자꾸만 ‘자전적 소설‘일까?
자전적 소설로는 통틀어서 3부작을 계획하고 있다. 네 번째 작품이 바로 마지막이 될 터인데, 이제 그 글을 마치게 되면 비로소 과거로부터 대부분 좀 놓여날 것 같다.
만약 내 책을 읽어보시게 되면, 내 인생의 궤도가 벗어나게 된 보통 사람들은 결코 접하기 힘든 흔치 않은 사건이 있었음을 아시게 될 것이다. 오히려 그 일은 신문 기사만큼이나 담담하게 다루고 지나갔을지 모른다. 아직 그 일을 소설로 제대로 담기에는 내 역량이 부족하기에.
”지금으로선 출판사의 역량 부족으로 귀한 원고를 출판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더 좋은 인연을 만나 좋은 책으로 출간되길 기원합니다. “
“다만, 저희가 계획한 책들과 기획 방향이 다르고, 현재 발행 계획을 마친 후라서 출간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요즘에는 투고를 하는 작가지망생들이 사실 가장 큰 독자인 것을 인정해서 그런지, 또 투고 경험담과 받은 메일을 실시간으로 온라인에 공유를 해서 그런지, 출판사의 거절 메일도 한결 예의 바르고 정중해졌다.
그중에서 이런 문구들이 기억에 남는다. 아마 다시는 볼 일 없을 거라는 완곡한 표현이 될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왜냐하면 나는 계속 이런 식으로 글을 써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 결코 쉽지 않고 간단하지 않은 문제를 다룬다. 그러다 보니 힘든 출판 시장인데 출판사에 부담이나 위험을 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주요 출판사 위주로 서른 군데쯤 메일과 홈페이지를 통해 투고를 했다. 여태껏 소설을 낸 적이 없다고 거짓말했던 친한 친구에게도 이번에는 마음먹은 대로 이 사실을 고백했다. 이미 두 번의 경험이 있는 나는,
“아마 안될 거야. 그렇지만 될 데까지 내봐야지. 그리고 이제 글 쓰는 일로 먹고살려고 해.”라고 문두에 “이번에도”라는 말을 생략한 채 말했다.
대부분 1~2주의 검토 과정이 끝나면 답변을 주겠다는 자동 응답 메일이 왔고, 놀랍게도 한 곳에서는 벌써부터 계약 조건이 담긴 답변이 왔다. 교보 문고에 들러 한국 소설, 한국 에세이 섹션에서 동향을 파악해서 출판사 리스트를 직접 만들고 투고를 했는데, 그중 한 곳이 아마 반기획출판으로 유명한 곳이었던 것 같다.
덕분에 처음으로 ’반기획출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상세한 계약 조건, 마케팅 방법, 자부담 비용, 심지어 재고 발생 시 매입 조건까지도 나와있어서 참 좋았다. 솔깃할 만한 내용이고, 현실적으로도 나쁘지 않은 조건으로 보였다. 하지만, 성급하지 말라는 개인적이고 영적인 사인을 강하게 받아서, 아무리 내가 원하더라도 무슨 뜻인지는 시간을 두고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지금은 그저 출판사와 편집자의 역량에 기대어 볼 뿐이다. 거절 메일이 하나씩 오고 있는데, 그 결과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다고 한다면 명백한 거짓이다. 나는 그렇게 인격이 훌륭한 사람도 아니고 냉혈한도 아니니까. 다만, 출판계를 하늘이라 생각해 볼 때, 내 소설을 한 구석에 실어줄 안전하고 커다란 비행기를 만나기에는 쉽지 않다는 것쯤은 안다. 이미 작은 종이비행기를 두 번이나 날려보지 않았던가.
마지막 거절 메일을 받더라도, 혹은 운 좋게 비행기에 올라타더라도, 나는 상관없이 네 번째 글을 묵묵히 시작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