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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어 Jun 29. 2021

여행을 시작한 인간

책 <여행하는 인간>

얼마 전에 만났던 지인이 내게 주말을 어떻게 보내고 있냐고 물었다. 나는 집에만 있는다고 했고 지인은 어떻게 그러냐고 했다.


주말은 정말 중요하지 않느냐고. 평일에는 회사에 가고, 회사에 다녀오면 넉다운이고, 그렇게 평일은 회사에 갖다 바친다지만, 주말을 잘 보내야 다시 평일을 맞이하고 또 견딜 수 있지 않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그러지 못해서 평일에도 미쳐 있고 주말에도 미쳐 있고 그렇게 일주일 내내 미쳐 있다고 우스갯소리처럼 했다.


문득 생각해보니 언젠가부터 나는 최소한의 에너지로 살고 있었다. 언젠가부터가 아니라 회사를 다니고 나서부터 나는 오로지 나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으로만 일상을 굴리고 있었다. 더 행복해져야겠다는 것도 더 나아가야겠다는 것도 없고 그저 하루하루를 소모하고 견디기만 했다.


한동안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과의 왕래가 완전히 끊겨 나의 인간관계는 기껏해야 회사 사람들이 전부였다. 그런 무자극 상태였던 나에게 어쩌면 얼마 전 만난 지인은 새로운 자극이었는지도 모른다. 지인과의 자리가 있고 나서 내 안에 텅 비어 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텅 비어 있으니 채워야 해.'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 달 전이었나. 출근길 비좁은 지하철에서 누군가 읽고 있던 책 표지가 눈에 들어왔는데, 그 책은 바로 문요한 작가의 '여행하는 인간'이라는 책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 책을 사게 되었고 오늘 오랜만에 집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에 가서 책을 읽었다. 아직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이 책에는 벌써 내 인덱스 스티커가 가득해졌다. 와닿았던 문구들은 다음과 같다.



ㆍ아무런 불편이나 노력 없이 주어지는 편한 자극이 아니라 적절한 노력과 스트레스를 동반한 건강한 자극이 필요하다.(p23)

ㆍ모든 일탈이 창조를 의미하지는 않으며, 모든 반복이 안정을 의미하지도 않는다.(p32)

ㆍ지나친 시간 압박으로 인해 어떤 시간도 온전히 보내지 못하는 현대인의 시간은 '오염된 시간'이라고 부른다.(p48)

ㆍ그렇다면 진정한 휴식으로서의 여행이란 뭘까? 핵심은 휴식이 에너지를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를 채우는 것이라는 점이다.(p58)

ㆍ여행은 도시 동물원에 갇힌 현대인의 가장 대표적인 풍부화 프로그램이다.(p77)

ㆍ여행은 익숙한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일 뿐만 아니라 익숙한 자기로부터의 일탈이기도 하다.(p83)



책 속에 현대인들이 사회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집 안에서 사는 동물들이 느끼는 갑갑함에 대한 내용도 들어 있다. 그 부분을 읽다가 불현듯 나는 책을 접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강아지용품들을 챙겨 강아지와 함께 택시를 타고 애견카페로 향했다.


우리 집 강아지를 데리고 애견카페에 간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고, 첫 번째는 무려 1년 반도 전이었다. 나는 평소에 우리 집 강아지를 정말 챙기고, 산책도 자주 시다. 하지만 이런저런 핑계와 사정들로 함께 어디를 멀리 가 본 적도 없고, 애견카페를 열심히 다닌 적도 없고, 그렇기에 친구를 만들어준 적도 없었다.


책을 해 나는 하루 종일 놀아달라고 하는 강아지에게 종종 불만을 가졌던 나 자신을 돌아 보게 되다. 나는 '회사'라는 사회의 동물원에 갇혀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은데, 우리 집 강아지는 '집'이라는 또다른 동물원에 갇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폭풍처럼 죄책감이 밀려왔 것이다.


그동안 마음만 먹으면 몸을 조금 더 움직이면 해 줄 수 있었던 일들을 하지 않아 놓고서 일상적인 일들은 생색냈던 게 갑자기 너무 미안해졌다. 그래서 곧장 애견카페를 다녀왔다. 다른 강아지들과 어울리지 못하지만 어울리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일주일에 1번은 꼭 데려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오늘 하루를 보내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이 있다. 나는 단순히 우울하고 번아웃 상태인 게 아니라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원래는 했었지만 언젠가부터 하지 않고 있는 일들을 시작하는 게 필요했다. 


예를 들어 오늘처럼 책을 읽는 것, 책을 읽기 위해 카페에 가는 것, 우리 집 강아지를 위해 애견카페에 가는 것, 그리고 글을 쓰는 것 등.


나는 내가 생각을 많이 하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행동이 없는 생각들은 그 자체가 많은 생각이라고 볼 수 없었다. 알고 보니 나는 그저 똑같은 생각을 많이 했던 것뿐이었다. 행동이 있어야 진짜 생각이 많아진다. 그 이전과 다른 생각들이 많아진다. 그걸 오늘 느꼈다.   


깨달음은 늘 반짝하고 지나가는 것이기에 불안하지, 어쨌든 계속 고여있는 구정물 같은 내 모습은 정말 지긋지긋하다. 지원할까 말까 망설였던 독서모임에도 지원을 꼭 해야겠고, 글도 자주자주 써야겠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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