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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가는 길 Sep 14. 2020

나는야 칼 잘  쓰는 무사

수의사냐 무당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서 오세요. 무슨 일로 오셨나요???


"우리 아가... 밥을 안 먹어요..."

 언듯 봐도 반질반질 한 코에 미친 듯이 좋아서 헥헥거리는 말티즈를 앞에 두고 근심 어린 표정으로 말씀하신다. 

"아.. 그래요..?? 아무것도 안 먹어요???"

"아니 아니.. 고기를 주면 잘 먹긴 하는데.. 사료는 잘 안 먹요..."


하....

괴롭다. 동물병원은 흔히 소아과와 비슷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아픈 환자(환축)가 말을 잘 못하고, 보호자를 상대하고, 보호자를 통해서 정보를 얻는다는 점에서 유사할 수 있다. 하지만, 소아과에 내원하는 엄마들보다, 동물병원 보호자분들은 훨씬 더 애 상태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면서 바란다. 그냥 눈으로 보고 진단해 주기를...


" 우리 강아지가, 많이 아파요.."

" 어디가 아픈가요??"

" 모르겠어요. 그냥 어딘가가 아파요. 힘도 없고, 밥도 잘 안 먹고, 산책도 안 하려고 하고..///"

" 언제부터 이랬어요???"

" 한 반년 됐어요.."

"반년이나 됐는데 왜 오늘 오신 거예요? 뭔가 더 심해진 게 있나요??"

"아니요.. 오늘 시간이 나서요.."


음. 안 먹는다고 하지만 간식은 먹는단다. 산책을 잘 안 하려고 하지만 걷긴 잘 걷는단다.. 분명히 아파 보이지만 체중은 똑같다.. 음.. 어떻게 접근을 해야 할까.. 사람들은 아프면 과라도 나눠서 가는데...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아이는 내과, 외과, 치과, 안과, 정형외과, 내분비과, 비뇨기과, 신경외과, 정신과, 재활의학과.... 전부다 가능한 상황이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 정확히 증상을 잘 모르시면 오히려 검사를 많이 해봐야 알 수가 있어요. 
정 걱정이 많이 되시면 비용이 좀 들더라도 검사를 전체적으로 다 해볼까요???"


 비용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보호자분 눈빛이 바뀐다..

" 아니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척 보면 몰라요?? 무슨 병인지???"

믿기 어렵겠지만 수의사들이 정말 많이 듣는 소리 중에 하나이다. 

하루 종일 같이 사는 사람도 어느 부분이 아픈지도 모르면서, 그냥 얼굴만 보고 병명까지 알아맞히라니...

이럴 거면 눈빛만 봐도 간이 안 좋은지 알 수 있는 허경영 씨를 찾아가든가.. 

아니면 무당을 찾아가서 무슨 일인지 물어보는 게 낫지 않겠수???


그나마 일반적인 강아지들은 낫다. 만져보고, 걸려보고 라도 할 수 있으니...

손만 대도 하악 거리며 미친 듯이 예민해져 있는 고양이나, 날 어떻게 해서든 물어버리려고 이를 들어내고 있는 진돗개들은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한다. 

"우리 애가 참~~ 순해요.. 지금 좀 아파서 예민한가 봐..

고마 검사는 됐고, 밥 먹을 수 있게 해주는 주사나 한데 놔주고, 약주 이소..."


아버님.. 저도 그런 명약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냥 먹으면 병이 다 나아서 밥 잘 먹게 되는...

그 돈으로 그냥 부적하나 사서 기도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래도 전문직이라고 수의사도 '사' 자로 끝나는 직업이다. 하지만 하루에도 몇 명씩 이런 애들을 상대할 때면...   내가 무당인지 수의사인지가 헷갈리기 마련이다. 

그렇다. 나는 그래도 면허증은 있으니 무당이라 하긴 좀 그렇고, '사'자 직업인 무사 정도가 좋을 것 같다..

나름 수술하며 칼도 잘쓰니... 칼 잘 쓰는 조선의 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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