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2
햇살이 얇은 커튼을 뚫고 들어와 눈꺼풀 들어 올리려 애쓰고 있습니다.
늦봄이지만 아주 따갑습니다.
침실 창이 동쪽으로 나 있어 햇살의 부지런함 이길 수 없습니다.
무거운 눈꺼풀 치뜨며 햇살에게 졌다고 항복합니다.
덕분에 다른 날보다 일찍 출근했습니다.
문 열고 “좋은 아침입니다.”하고 인사하는데 코 끝에 익숙한 향기가 들어옵니다.
손에 든 가방 휙 집어던지고 화장실로 빠르게 달려갔습니다.
모란꽃님이 멋진 그림 그리고 계십니다.
그림 재료는 당신의 변.
이젠 놀랍지도 않습니다.
보행이 불편하신 모란꽃님은 워커(보행 보조기)에 의지해 걸어 다니십니다.
혹, 낙상이라도 하실까 봐 잡아 드리면 “나 아직 멀쩡해 저리 가” 하시며 거부하셔서 그냥 혼자 다니시게하고 시선만 따라다닙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엔 대변 나오는 시간보다 발걸음 옮기는 시간이 더 더뎠나 봅니다.
들어가셔서 하의 벗기 전에 대변이 속옷과 바짓가랑이 지나 바닥까지 흘러내렸던 것이었습니다.
모란꽃님은 스스로 처리하시려 했을 것입니다.
평소에도 혼자 처리하셨으니까요.
하지만 손끝이 예전처럼 야무지지 않고 무뎌져서 아무리 휴지 풀어서 닦아도 아리저리 물감 번지듯 번져 나가고 있었습니다.
이미 모란꽃님 혼자 수습할 단계는 지났습니다.
“내가 주책이야 왜 안 죽고 이 짓을 저지르고 있어? 빨리 죽어야지 죽어야 해” 하시며 자책하십니다.
자주 듣는 얘기라 별 대꾸 안 하고 어르신 케어하고 다른 요양보호사와 화장실 청소를 합니다.
청소 다 하고 나와 모란꽃님 방으로 가보니 모란꽃 님은 방에서 이불 얼굴까지 덮고 제가 들어온 걸 아시면서 주무시는 척하고 계십니다.
물론 인지장애(치매)는 있지만 아직 남아있는 약간의 인지로 인해 괜한 부끄러움을 느끼고 계셨나 봅니다.
저는 그냥 모란꽃님을 살포시 안아 드리고 토닥토닥해 드리며 “괜찮아요 어르신. 저 그런 일 해 드리려고 여기 왔어요. 괜찮아요” 하자, 모란꽃님이 이불 밖으로 얼굴 내밀며 물으십니다.
“괜찮아? 정말 괜찮아?”
“네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무얼 하시든 어떻게 하시든 정말 다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