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nd of N15Partners
지난 달, 잠깐 멈춤을 선언했다.
원인없는 결과가 없듯, 내 잠깐 멈춤 선언엔 앞서 있는 것들이 있다.
올해 3월, 회사에 입사하고 내가 관심있는 분야라는 생각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생각에 입사를 결정했다. 10월 말에 마침표를 찍은 셈이니 처음 계획했던 것보다는 퍽 짧은 기간이었지만, 확실한 터닝포인트가 되었기도 하고 새로운 환경에서의 성장과 함께 나를 더 명확하게 알게 된 과정이었다. 결코 후회된 선택이나 결정이 아니다. 이에 대해서 가볍게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기록의 시작
사실 이 '액셀을 밟다'를 연재하게 된 계기가 회사의 입사이니 인생에서의 큰 변화 중 하나이다. 기록은 단순 저축이 아닌 복리 이자를 주는 투자라고 생각한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행위는 내 어지러운 생각들이 정제되는 과정이고 이 기록들은 사라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고 나를 알릴 수도 있다. 블로그를 통해 실제 커피챗(오프라인으로 가볍게 대화하는 자리)까지 마련되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 내 정체성에 대해 조금 더 명확해지는 것도 느낄 수 있있다.
2.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프레임워크
프로그램 운영 업무를 하며 스타트업 선정, 발대식(킥오프), 지원사업비 관리, 컨설팅 매칭, 행사 등 하나의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전 과정들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쌓였다. 프로그램 제안서 작업에 참여하기도 하고 메인 프로그램 외 사내벤처 지원사업 등 다른 사업을 보조하며 액셀러레이팅 전반적인 생태계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3. 다양한 경험
해외출장의 기회가 내게 올 줄은 정말 몰랐다. 독일 뮌헨에 방문해 스타트업 컨퍼런스에 참여하고 우리가 보육하는 스타트업들에게 현지 전문가의 컨설팅 및 독일 진출 전략 등에 대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대표님들에게 공개적인 석상에서 사업비 집행 교육을 하는가 하면, 행사 주최자가 되어 케이터링부터 모든 것을 챙기는 과정을 리딩할 수 있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4. 자아성찰
내가 어떤 일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싫어하며,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더 확실한 기준이 생긴 듯 하다. 처음엔 상사가 시키는데로 무조건 따르며 배우는 것을 첫 번째 우선순위로 두고 행동을 취했는데 그게 만사는 아니였다. 나에 대해 잘 알고 때에 따라 거절하는 의사나 현명하게 내 영역을 확보하는 게 오히려 서로에게 지속가능한 환경과 성장 동력을 만드는 것을 깨달았다.
회사가 많은 배움의 기회를 주었지만, 그럼에도 회사의 방향성과 내가 맞지 않는다고 판단할 요소들이 많았다. 가장 크게 내 의욕을 꺾은 것은 업의 본질에 충실하지 못한 형식적인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처음 내가 기대했던 것은 정해진 시간과 예산 안에서 보육하는 스타트업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게 어떻게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날카롭게 운영할지 팀을 이뤄 회의하고 실행하는 과정이었다. 현실은 이러한 과정없이 '작년 그대로', '시간 없으니까 일단 넘기자'로 일관됐다.
나는 위에 대한 원인을 크게 2가지로 봤다.
① 회사 수익 구조(운영 상)
지난 연봉협상과 관련된 글에서의 이야기다. 한 직원이 회사에 유의미한 이득을 가져다 주려면 연봉의 최소 2배 많게는 3배 만큼의 가치(순수익)을 가져다 줘야 한다는 이론인데, 그런 관점에서 프로그램 운영 사업의 특성 상 인건비를 상회하는 수익을 남기기 힘들다. 회사의 변화(수익구조 다각화) 없이 인력을 고용해 업무를 분담하기엔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② 리더십의 부재
위처럼 제한된 자원 안에서 유의미한 가치를 창출하려면 경험 많고 능력있는 리더가 필요하다. 내가 그 역할을 하기엔 역량에 한계를 느꼈고, 나의 직속 상사는 사실 입사 후 얼마 되지 않아 회사에 퇴사 의사를 밝히고 현재 회사보다도 앞으로 자신의 장래에 신경을 쏟아 에너지가 분산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 회사 생활에서 '능력있는 사수'가 어떤 의미인지를 절실히 실감했다. 실력있고 열정있는 상사를 만나는 것은 회사에서 아니 어쩌면 인생에도 든든한 도움이 될 천운이다. 나도 그런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 보자!
이 외에도 많은 상황을 고려해 봤을 때, 회사에 있어야 할 이유보다 회사 밖에 서야할 이유가 커 지다보니, 스스로 독립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회사를 다니며 얻은 가장 큰 가치는 '나도 언젠가 스타트업을 돕는 액셀러레이터를 만들어 보자는 꿈'이다.
빌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해 컴퓨터 업계를 선도해 윈도우라는 업계의 표준을 세웠다. 토스는 무료 송금 서비스를 시작했고, 이후 대한민국의 모든 은행은 토스를 따라 송금 수수료를 없앴다. 이처럼 스타트업의 위대한 도전 끝에 이은 성공은 건설적인 방향의 업계 표준을 만든다. 나는 언젠가 업계 표준을 만드는 과정에 특화된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를 설립하는 꿈을 꿔 본다.
액셀러레이터로서 일하면서, 내가 스타트업 대표님의 입장이나 환경도 잘 모르면서 스타트업을 제대로 도와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가장 크게 생겼다. 이젠, 멀지만 확실하게 가는 방법을 택해볼까 한다. 내가 창업을 해 볼 것이다. 첫 시작은 복잡하고 어려운 기술 스타트업 창업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역량을 활용한 간단한 BM을 만들어 근로소득이 아닌 사업소득을 만드는 것이 될 것 같다.
홀로서기에 도전하며 수많은 창업 교육을 듣고 실제적인 경험들이 누적될 터인데, 당분간 '액셀을 밟다'는 액셀러레이터로서의 이야기가 아닌 초기 창업자로서의 실무적인 얘기로 꽉 차게 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