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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라 Mar 24. 2021

연애를 뭐하러 해요?

덕질이 이렇게 재미있는데

덕질을 잘 하지 않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덕통사고를 당한 후 입덕 루트를 타지 않고, 오히려 금방 덕통사고 현장을 잊는 걸 주위에서 많이 봐왔다. 우리 언니처럼 말이다.


덕후가 아닌 사람이 덕후를 신기하게 여기는 것처럼 덕후 입장에서 덕질하지 않는 사람들이 의아할 때가 있다. 언니를 보면 그렇다. 언니는 나랑 모든 게 정반대인 사람이다. 외모도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어 남들에게 언니 사진을 보여주면 하나같이 놀란다. 성격도 정반대, 취향도 정반대, 노는 스타일까지 다르다. 언젠가 언니에게 이런 말을 했더랬다.


“나는 낮이고 언니는 밤 같아”


언니도 공감하는지 그 이야기를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


언니는 어렸을 때 아이돌 그룹 멤버를 잠깐 좋아하다 말았다. 언니 인생에 덕질이란, 내가 봤을 땐 이 한 문장이 다다. 누구나 이상형인 연예인이 있는 것처럼 옛날부터 꾸준히 좋아하는 연예인이 몇 있긴 하다. 브래드 피트, 차승원, 장혁. 농담 삼아 언니에게 언니의 이상형은 하나같이 추노상(?)인 것 같다고 말했던 게 기억난다.


그러나 언니는 연예인을 좋아한다고 해서 나처럼 사진을 모은다거나, 영상을 일일이 찾아본다거나, 팬카페에 가입한다거나, 떡밥을 실시간으로 달린다거나, 굿즈를 산다거나, 트위터를 깔고 개인 계정을 찾아본다거나, 오프를 뛰진 않는다. 그냥 좋아하기만 하고 가끔 사진을 보는 정도다.


말도 안 돼! 좋아하는 연예인이 있는데 어떻게 단지 ‘좋아한다’라는 것에서 끝일 수가 있지? 오랫동안 좋아했는데 어떻게 덕질을 안 할 수가 있지?


언니는 몇 달에 한 번씩 오늘 꿈에 ‘누구’가 나와서 설렌다며 그를 덕질할 것처럼 언질을 주기도 한다. 그런 얘길 처음 들었을 땐 ‘드디어 언니도 덕후가 되는가’ 하며 덕후 자매가 될 생각에 잔뜩 설렜는데, 며칠 후 언니에게 그 ‘누구’의 근황을 물으니 생판 남의 소식을 왜 자기한테 묻느냐는 식이었다. 그럼 그렇지. 언니가 덕질을 할 리가 없지. 언니는 아무리 대단한 덕통사고를 당한다고 한들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툭툭 털고 묵묵히 가던 길을 갈 사람이다.




생각해보면 언니는 학창 시절부터 늘 남자 친구가 있었다. 내 인생에 덕질을 하지 않았던 날이 거의 없었던 것처럼 언니도 솔로로 지낸 기간이 다 합쳐봐야 몇 달 안 될 거다. 언니와 대화를 하다가 옛 남자 친구들 혹은 썸 탔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그게 누구였는지 머릿속으로 빅데이터를 뒤져야 할 때가 잦다.


마찬가지로 언니는 내가 덕질했던 모든 사람을 기억할 순 없을 것이다. 대개 덕질하는 사람은 연애에 관심이 없고, 줄곧 누군가와 연애하며 사는 사람들은 덕질에 별 흥미를 못 느끼는 것 같다. 덕질 DNA가 특정 사람들에게만 존재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도 살면서 몇 번의 연애를 한 적이 있었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년까지. 스무 살 다운 순수한 짝사랑도 해봤다. 연애하며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은 질리도록 경험해봤다. 다이어트를 하지도 않았는데 몸무게가 한 달 동안 5kg이나 빠졌을 만큼 힘들었던 적도 있었고,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마저도 아름다워 보일 정도로 행복한 적도 있었다. 연애하는 동안에도 덕질은 소소하게 이어졌는데 그것 때문에 남자 친구와 다툰 일이 많았다.


문제는 이런 연애 감정에 내가 일희일비한다는 것이었다. 남자 친구와 조금이라도 트러블이 생기면, 답이 정해져 있는 고민 상담으로 주위 사람들을 골치 아프게 만들곤 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지난 연애사 덕에 내가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범위가 좀 더 넓어졌다거나 감정이 풍부해졌을지는 몰라도, 과거의 연애는 현재의 나에게 어떤 방식으로도 도움되지 않았다. 영원히 잊고 싶은 사람이 하나 더 늘어났을 뿐.


더는 감정 낭비를 하는 데 시간을 쏟고 싶지 않을뿐더러 나는 비혼주의이기 때문에 앞으로 내 인생에 연애가 불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연애를 다짐한 지도 오래다. 마지막 연애를 한 지 벌써 4년이나 지났다.


연애와 덕질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그 본질은 비슷하지만, 분명 다르다. 언젠가 ‘연애는 둘이 하고 덕질은 혼자 하는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 말엔 공감하지 않는다. 당사자 중 어느 한쪽만 상대방을 사랑하고 있는 상태의 연애도 있을 테니.


내 생각에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점은 연애는 매우 현실적이지만 덕질은 환상에 가깝다는 것이다. 무엇을 하든 시간과 돈과 감정을 지불해야 한다면, 차라리 정신 건강에 더 나은 후자를 택하겠다. 둘 다 해본 결과 나에겐 그게 더 낫다. 이별 아니면 결혼만이 끝일 연애는 내 취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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