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젖은 초임 교사와 '억울함'을 레퍼토리로 읊는 아이들 사이에서
"교장 선생님, 잠깐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2학년 남자반 담임 선생님이 문을 열지도 못한 채 밖에서 머뭇거리신다. 열린 문틈 사이로 고개를 푹 숙인 학생 몇 명이 보였다. 직감적으로 사태를 파악하고 선생님을 모셨다. 자리에 앉기도 전, 선생님은 쏟아지는 눈물을 참으려 온몸에 힘을 주고 계셨다. 차가운 냉수 한 컵을 건네며 감정이 추스러지 기를 기다렸다.
선생님은 올해 우리 학교에 발령받은 초임이셨다. 고등학교에서 계약제 교원 경력은 있으셨지만, 고등학교와 중학교의 생리는 천지 차이다. 특히 '중2 남학생'이라는 미지의 존재를 대하는 실전 능력은 또 다른 영역의 문제였다.
"고등학교에 계시다 중학교 남학생 반을 맡으니 더 힘드시죠?"
나의 한마디에 선생님은 참았던 숨을 내뱉듯 답하셨다. "교장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제 눈높이가 너무 높았나 봅니다. 이 아이들을 그저 귀여운 강아지들이라 생각하고 제가 더 노력하겠습니다." 단 한 마디에 스스로 처방전을 내리는 젊은 교사의 뒷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짠했다.
아무리 고함을 쳐도 빤질거리며 자리에 앉지 않고, 희롱하듯 말대꾸를 하는 서른 명의 아이들. 그 떼거리의 기세 앞에서 홀로 선 교사의 고독을 나는 안다. 나는 선생님께 "힘들 땐 교장실로 언제든 보내라"는 확신과 함께, "가끔은 수업 대신 그저 아이들 앞에 서서 가만히 바라만 보라"는 나만의 노하우를 전하며 교실로 돌려보냈다.
"억울해요"라는 수십 년 된 레퍼토리
선생님이 나가고 교장실에 들어온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기가 팍 죽어 있었다. 하지만 입을 떼자마자 쏟아지는 변명은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별로 안 떠들었어요", "종소리를 못 들었어요", "저희만 잡혀 온 거예요, 억울해요."
나는 지질한 변명을 늘어놓는 아이들에게 역지사지의 질문을 던졌다. "너희는 서른 명이지만 선생님은 혼자야. 한 명이 조금씩만 떠들어도 선생님은 감당하기 어렵지 않겠니? 너희가 교탁 앞에 서 있는데 아무리 소리쳐도 학생들이 히죽거리며 말대꾸하면 기분이 어떻겠어?"
아이들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선생님께 사과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훈계가 끝나고 분위기를 조금 풀어주니, 내 눈치를 살살 보며 다시 자기들끼리 낄낄거리기 시작한다. 중2 때문에 북한이 못 쳐들어온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아이들의 뒷모습엔 대문짝만 한 글귀가 적혀 있는 듯했다.
[저희도 저희를 모르겠어요. 반항과 혼돈으로 몸부림치는 사춘기니까요!]
질풍노도의 처방전, 17자의 하이쿠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주말에 보았던 영화 <내 인생 특별한 숲 속 여행>의 주인공 '리키'가 생각났다. 사고뭉치 리키는 자신의 감정을 17자의 짧은 시, '하이쿠'로 적으며 마음을 치유한다.
우리나라의 시조보다도 짧은 그 압축적인 형식이 어쩌면 이 생각 없는(?) 중학생 아이들에게 딱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 반성문은 쓰기도 읽기도 고역이지만, 딱 17자라면 아이들의 엉뚱하고 발랄한 진심이 담길 수 있지 않을까.
'다음번에 교장실에 불려 오는 녀석들에겐 하이쿠를 적어오라는 미션을 줘야지.'
어느새 나는 다시 찾아올 사고뭉치(Trouble Maker)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의 반항을 '하이쿠'라는 예술로 승화시킬 수만 있다면, 내 몸속에 생길 뻔한 사리 백 개도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얘들아, 너무 많이는 반항하지 말거라. 대신 멋진 시 한 편 준비해 오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