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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Mar 17. 2023

아침에 회식하기 : CEO 조찬모임은 아닙니다만

5성급 호텔에서 조식 뷔페를 맛보며 아침에 회식하기

     예전에 팀장님이 다른 회사를 다녔을 때 고급 호텔에서 조식으로 회식을 한 적 있는데 그게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때 같이 다녔던 사람들을 만나면 아직도 그 얘기를 한다고 하면서 넌지시 다음과 같은 대사를 날리셨다.



아침에 회식을 하는 건 어떨까?
고급 호텔 조식으로.



     팀장님 입장에서야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며 하신 말씀이지만 팀원들 입장에선 영 엉뚱한 소리로만 들렸다. 요즘은 퇴근시간 끝나고 회식하는 건 개인시간 침범한다고 느껴서 싫어하는 사람이 많으니 사람들이 많이 선호하는 게 점심시간에 하는 회식이다. 그런데 회식을 아침에 한다고? 평소에 출근하기 바빠서 챙겨 먹지도 못하는 아침 식사를, 회사 사람들과 먹으려고 출근시간보다 더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그래서 그런가 다들 반응이 미적지근했고 나 또한 그랬다. 아침에 출근해서 회사 나오는 것 자체도 힘든데 회식을 하기 위해 더 일찍 일어나야 한다니. 게다가 난 아침을 거하게 먹는 타입도 아니다. 그래서 다들 팀장님이 몇 번이나 얘기해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그런데 이번에 또다시 이야기를 꺼내셨을 때 나는 이걸 브런치 소재거리로 써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브런치 소재가 안 되더라도 특이한 일이니 분명 기억에는 많이 남을 거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래서 팀장님께 '그럼 가시죠'라고 했다. 다행히 다른 팀원들도 동의해서 이번에야말로 아침 회식으로 호텔 조식을 먹으러 가게 되었다.


    호텔 조식은 7시부터 10시였는데 7시부터 만나기는 너무 이른 시각이라 8시에 만나기로 했다. 이 시간에 맞춰서 가려면 평소보다 집에서 30분은 빨리 나가야 했다. 그래서 전날 저녁에 일찍 자기로 결심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런 결심은 지켜지지 않는다. 그래도 늦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긴장해서 그런지 여섯 시부터 일어나 침대에서 뒹굴거리다 시간에 맞춰 일어났다. 미리 준비해 놓은 옷을 입고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출근시간보다 빨리 도착한 오늘의 회식장소 앞에서 한 컷. (@조선팰리스 강남)


     출근길의 버스의 인파를 뚫고 정류장에 내린다. 어라? 호텔 건물 아니었나? 왜 이렇게 이 건물로 들어가는 회사원들이 많지? 알고 보니 이 건물은 아래쪽은 사무실이고 일정 층 이상부터 호텔로 이용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버스로 지나다니면서 '이 사거리에 이런 건물이 언제 들어왔지? 높고 화려하네'라고 생각하며 쳐다본 적은 있었지만 그곳에 직접 들어오게 될 줄은 몰랐다.


     건물도 크고  찾기가 어렵다는 말이 있었는데 건물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직원이 보였다. 그래서 그분에게 직진해 호텔 조식뷔페를 먹으러 가려면 어디로 가야 되는지 바로 물어봤다. 평소의 나는 직감과 표지판에 의지하고 다니는 편이라 길을   묻는데 (부끄럽기도 하고) 오늘은 들어가자마자 길을 물어보는  목표로 삼고 곧바로 물어봤다. 그랬더니 정말 부담스러울 정도로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다.  정도 친절해야 5성급 호텔인가 보다.


     친절한 직원이 알려준 대로 잘 따라서 갔더니 호텔 입구를 한 번에 찾아서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팀원들과 만나기로 한 시간은 8시였는데 8시가 조금 되기 전에 도착한 내가 1등이었다. 다들 어디쯤 오는지 확인했더니 팀장님과 막내 사원은 살짝 늦고 동료는 거의 다 왔다고 했다. 동료가 오면 같이 들어가기로 하고 로비에서 기다렸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호텔 식당 입구에 이런 차림으로 서있는 게 어색하다. 동료가 와서 같이 입장했다. 조식뷔페는 예약을 안 받아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자리가 있었고 심지어 창가자리를 줬다. 오늘 하늘은 미세먼지가 낀 듯해서 시야 확보가 되지 않았지만 이곳은 강남구다. 미국으로 치면 뉴욕 한복판 정도 되려나? 아직까지 가보지도 않은 미국은 왜 이런 곳에 비유하는데 써먹어야 딱인 거 같은 느낌이 들까. 아무튼 24층인데도 불구하고 지대 때문에 그런 건지 주위에 있는 건물들이 낮아 보였다.



5성급 호텔에서 내려다 본 강남 시내와 거하게 먹은 아침식사. (@조선팰리스 강남)


     팀원들이 하나둘씩 도착하고 음식을 가지러 이동했다. 여태까지 뷔페는 점심 아니면 저녁에 먹었다 보니 아무래도 이렇게 이른 시간에 먹는 게 기분이 좀 이상하긴 하다. 그래도 배가 고프니까 이것저것 조금씩 담아본다. 맛있어 보여도 배가 금방 부를 거 같은 것들은 담지 않았고 수프도 조금만 덜었다.


     밥 먹으면서 팀장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지만 사실 귀에 잘 안 들어온다. (죄송...) 팀장님의 말소리보단 높은 천장과 그 공간을 메우는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마침 내가 요즘 좋아하는 재즈선율이 배경음악으로 흐르고 있었는데 그게 귀에 딱 꽂혀서 듣기 좋았다. 배가 조금씩 불러오니 기분이 느슨해졌다.


     주위를 슬쩍슬쩍 둘러보니 가족들 혹은 편한 사이인 듯 보이는 사람들과 와서 조식을 먹는 사람들은 호텔에 놀러 온 사람들일까? 투숙객 같지 않아 보이는 비즈니스맨도 있고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도 많이 보인다. 강남이라는, 위치가 위치인 만큼 이 근처 좋은 동네에 사시는 분들이 아침 식사하러 오신 건가 싶기도 하다. 아마 내가 모르는 그들만의 세계가 있겠지.


테이블이 있는 쪽은 대략 이런 분위기. (@조선팰리스 강남)



      접시를 먹고 나니 배가 벌써 불러온다. 그래서  번째 접시에 후식을 담아 마무리한다. 그동안 식곤증은 점심이나 저녁에만 해당되는  알았는데 아침에도 배불리 먹으니 식곤증이 오려는지 눈꺼풀이 무겁다.






     조찬 회식, 특별한 경험이었다. 보통 여러 기업의 대표들이 모여서 전경련 회관 같은 곳에서 '조찬 모임'을 한다는 뉴스를 들을 때 빼곤 '조찬 모임'이란 말을 써본 적이 없다. 큰 기업의 대표님들이야 따로 모일 시간이 없으니 일과 시작하기 전에 만나서 아침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는 걸 테지.


     하지만 일개 사원인 나는 그저 시간대를 바꿔 회식을 아침에 하러 왔을 뿐인데, 바쁜 하루를 쪼개서 조찬 모임을 하는 기업 회장님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보통은 회식이 끝나면 집으로 가는데 오늘은 회식이 끝났지만 일을 하러 가야 하는 평소와는 다른 사이클이 어색하다. 어쨌거나 팀장님 말대로 기억에 남는 회식이 될 것임에는 분명하다.


    만약 세월이 흘러, 혹시라도 내가 회장님이나 대표님이 되어 조찬모임에 참석한다면... 지금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웃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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