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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도 아니고 동남아도 아니고 중국 배낭여행

2. 확실한 건 여행하기 어려운 나라, 중국

by 리우화


1. 방방곳곳 여행하는 사람


나는 역마살이 꼈다.

고향은 대전, 대학은 전라도 광주, 직장은 서울.

이 조그만 나라의 상중하부에서 30년을 나눠 산 셈이다.


해외여행도 좋아한다.

대학생 땐 아르바이트비를 모아서 갔고 직장인이 되고 나선 식비를 줄여 떠났다.

일본과 중국, 태국, 러시아, 라오스, 태국, 홍콩, 대만 등.

손가락을 접어 보면 서른 곳 정도 된다.


내 인생 첫 해외여행은 한겨울에 가족과 떠난 중국 베이징이다.

비행기를 나는 자동차 정도로 인식한 8살 무렵이었다.

소탈한 도시인 대전에서만 살았던 내게 베이징과의 첫 조우는 충격이었다.


휘황찬란한 금빛으로 물들여진 자금성

커다란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내걸린 붉은 벽돌의 천안문

푸른 언덕 위 끝없이 이어진 회색 물결의 만리장성.


어찌나 생경한 정경이었던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쌀쌀한 바람이 볼에 스치면 그날 걷던 베이징 거리가 떠오른다.


2. 여행하기 어려운 나라, 중국


세월이 지나 성인이 되고 홀로 떠나 온 중국은 다른 의미로 생경했다.

중국은 분명 여행하기 어려운 나라다.


여행을 떠나기 앞서 필요한 비자부터 관문이 높다.

중국 비자를 작성해 보면 알겠지만 어리둥절의 연속이다.

부모님의 직업부터 시작해 회사 이름과 직장 상사 번호까지 까야한다.


어렵사리 비자 신청서를 작성해도 발급까지 통상 일주일이 걸린다.

심사도 까다로워서 정보 불충분으로 반려되기도 한다.

2025년은 중국 정부가 한시적으로 30일 무비자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턱을 낮췄지만

내년까지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여행을 떠난 후에도 문제다.

중국을 다녀온 이들이 가장 많이 뽑는 어려움 중 하나가 ‘영어가 안 통한다’는 것.

최근 AI기능으로 번역기 정확도가 높아진 게 감사할 따름이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 대도시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영어가 나름 통하지만

외곽으로 나가면 영어는 물론 번역기로 해석해도 소통이 막히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일반 대화 수준으로 중국어를 할 줄 아는 나도 비관광지로 나가면 바디랭귀지의 달인이 된다.


생경한 음식도 여행을 결심하기 힘든 배경으로 거론된다.

중국은 유독 생소한 재료를 잘 활용한다.

귀뚜라미나 지네 등 곤충은 물론 발효 달걀(皮蛋), 개구리, 취두부 등

진정 오감을 의심케 한다.


3. 중국 여행이 낯선 당신에게


어쨌든 중국은 도시가 아무리 많아도

베이징이나 상하이, 청두, 하얼빈 같은 유명시들만 가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거리마다 마라탕이나 탕후루, 라티아오 같은 중국 음식들을 흔하게 찾아볼 수 있지만

여행 자체는 먼 나라 이웃나라 수준으로 친밀도가 낮다.


동서남북 별로 만날 수 있는 관광지가 천차만별인 만큼

일부 도시들만 국내에 이름을 알려진 상황은 퍽 아쉬울 따름이다.



이번에 내가 방문하는 주요 여행지는

중국 남서부에 위치한 ‘윈난성(云南)’과 중서부에 위치한 ’ 쓰촨 성(四川)’,

그리고 하웨이의 본거지로 유명한 선전(深圳), 그와 인접한 홍콩이 최종 도착지다.


윈난성과 쓰촨 성은 여러 도시들을 구경하며 루트를 짜기 좋다.

윈난성의 수도 쿤밍에서 시작해

따리, 리장, 호도협, 샹그릴라, 쓰촨 성의 수도 청두, 구채구 등

세계테마기행에서 자주 나오는 여행지들이 집중돼 있다.


이들 지역은 소수민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윈난성의 경우 중국의 소수민족 25개 15개의 소수민족이 8개 자치구를 이루고 살고 있다.


백족과 나시족 등

오랜 전통을 지켜 온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지 궁금했다.

‘건물이 사는 공간’이 아닌 ‘사람이 사는 공간‘을 거닐고 싶었다.


거시적인 변화 속 빠르게 발전하는 인공지능의 사회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속도로 천천히 역사를 걷는 이들의 터전.


여느 여행지를 가든 흔히 만나는

높은 빌딩들과 프랜차이즈 식당들을 한 번쯤은 피해 가고 싶었달까.




쓰촨 성을 가는 이유는 꽤 단순하다.

‘미식의 도시’로 불리는 쓰촨은 중국에서 가장 매운 요리들이 탄생한 지역이다.


고추, 생강, 마늘, 화지아오(쓰촨 후추) 등 한 맵기 하는 재료들이 총출동한다.

집에서도 매운 뱡뱡면(油泼扯面)나

마라룽샤(麻辣龙虾)를 직접 해 먹는 나로선

쓰촨 여행은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허궈(火锅, 고기나 야채 등 건더기를 국물에 넣어 익혀 먹는 음식)는

20년 전 베이징에서 첫 숟가락을 뜨고 지금까지도 사랑에 푹 빠진 메뉴다.


내 혀의 매운맛 감각을 일깨워 준 최초의 음식이랄까.

내 언젠가 쓰촨에서 진또배기 허궈를 먹어보리라 다짐했던 게 이번 여행까지 왔다.

‘스푸파‘(스트리트푸드파이터)도 아니고 허궈 찾아 삼만리를 한다는 게 웃기긴 하지만.


4. 왜, 중국 배낭여행


처음 중국 배낭 간다고 했을 때 주변 이들은 의아해했다.

유럽이나 동남아 배낭여행은 많이 들어봤어도 중국 배낭여행은 생소한 단어 조합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혼자 떠난다고 하니 위험하다, 무섭진 않냐는 걱정도 꼬리 물듯 따라왔다.


사실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남들이 볼 땐 강인해 보일지 몰라도 울보에 겁도 많은 어른이다.

여행을 준비하는 3주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식은땀 줄줄 나는 꿈을 꿀 정도였다.


다만 오래 꿈꿔 온 여행인 만큼 더는 걸음을 지체해선 안 된다.

매일이 치열한 서울에서 기자란 이름으로 하루하루 잘 살아냈으니

어디서 무얼 하든 지난날의 나를 믿고 용기를 내보자.


뭐든 기록하는 습관을 못 버려

이번에도 맘 편히 쉬지 못하고 여행기를 작성하다만.

중국 배낭여행도 충분히 유럽만큼 낭만이 있다는 걸 수많은 활자에 담아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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