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중국 배낭 여행, 준비부터 쉽지 않네
1. 쉽지 않은 사전 준비
“캐리어를 안 들고 간다고? 맨 몸 여행이야?“
수화기 너머로 엄마의 황당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캐리어만큼 큰 배낭을 들고 간다고 말했고 엄마는 곧장 “네가 그걸 맨다고?”라며 받아쳤다.
또래보다도 왜소한 체구인 내가 키의 절반인 배낭을 메고 떠난다는 말이 영 납득되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이번 여행도 여느 여행처럼 캐리어를 끌고 가려고 했다.
다만 캐리어 끄는 소리를 싫어하는 나로선 한 달 내내 그 소음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섬뜩했다.
배낭은 짐을 채워 넣으면 내 몸집만큼 뚱뚱해지지만 들들 거리는 소리보단 나았다.
(그리고 정확히 여행 하루 만에 뭐든 캐리어가 만배 천배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배낭은 중고거래로 3만 원에 구했다.
판매자는 눈두덩이를 뒤덮는 아이라인에 입술엔 은색 피어싱을 낀 여성분이었다.
거래 현장에도 삐까뻔쩍한 오토바이를 타고 힙하게 등장했다.
“저랑 5년 동안 산이고 바다고 함께 했던 백패킹 가방이에요.
이번엔 좀 더 큰 배낭을 구매했거든요. 험한 꼴 다 본 가방이니 아주 튼튼할 거예요.”
판매자는 내 등에 가방을 매주며 말했다.
중고 물건은 누군가의 소원과 추억이 깃들어 있어
다음 사용자에게도 좋은 경험을 선물해 준다.
2. 처음으로 ‘예쁘지 않은’ 해외여행
옷은 생각보다 긴 고민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이번 여행은 꾸미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곳에서 몸의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다.
해외여행을 가면서 처음으로 예쁜 옷과 구두를 뺐다.
화장품은 선크림만 챙겼고 액세서리는 보관함에 고이 넣어놨다.
덕분에 무채색의 티셔츠와 청바지로 가득 찬 배낭 속은 칙칙하기 그지없었다.
원피스 입기 딱 좋은 봄이었지만 별 수 없었다.
문제는 약. 감기약과 두통약은 물론 고산병 약도 필요했다.
다만 의사 처방이 필요한 고산병 약은 구하기 영 쉽지 않았다.
집 근처 내과를 세 곳이나 돌았지만 모두 퇴짜맞았다.
약이 없으면 산소통이라도 람보처럼 두르고 가야겠다는
이상한 플랜 B를 세우며 내과를 찾았다.
3. 우울로 시작하는, 여행
중년의 내과 의사 선생님은
“조그만 아가씨가 어딜 가려고요. 히말라야? 스위스? “라며 묻는다.
고산병 약은 가격에 따라 두 종류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비아그라라고 한다.
혈관 확장제 약물로 고산병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나.
여성으로 살면서 비아그라 먹을 일은 평생 없을 듯해 호기를 부려 볼까 하다가 단념했다.
다른 약 하나는 영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며 인근 약국의 약사님께 전화를 걸었다.
“아이고, 그게 뭐였죠? 기억이 안 나는데.” 약사님도 약 이름을 까먹을 때도 있구나.
이상한 구석에서 묘한 위로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과 약사님이 약 이름 맞추기 스무고개를 하는 동안 나는 간단한 기능 검사를 받았다.
조그만 모니터 화면으로 집중력을 테스트하는 빛이 번쩍번쩍했다.
머릿속은 약을 처방받지 못했을 경우의 플랜들로 엉켜서 영 딴생각이 가득했다.
검진실로 들어가자 의사 선생님은 방긋 웃으며 약 이름이 적힌 메모지를 흔들었다.
”아세타 졸정! 아유, 맞아요. 몇 해 전에 에베레스트를 간다는 환자 이후로 첫 처방이라 아주 까먹었지 뭐예요.”
다행이다. 람보처럼 산소통을 짊어지지 않아도 되겠군.
다만 의사 선생님은 서비스 차원에서 해주었던 기능 검사지를 눈 앞에 내밀며 말했다.
“그런데 다음 주에 여행 가는 사람 맞아요?
수면이랑 집중력 모두 좋은데 기력이 너무 낮아요.
우울도 높고. 약도 약이지만 컨디션 관리를 잘해야지.”
현대 의학의 정확도에 겸연쩍게 웃었다.
여행을 다녀와서 재검사를 해봐야겠다.
그땐 분명, 좋아졌으리란 희미한 희망을 걸어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