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윈난성 먹거리 천국을 만나다
1. 윈난성의 수도, 꽃의 도시 ‘쿤밍’
쿤밍의 번화가인 탕쯔항(塘子巷)역에 도착하자 거리에 쭉 늘어선 전동차가 보인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도로에 정차해 있는 수많은 헬멧 무리들을 볼 때면 전경이 아닐 수 없다.
신호등 색깔과 상관없이 전동차 한 두 대가 코 앞을 휑 지나가 몇 차례 뒷걸음질 친다.
한국에서 킥라니(전동킥보드와 고라니를 합친 말)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이런 기분이려나.
쿤밍 도심은 서울 강남처럼 고층 건물로 가득하지만 묘하게 소박함이 느껴진다.
젊은 사람보단 중장년층이 많고 가게마다 틀어 놓는 음악도 없이 조용하다.
거리에는 파인애플과 수박, 딸기 등 과일을 파는 잡상인들로 단내가 폴폴 풍긴다.
윈난은 따뜻한 날씨만큼이나 당도 높은 과일로 유명하다.
날씨 덕분에 여러 품종의 꽃을 구경할 수 있단 점도 특징인데
젊은 청년들이 머리에 화관을 이고 지나가는 모습은 흔하게 만날 수 있다.
2. 취두부쌀국수와 우유미포
금강산도 식후경이지. 숙소 체크인 시간도 남았겠다 미리 찾아 놓은 윈난 전통 음식점으로 향했다.
윈난성은 미씨엔(米线)이 적힌 식당 간판이 많다.
쿤밍에서 유래한 이 음식은 중국식 쌀국수로 우동면보단 얇고 쌀국수면보단 두꺼운 면발이 특징이다.
아주 옛날 가난한 학생이 먹을 게 없어 배를 곯자
어머니가 닭 육수에 여러 채소와 고기를 넣고 끓인 게 현재 쿤밍을 대표하는 요리가 됐다.
이 식당은 대표 미씨엔 요리가 취두부, 돼지뇌, 쇠고기다.
이왕 중국에 온 김에 취두부미씨엔(臭豆腐米线)과 흰색 죽처럼 생긴 우유미포(鲜奶米哺)를 주문했다.
우유미포는 쿤밍에서 맛볼 수 있는 쌀밥으로 쌀국수와 흰 우유, 백설탕을 섞어 만든다.
우유량에 따라 묽어지거나 걸쭉해진다. 과거엔 이유식으로 쓰였지만 지금은 길거리 간식으로 먹는다.
주문한 지 10분 채 되지 않아 음식이 나왔다.
우유미포는 그릭요구르트보단 크리미 하고 죽보단 걸쭉한 우유 크림 같은 요리다.
고소하면서 살짝 달달한 게 아침밥으로 좋아 보였다.
취두부 미씨엔은 항아리 모양 뚝배기에 담아 나오는데 취두부 때문인지 큼큼한 향이 났다.
매운탕에 중국 향신료가 가미된 맛으로 목이 알싸할 정도로 얼큰했다.
오통통한 면발은 씹기에 부드러웠다. 한국에서 ‘운남 쌀국수’란 이름으로 인기가 좋은 이유가 있다.
쿤밍에서 나흘간 머무를 숙소는 하루 8000원의 객잔(客栈, 중국의 숙박시설)이다.
그도 그럴 게 12명과 한 방을 같이 쓴다. 혼자 해외여행을 가면 숙박비를 덜기 위해 대게 저렴한 유스호스텔을 이용한다.
공용 화장실이나 샤워실 정도의 불편을 감수하면 지내기에 나쁘지 않다.
3. 21살, 꽃 사러 온 낭만 소녀 ‘니니’
직원의 안내를 따라 배정된 방에 들어가니 창가 아래 한 여성이 꽃꽂이에 매진하고 있다.
2층 침대에 짐을 올려놓고 사물함 사용법을 물어보는 척 살짝 말을 붙여봤다.
그녀의 이름은 ‘니니(倪妮)‘. 옆 도시 다리(大理)에서 온 21살 대학생이다.
”너 진짜 한국인이야? 너네 나라 노래 정말 좋아해. “
니니는 반가운 얼굴로 가방에 달린 뉴진스 ‘민지’의 포토카드를 보여준다.
한류 인기에 내심 어깨가 올라간다.
니니는 어젯밤 아시아 최대 꽃 시장인 더우난 화훼시장(斗南花卉市场)에서 꽃을 한 아름 사들고 왔다.
낮보단 밤에 신선한 꽃이 많아 일부로 하룻밤 묵을 숙소도 잡았단다.
꽃다발은 누구를 주려는 지 묻자 니니는 발그레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엄마 갖다 줄 거야. 꽃을 좋아하시거든. “
아쉽게도 니니는 내일 다시 다리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짧은 작별 인사를 건네고 그녀는 다시 꽃꽂이에 빠져든다.
방에 가득했던 싱그러운 꽃 향기가 문득 니니에게서 풍겨오는 듯했다.
3. 중국 윈난 대표 야시장 속으로
쿤밍에서 가장 오래된 거리인 난핑시에(南屏街)는
상점과 쇼핑몰이 밀집돼 있어 명동을 떠올리게 한다.
길거리 음식의 천국으로 양꼬치(羊肉串), 그물버섯(牛肝菌)
마라빤(麻辣拌), 카오루샨(烤乳扇)등 다양한 먹거리를 만날 수 있다.
윈난성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음식들이 많다 보니
같은 중국인들도 신기해하며 음식의 이름을 묻는 이들이 많았다
밤을 맞이한 난핑지에는 화려함의 극치다.
영화 <코코>에 나온 죽은 자들의 도시처럼 눈이 닿는 모든 곳이 알록달록한 전등으로 가득하다.
오후 내내 안 보이던 젊은 이들이 어딜 갔나 했더니 여기 다 모여있다.
취두부(臭豆腐)와 다진 고기가 들어간 빵인 니우로우삥(牛肉饼)을사서 아무 데나 걸쳐 앉았다.
니우로우삥이야 중국에 갈 때마다 먹는 메뉴지만은 취두부는 처음이다.
그간 역한 냄새에 되려 탈이 날까 한 번도 시도하지 못했다.
그러나 호기롭게 여기까지 왔는데 꺼릴 게 뭐 있겠나.
한 입 크게 물자 코를 찌르던 시큼한 향은 금세 가시고 단백함만이 혀를 감싼다.
이거, 꽤 내 스타일이잖아? 배고픈 와중에 게눈 감추듯 다 먹었다.
뭐든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영원히 진가를 모른다니까.
다 먹고나니 고단한 피곤이 몰려와 해가 지기 전 숙소로 돌아갔다.
세면도구를 챙겨 샤워실에 들어가니 웬 상의를 훌렁 벗은 중국 남자가 샤워실에서 불쑥 나온다.
아뿔싸, 남자 샤워실에 잘못 들어갔나? 알고 보니 남녀 공용 화장실, 공용 샤워실이다.
어느 숙소를 가든 남녀 공용 샤워실은 결코 안 된다는 아빠의 단호한 눈빛이 떠올랐다.
미안, 아빠. 첫날부터 진귀한 광경을 봐버렸지 뭐야.
벌게진 얼굴로 씻는 둥 마는 둥 고양이 세수를 하고 샤워실을 빠져나왔다.
리우화의 여행지도
[금마벽계방(金马碧鸡坊)]
난핑지에로 가는 길목에 황금 말과 봉황의 전설이 깃든 금마벽계방(金马碧鸡坊)이 있다. 동쪽 기둥은 진마팡, 서쪽 기둥은 비지팡으로 부른다. 60년마다 한 번씩 진마팡의 그림자와 비지 팡의 달그림자가 하나로 이어지는 전경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