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손등에 맞춘 영원한 작별 키스
1. 부고
여행 첫날 저녁을 먹으려 난핑지에로 향하던 길이었다.
하늘은 노을이 밀려와 붉은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데 오빠에게서 카카오톡 보이스톡이 걸려왔다.
“외할머니가 방금 돌아가셨어.”
세상의 시간이 멈춘 듯한 기시감을 느끼며 걸음을 멈춰 섰다.
어째서 오늘일까. 무슨 죄를 지었길래 타지에서 부고를 들어야 했을까.
가장 먼저 엄마가 생각났다. 차마 목소리를 들을 자신이 없어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에게서 ‘여행 끝나고 오면 산소에 같이 가자’란 답이 돌아왔다.
근처 화단에 무너지듯 앉았다. 몸이 밤안개처럼 무겁게 가라앉았다.
2.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뵙던 날
중국 출국 이틀 전이었다. 배낭에 넣을 옷을 정리하고 있는데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지셨네. 얼굴도 오락가락하시고.
네 이름도 잊어버리기 전에 주말에 와서 얼굴 뵙는 건 어때? “
남은 짐을 서둘러 챙겨 놓고 아침 일찍 순천행 기차표를 끊었다.
엄마 목소리가 신경 쓰일 만큼 어두웠다.
할머니는 유방암과 사투하고 있었다.
서울을 오가며 치료를 받았지만 암은 작은 몸 전체로 천천히 전이 됐다.
아흔에 가까운 연세로 큰 수술은 받지 못하고 당신의 소원대로 집에서 요양을 시작했다.
할머니는 가만히 있어도 팔 신경이 시리다며 자주 애달파하셨다.
올곧았던 허리는 굽었고 말 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정신도 마음도 정정했던 할머니는 집안일은 물론 정원 관리도 척척 해냈다.
그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당신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런데 몇 주 만에 사람이 이렇게 쇠약해질 수 있는 걸까.
할머니는 미동도 없이 거실 소파에 누워 계셨다. 살이 빠진 팔다리에는 강인했던 삶만 희미하게 붙어 있었다.
한 마디 말씀도 하지 못했고 누가 업어야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었다.
테이블에는 엄마가 사다 놓은 조각 케이크와 두유, 검은 죽 등이 어지러히 올려져 있었다.
“주변에서 올해를 넘기지 못할 거라 하더라고. 아직 4월인데.”
엄마가 ‘아직’을 강조하며 말했다. 엄마는 다음 달에도 그다음 달에도 아직, 아직 할 테다.
이별하기엔 영원히 이른 아직이기에.
할머니는 나를 보더니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특히나 손녀들을 애틋하게 여겼던 당신은 내 얼굴만 보면 항상 “아이고, 예뻐라”하며 볼을 쓰다듬었다.
나를 보면 젊은 시절의 엄마가 떠올라 재미있다면서.
순천 집을 갈 때마다 얼굴 가득 띄우던 해사한 미소가 떠올라 불쑥 눈물이 났다.
상태가 더 악화되기 전에 요양원에 입원하는 게 낫지 않냐 물으니 엄마가 고개를 젓는다.
“할아버지가 워낙 할머니랑 떨어지기 싫어하셔서. 요양원에 가면 본인도 같이 입원해 2인실을 쓴다고 하시잖니.”
사랑꾼 할아버지는 직접 콩을 갈아 두유를 만들고 시장에서 사 온 과일을 썰어 할머니 식사를 차렸다.
할머니가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면 그는 멀리서도 달려와 작은 손을 맞잡았다.
사랑은 가끔 눈에 보이기도 한다는 걸 그들을 통해 배웠다.
3. 이별은 순간이라서
가족 모두 집으로 귀가하는 익일 아침, 할머니는 하룻밤 사이 눈에 띄게 더욱 수척해졌다.
“오늘따라 이상하네. 컨디션이 왜 이리 안 좋지?”
엄마는 미음도 거부하는 할머니 옆에서 쩔쩔매며 말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당신은 그날 영원한 이별을 직감했던 것 같다.
“할머니, 나 중국 갔다가 올게. 간식도 사들고 올게. 담에 봐.”
서울행 버스를 타러 가기 전 할머니는 천천히 눈을 들어 나를 쳐다봤다.
그리곤 있는 대로 힘을 내어 내 손목에 키스를 했다.
그게 정말 마지막 인사인 줄 알았다면.
나도 장난꾸러기처럼 당신의 손목에 입을 맞출걸.
당신의 작은 몸을 있는 힘껏 크게 끌어안을 걸.
밤이 깊어지자 웅성웅성하던 방 불도 하나 둘 꺼졌다.
내일 계획한 일정을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침대 보조등을 껐다.
문득 몇 해 전 할머니의 생신을 맞아 전 식구가 옹기종기 모였던 일이 생각났다.
바닷가 근처에 사는 삼촌 덕분에 회고 전복이고 해산물로 가득한 술상과 함께 작은 잔치를 벌였던 봄이었다.
왁자지껄했던 술자리가 새벽 넘어 끝나고 하나 둘 귀가할 무렵이었다.
할머니는 내 이름을 불러 세우곤 두 손을 가만히 감싸 쥐며 말했다.
”우화아, 지금처럼만 살아“라고.
그 말이 평생의 힘이 되어 오늘의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걸 할머니는 아실까.
내 자신이 문득 잘못된 것 같아 우울로 빠져들 때. 과거의 후회 속에서 끊임없이 자책할 때.
그저, 나답게 잘 살아가면 된다고. 멈춰 있던 나를 언제나 다시 걷게 했던 건 그 한 마디였음을.
할머니. 하늘나라 가시는 길, 걸음걸음마다 평온하세요.
부디 아무런 고통도 없이 아픔도 없이.
내게 보여주신 행복한 웃음으로 매일을 살아가세요.
내 엄마의 엄마가 되어 주셔서 고마워요. 안녕히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