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쿤밍 대관신농산물시장에서 만난 그들의 식재료
*오늘 올린 사진들은 보기에 꺼려질 있는 식재료가 담겨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1. 사람 냄새가 나는 시장 속으로, 대관신농산물시장
서울에 살며 한 달에 한 번 꼭 찾는 곳이 있다.
바로 종로에 위치한 ‘광장시장‘이다.
낮이나 밤이나 외국 관광객들로 왁자지껄한 그곳은 먹거리 천국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호떡을 비롯해
순대, 닭강정, 육회, 라면 등 서민 음식이라 칭하는 요깃거리들이 사방에서 맛난 냄새를 폴폴 풍긴다.
목청 높여 호객하는 상인들에게선 회색빛으로 가득 찬 도심 속 사람다운 온기가 느껴지곤 했다.
중국의 시장은 어떨까.
저녁노을이 질 무렵 디디(滴滴,중국 택시)를 불러 대관신농산물시장(大观篆新农贸市场)으로 향했다.
내가 태어난 연도인 1997년에 설립된 이 시장은 600여 개의 노점이 위치해 있다.
일반 시장처럼 과일과 채소, 고기 등 서민 식탁을 책임지는 식재료들이 가득하다.
쿤밍은 따뜻한 기후 덕분에 갖종 과일을 저렴한 가격에 만날 수 있다.
생전 처음보는 과일들이 많은데 이건 다른 지역에 사는 중국인들도 맞찬가지란다.
특히 블루베리를 파는 노점상이 많다.
길거리에서 할머니들이 양 소쿠리에 블루베리를 가득 담고 어깨에 짊어지고 가는 모습은 쉽게 만날 수 있다.
아쉽게도 이날 만난 블루베리는 1kg에 1만 2000원으로 싸진 않았다.
대신에 뾰족한 돌기가 부숭부숭 나 있는 노란 과일이 눈길을 끈다.
상인에게 이름을 묻자 머리 위에 삼각형 모양을 그려 보이며 외친다. “석가모니!(释迦牟尼)“
이 과일의 이름은 옌워궈(燕窝果). 직역하면 ‘제비집 열매‘로 석가모니 머리를 닮은 과일이다.
하나 깨어 먹어보니 아주 부드럽고 달달한 용과 같다. 한국에서 판매하면 대단한 인기를 끌 아이다.
“한국 사람들은 어디 나라를 여행 많이 다녀요?” 정신없이 옌워궈를 먹고 있는데 과일 가게 아저씨가 묻는다.
“가까운 일본이요. 요샌 엔저 때문에 더 늘었어요.”
“에이, 일본보단 중국이죠. 관광지가 훨씬 많은데. 중국으로 온 아가씨가 빵(帮,’대단하다 ‘라는 뜻)이에요.”
아저씨가 엄지를 치켜올리며 말한다. 원, 여기 나라 사람들 자국 사랑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야생화가 유명한 만큼 온갖 종류의 버섯들도 구경할 수 있다.
쿤밍에선 야생화 허궈와 야생화 볶음밥, 야생화 찐빵 등 야생화를 활용한 다양한 미식을 맛볼 수 있다.
굴소스나 간장 같은 짭조름한 소스에 볶아서 먹는데 잘근잘근 씹어 먹으면 고소한 버섯 맛이 확 올라온다.
대관신농산물시장은 떡부터 케이크, 니 우간 빠(牛干巴, 육포), 가지구이, 닭발 등 여기저기 입맛을 돋우는 음식 천국이다.
행인들도 양손에 먹거리를 잔뜩 들고 구경을 다닌다.
중국의 길거리 음식은 한국과 은근히 비슷하면서도 정작 맛을 보면 식감이 생소하다
겉보기엔 뻔한 음식 같아도 한 두 개 정도 사서 맛봐보길 추천하는 이유다.
2-5위안(1000원가량)이면 간단하게 살 수 있는 길거리 간식이 많아 하나 하나 먹다보면 금새 배가 찬다.
2. 중국 극빈층의 시장에 발을 들이다
숙소로 가야 하는데 여기저기 발길 닿는 대로 구경하다 길을 잃었다.
이정표를 보니 시키자와촌(敷泽村)이라는 작은 마을이다.
문득 중국은 평민층과 극빈층의 삶이 뚜렷하게 차이가 난다는 택시 기사의 말이 생각났다.
해가 아직 안 졌단 말이지. 마을 입구에 공안(公安, 경찰) 있고. 침을 꿀꺽 삼키고 마을 안 쪽으로 들어섰다.
비교적 까만 얼굴, 낮고 낡은 건물, 저렴한 가격의 음식점.
황먼지만 날리는 길 위를 걸으니 기분이 묘하다.
마치 90년 초반 철거 직전의 마을을 걷고 있는 듯하다.
“垃圾,垃圾(쓰레기, 쓰레기!)”
불쑥 고성이 들려 등 뒤를 쳐다보니 길에서 쓰레기를 모으는 노점상이다.
수레에 쓰레기를 가득 싣고 자전거로 끌고 간다.
문득 일전에 한국에 거주하는 중국 유학생과 대화했던 일이 생각났다.
아직도 중국에는 삼시세끼 감자만 먹고사는 극빈층이 많은 걸 아냐고.
특히 코로나19가 거쳐간 후 많은 회사와 공장이 도산하면서 ‘열심히 일한 만큼 벌 수 있다’는 개념이 깨졌다고 한다.
그 때문에 원래도 심했던 빈부격차가 더 벌어져버렸다고.
이들을 위한 중국 정부의 지원이 있긴 하나 워낙 그 수가 많은 탓에 도움이 닿지 못한 이들이 훨씬 많다고 한다.
마을 안 쪽으로 좀 더 들어서니 작은 시장이 나온다.
번화가에서 훨씬 떨어진 곳이니 현지인 발길만 닿는 시장 같다.
시장 입구부터 댕강 잘린 소 꼬리가 나를 맞이한다.
살아생전 힘차게 흔들었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중국 여행 중 정육점 앞을 지나가면 섬찟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고깃 덩어리를 그냥 좌판에 늘어놓거나 다리 고기를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아 놓는다.
돼지나 야크 고기를 파는 곳이면 머리뼈를 덩그러니 좌판에 전시해 놓는다.
맛보기 레벨이 높다는 송화단이나 취두부는 던전 입구에 불과하다.
붉은 피가 생생한 돼지뇌부터 펄떡펄떡 살아있는 두꺼비, 앞 뒤로 구워진 자라, 흰 살을 드러낸 개구리 다리
까맣게 튀겨진 전갈, 철창에 갇혀 있는 비둘기(키우려고 가뒀는지 먹으려 잡았는지 아직도 모른다) 등.
말 그대로 ‘와, 이걸?’하는 식재료는 다 맞닥뜨릴 수 있다.
갈색 때깔로 잘 구워진 오리 머리와 눈이 마주친 날은 여전히 잊기 어렵다.
그런 말이 있다. ’ 중국인들은 신발 빼고 다 튀겨 먹는다 ‘고.
중국을 여행하면서 느낀 건,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미디어를 통해 중국 길거리 음식을 촬영한 영상들이 업로드되곤 한다.
대게 우리나라 통념과 맞지 않는 혐오스러운 식재료가 대부분이다.
물론 모든 한국인이 개고기를 먹지 않듯 중국인들도 각자의 선호도가 다르다.
오히려 “너네 이런 것도 먹어?”하며 사진을 보여주면 불쾌해하는 친구들도 몇 있었다.
다만 중국 시장을 거닐며 눈가가 자연스레 찌푸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감성은 문화 차이라고 이해해도 이성은 야만의 경계선을 아슬아슬 넘나 든다.
야만의 뜻은 ’ 미개하여 문화 수준이 낮은 상태‘를 일컫는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남다른 중국의 식문화는 나라 이미지에 타격을 주는 주 요인이기도 하다.
중국을 여행할수록 생각도 깊어진다.
문화 수준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이며, 그에 대한 높낮이를 평가하는 걸 그 나라 태생도 아닌 내가 감히 내릴 수 있는 건 지.
그저 예로부터 먹어 온 음식들을 과거와 함께 흘러가도록 놔두지 않고
현대까지 식문화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걸 오히려 대단하다고 해야 하는 건지.
그런 의미로 중국 시장에서 한 번도 안 먹어 본 음식을 시도해 보려다가 실패했다.
예로 곤충 튀김이나 돼지 코라 덜 지.
어쨌든 오늘도 여전히, 부간취(不敢吃,먹기 겁이 나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