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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저우에서 9시간 새벽 경유, 근데 무료 호텔이라고?

4. 중국 공항의 선물 같은 호텔 제공 서비스

by 리우화
1. 첫 공항 노숙을 기대하면서


퇴사 후 얼마 안 돼 두둑한 퇴직금이 통장에 꽂혔다.

일등석을 예약하는 ‘플렉스(flex)’를 해 보려다 단념했다.

돈은 솜사탕과 같아서 처음엔 크게 보여도 단 맛에 야금야금 먹다보면 막대기만 남는다.


인천에서 쿤밍으로 들어가는 항공편은 최저가 순으로 나열했을 때

가장 상단에 있는 항공권으로 예매했다. 무려 편도 12만 원.

여행자 보험과 항공권 취소 보험까지 알알이 추가해도 20만 원을 넘지 않는다.


단점이라면 경유지인 푸저우(福州, 복주) 창러 국제 공항에서 장장 9시간의 레이오버가 있다는 것.

차라리 오후 경유라면 짬을 내 도시를 구경하거나 면세 쇼핑을 하겠다만 딱 새벽 시간대에 걸쳐 있었다.


예전에 딱 한 번 중국 상하이 기차역에서 노숙을 해 본 적 있다. 2017년 상해 어학연수를 갔던 무렵 이었다.

당시 친하게 지내던 동갑내기 친구와 학원이 쉬는 춘추절을 맞아 쑤저우에 가기로 계획했다.

당시 서로 다른 중국 가정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던 터라 ‘상하이역’에서 오후 9시 밤 기차를 타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상하이에는 상하이난역, 상하이홍차오역, 상하이역 총 세 곳의 주요 기차역이 있다.

우리가 예약한 기차는 상하이난역 출발 편이었다.


그러나 그 때도 지금처럼 허둥대는 편인 나는 기차표 확인도 없이 집에서 가까운 상하이역에 갔고

안내 창구에서 보기 좋게 예약된 표가 없다고 거절당했다.

설상가상 지하철은 자정 넘어 끊기고 핸드폰 배터리는 방전.

첫 차가 운행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7시간. 스물 한 살 인생 첫 기차역 노숙이었다.


중국은 도시간 거리가 먼 만큼 아침 첫 기차를 타기 위해 기차역에서 노숙을 자처하는 이들이 많다.

심야 택시를 타기엔 돈 없는 유학생 신분에 어쩌겠는가.

밤새 가방을 지키느라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다 먹으며 새벽을 꼬박 버텼다.


기차역에 제공하는 충전기로 핸드폰을 가까스로 회생시키고 뒤늦게 친구와 연락이 닿았다.

그녀의 분노에 찬 목소리는 여전히 귓가를 맴돈다.


2. 푸저우 국제 공항에 도착하다


푸저우 창러 국제 공항. 계란처럼 생긴 키오스크에서 얼리 체크인이 가능하다.
쿤밍의 기차역이나 공항에서는 안마의자를 쉽게 찾을 수 있다. 20분 이용에 20元.


비행기는 밤 10시를 훌쩍 넘겼을 무렵에야 경유지인 ‘푸저우 창러 국제 공항’에 다다랐다.

기내에 곳곳에서 들리는 중국 승객들의 대화 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여행이 시작됨을 직감한다.

푸저우 공항은 지방 공항임에도 왠만한 식당과 카페, 면세점을 갖추고 있을 만큼 규모가 크다.

푸저우는 골프 여행으로도 왕왕 간다는데 도시에 발도 못 붙이고 떠나는 게 퍽 아쉬웠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새벽을 지새울 의자를 찾다가

‘푸저우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 센터’ 앞에 긴 줄이 늘어서 있는 걸 발견했다.


또 다른 수속 절차가 필요한가 싶어 행인에 물어보니

공항 차원에서 경유 승객들을 위해 ’호텔 숙박 서비스‘를 제공한단다.

심지어 미엔페이(免费, 무료)! 이게 무슨 럭키야?



알고보니 푸저우를 비롯해 샤먼, 취안정, 항저우 등 특정 지역들은 목적지보단 경유지의 역할이 크다.

2025년 1월부터 이들 경유지의 체류 시간이 6시간 이상 일 경우 무료 환승 호텔 서비스가 제공된다.


호텔은 공항으로부터 버스 기준 10-30분 이내에 위치하는 곳으로 배정된다.

중국 정부가 관광객 유치를 위해 한시적 무비자 정책을 시행하는 등 애쓰고 있단 건 알았지만 이 혁신 서비스는 좀 감동이다.


내가 배정받은 호텔은 공항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가든 호텔‘.
방 배정만 30분이나 기다렸다. 덕분에 숙소에 입성해선 3시간 쪽잠을 잤다.


인포메이션 센터 직원은 싱글룸은 유료고 타인과 같이 방을 쓰면 무료라고 안내했다.

첫 중국 룸메이트와의 조우가 기대됐던 나는 호기롭게 답했다.


“无所谓!(상관 없어요!)”


호텔에서 제공하는 셔틀 버스를 타고 숙소에 도착해 방 번호를 받았다.

조심스레 방 문을 여니 침대에 누워 있던 내 또래 중국 여성이 나를 흘깃 보곤 인사 없이 돌아 눕는다.

썩 아쉽지만 오늘 대화는 어려워 보인다.


방 안에 가득 찬 큼큼한 라티아오(辣条,마라맛이 나는 중국식 쫀드기) 향을 마취제 삼아 쏟아지듯 잠에 빠졌다.


하문공항 아침 비행기에서 나눠 준 뜨거운 흰 쌀죽과 구운 계란.
한국 출국 전 교보문구에서 구매한 시집. 짐이 될까 걱정했지만 여행 내내 나의 마음 버팀목이 됐다.

호텔에서 3시간 가량 자는 둥 마는 둥 눈을 붙이고 쿤밍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다시 푸저우 공항으로 향했다.

비행기에서 남은 단잠을 잘까 했더니만. 어제는 의자를 과하게 젖히던 앞 손님이었다면 이번엔 쉴 새 없이 떠드는 옆 손님이다.


들어보니 광둥어를 쓴다. 어버버 중국어인 내가 뭐라고 해봤자 조용히 할리 만무하다.

기내식으로 나온 삶은 계란과 흰 죽을 먹으며 별 수 없이 내 잠을 깨워본다.


”我们的飞机到了昆明。 祝你旅途平安.“

우리 비행기는 쿤밍에 도착했습니다. 안전한 여행되시길 바랍니다.


안내 음성이 울려 퍼지자 곳곳에서 중국어 대화 소리가 들려 온다.

비행기 창가로 잔잔한 열기가 전해졌다. 한국보다 훨씬 더운 30도를 웃도는 날씨다.

김장 비닐로 둘둘 말아 안전하게 운송된 배낭을 들쳐맸다. 묘하게 한국에서 보낼 때보다 더 무거워진 것 같다.



공항을 나서니 봄 햇빛이 따사롭다.

이윽고 눈과 귀로 낯설고도 친숙한 중국어가 밀물처럼 밀려온다.


여행의 시작을 알리듯 멀리서 환영의 꽃을 판다는 잡상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시사철 따뜻해 춘성(春城)으로도 불리는 영원한 봄의 도시, 윈난성의 수도 쿤밍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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