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란 공간이 내게 선물한 건
"공포의 대상, 아버지의 갱년기"
기억해? 2020년 5월, 브런치에 올린 첫 글.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 뭘 쓸까 골똘히 고민하다 떠오른 단편의 일상. 엄했던 아빠가 갱년기를 만나고 온화해졌다는,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
글 올리고 며칠 지났을까. 아빠한테 전화가 왔어. "미안하다"라고. 다음 메인에서 내 글을 봤대. 스크롤을 내려보니 내 얼굴이 있더래. 내게 다정한 아빠가 못 되어줘서 미안했대. 전화를 끊고 욱신거리는 가슴을 한 동안 꾹꾹 눌렀어.
나는 있잖아, 글쓰기가 좋아. 방에 홀로 앉아 감정과 생각들을 담담한 문장으로 뜨개질할 때가 가장 행복해. 시인을 꿈꿨던 아빠가 칭찬에 그리도 무색하면서, "글 쓰는 걸 보니 역시 내 딸이네"하고 머릴 쓰다듬던 손길이 좋았는지도 몰라.
하교 후 밤새 로맨스 소설을 쓰던 초딩은 학내 글쓰기 공모전을 휩쓸던 대딩이 됐고. 운동권 학우들과 거리에서 시위하다, 약자를 위해 싸우겠다고 기자가 됐어. 글은, 그래서 나의 전부야. 내 청춘의 이름을 가장 선명하게 하는 마음의 언어.
하지만, 나 솔직하게. 어느 날부터 글 쓰는 게 싫었어. 글쓰기를 업의 영역으로 기어코 끌고 온 나를 혐오하는 시간들이 쌓일수록.
새벽 내리 쓴 기사에 악플 수 천 개가 달렸을 때. 상사의 지시로 누군가의 아픔을 도려내는 기사를 썼을 때. 밤새 취재한 기사가 윗선 짬짬이로 어글러 졌을 때. 타자기에 손 올리는 것조차 죄스러워 다음 생엔, 결코 글을 쓰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숱한 새벽들.
브런치에도 더는 글을 쓸 수 없었어. 글이 주는 무게가 버거워질수록, 첫 문장을 쓰는 것조차 신물이 올라왔거든.
그런데 언론사를 퇴사하고 중국 배낭여행을 다녀왔던 올봄. 본가에 내려와 처음으로 긴 휴식을 취했던 5월의 어느 날. 아빠 핸드폰에 익숙한 로고의 앱 알람이 뜨는 게 보였어. ‘브런치’. 앱을 열어보니 구독 작가 한 명, “리우화”.
5년 전, 그날 아빠는 앱을 깔고 나를 구독했나 봐. 몇 해간 글을 쓰지 않아 무소음이던 내 계정을 매 계절마다 찾아왔었나 봐. 유독 가족에겐 말 수 적은 딸이, 진솔한 감정을 털어놓는 유일한 공간이란 걸 알았기에.
세상 사람들이 내 글을 좋아하지 않아도 좋아. 글이 유령처럼 허공에서 잊혀져도, 바늘로 찌르는 듯한 악플들이 쏟아져도.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어. 나의 문장을 영원히 사랑하는 단 한 명의 구독자가 있다면, 나 역시 평생 글을 놓지 않을 거야.
다시 브런치에 글을 썼어. 중국 여행에서 마주친 풍경과 사람, 말과 침묵에 대해. 그간 쓰고 싶던 글의 형태가 비로소 또렷해졌어. 내 손 끝은 여행에 대해 쓸 때 가장 빛이 나.
그뿐일까. 동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작가님들을 만났어. 그분들이 고이 나눠준 문장들에서 다정함을, 사랑을, 배려를 배웠어. 나, 다시금 글쓰기가 좋아. 정말이지, 이 짧은 생을 살며 글을 쓸 수 있음에 너무나도 행복해.
그래서 우화야, 네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5년, 10년 후에도. 아니, 뽀글 머리의 꼬부랑 할머니가 돼서도. 꼭 글을 쓰고 있었으면 좋겠다.
아침마다 홍차를 마시며, 자라나는 손자손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깊어져 가는 삶의 주름들을 생애 끝까지 기록하자. 이름 앞에 작가나 기자란 수식어가 없어도 좋아. 젊은 날의 나처럼 세상을 여행하며 사람을 사랑하고, 눈부신 순간들을 끌어안자.
‘여행기 쓰는 할머니’,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매혹적이지 않아?
그러니 브런치도 오래 이어져야 해요. 나 할머니 될 때까지 글 써야 하니까. 내 영화 같은 인생을 이곳에 필름처럼 인화할 테니까.
아빠도 전해달래요. 오늘도 글을 몰래 열어보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유일한 앱이니까. 또 10년이 흘러도 없어지면 안 된다고. 우리 부녀를 이어주는 소중한 공간이니까, 적어도 100년은 운영돼야 해요. 아셨죠?
우화야. 우리 글을 쓰자. 멈추지 말고, 꾸밈없이. 나의 시선을 담아내자.
먼 훗날 할머니가 된 내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오늘 글을 읽어보는 순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