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국내여행 : 무주와인동굴(2)
[귀하의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 이번 경력직 모집에서는...]
아침 8시, 핸드폰 전원을 껐다.
경쾌한 문자 알람에 기대도 컸을까.
눈가가 뜨거워졌지만 이내 한숨으로 삭혀냈다.
애도 아니고, 이제 울 나이는 지났으니까.
천장을 나선형으로 물들이는 햇살을
무기력하게 응시하다 허리를 일으켰다.
작은 방을 채운 아침 공기가 유난히 무겁다.
토스트를 만들다 기름 떨어진 로봇처럼 손을 멈췄다.
‘불합격’이란 단어가 몰고 온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을 마구 찌르고 헝클고 어지럽혔다.
"바보야, 너 도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내게만은 늘 예쁜 말만 해주고 싶었는데.
못된 말이 연이어 입에서 새어 나왔다.
이 먼 서울 땅에서 기자일을 해 보겠다고
가족의 곁을 떠나 타지에서 고군분투한 지 5년.
올봄엔 이직을 위해 잘 다니던 회사도 퇴사했다.
"서른이 되기 전에 해보고 싶던 일에 도전해 보고.
내게 맞는 일도 더 찾아보고 싶어.
난 괜찮을 거야. 알잖아, 늘 한다면 해냈으니까."
그렇게 호언장담했건만
막상 퇴사 후 마주한 건 새벽마다 찾아오는 불안이었다.
합격과 불합격이 오가는 메일함 속에서
들쑥날쑥해진 감정들을 끌어 안고 밤을 지새웠다.
2025년의 내게 걸었던 기대가
차라리 조금도 없었으면 좋았을련만.
많은 독자를 둔 스타 기자도 되고 싶었고
돈도 많이 벌어 엄마한테 비싼 선물도 드리고 싶었고
이 맘 때쯤 좋은 사람 만나 결혼도 해보고 싶었다.
서울에서 그렇게
근사한 어른으로 살아갈 줄 알았는데,
지금은 현실이란 높은 벽 앞에서
어디로 달려가는지도 모른 채
그저 매일을 버텨내는 평범한 어른이 되어버렸다.
"아파야 청춘이라던데,
빛나지 않아도 좋으니
그냥 아프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혼잣말을 하며 토스트를 억지로 입에 욱여넣었다.
허탈한 아침을 맞이해도
오늘의 나는 오늘 할 일을 해야 했다.
그날, 빗소리를 들으며 집을 나서다
오랫동안 열어보지 않았던 우편함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또 헬스장 전단지겠지 하며 꺼낸 순간,
축축한 종이 내음 사이로 낯익은 필체가 눈에 들어왔다.
발신인에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1년 전의 내가 보낸 엽서다.
우화야, 안녕! 여긴 무주야.
혜인, 은주, 가인이랑 같이 놀러 왔어!
요샌 뭐 하면서 지내? 힘든 일은 없구?
나는 네가 늘 행복했으면 좋겠어.
오늘처럼, 지금처럼.
언제 어디서든 네가 가장 먼저였으면 좋겠다.
항상 응원할게, 사랑해!
정확히 1년 전, 20년 지기 친구들과 전북 무주로 여행을 갔다.
우린 '머루와인동굴'을 찾았고
이곳에서 엽서를 쓰면 1년 후에 보내준다는 거북이 우체통을 만났다.
'설마 보내주겠어?'반신반의하며 펜을 들었지만
그래도 미래의 나를 생각하며 한 자 한 자 적었던 엽서.
그날의 나는 애인과의 이별 그리고 번아웃으로
지금보다 훨씬 힘든 감정들을 삼켜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과거의 나는
1년 후의 내게 꼭 행복하라며,
언제 어디서든 자신을 믿으라며
따스한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우편함 앞에 우두커니 서서
거세던 빗소리가 찬찬히 잦아들 때까지
엽서를 몇 번이고 읽었다.
1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내게 바란 건,
돈 많고 인기 많은 어른 따위가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들과 오늘처럼, 지금처럼
후회 없이 웃으며 행복하란 거였는데.
그러니까 올해의 나도 과거의 바람처럼
충분하게, 누구보다 잘 살아내고 있었다.
비록 이직은 못했어도
적어도 날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 곁에 있으니까.
죽지 말고 살아라! 버텨!
그리고 세상과 타협하진 마.
너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생각보다 괜찮을지도?
올해의 나도 방학 시작해서 바빠질 예정이지만
내년에도 열심히 살고 있는 너를 응원해!
파이팅이고 늘 잘 살고 있어!
친구들의 엽서도 한 장씩 읽었다.
회사 업무가 힘들다며 대학원 과제가 어렵다며
매일같이 단톡방에 하소연하는 그녀들.
그럼에도 우린 과거의 우리가 바라던 대로
자신의 자리에서 매해 고군분투 잘 살아내고 있다.
늘 기억하기로 했다.
내가 내게 건네는 위로는,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응원이란 걸.
현실 앞에서 몇 번이고 무너지고 상처받아도
“괜찮아, 참 잘 버티고 있어”란 말을
나 스스로에게만큼은 아끼지 말자고.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내게,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내게.
서로가 서로에게 다정한 엽서를 보내는 한
내 삶은 결코 희미해지지 않을 거란 걸.
“오늘 바보라고 해서 미안해.”
내 손으로 내 어깨를 가만히 토닥이고,
엽서를 손에 쥔 채 다시 길을 나섰다.
빗내음이, 오늘은 조금 상쾌하게 느껴졌다.
괜찮아, 늘 괜찮을 거야 우화야.
오늘도 내일의 나를 위해 건네보는
작지만 단단한 응원 한 마디.
리우화의 여행지도
엽서와 같은 형태가 아니더라도 수신일을 지정한 메일이나 메모지에 1년 후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 캘린더 가장 끝에 붙여 놓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랍니다.
또, 자녀와 함께라면 집 근처 공원이나 놀이터에 메세지를 담은 타임캡슐을 묻어 한해가 지난 여름에 꺼내보는 것도 분명 추억이 될 거예요.
이번에는 제가 거북이 우체통을 만났던 여행지를 소개해드립니다. 가족 단위나 연인, 부모님 등 누구랑 함께 가든 즐겁고 시원한 관광지, '무주머루와인동굴'입니다.
전북 무주 적상산 중턱에 위치한 ‘무주머루와인동굴’은 과거 무주 양수발전소 건설 시 굴착 작업용 터널로 사용했던 곳으로 머루 재배 농가에게 희망을 주고자 2007년 임대, 리모델링하여 오늘의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입장료 개인 2000원)
무주의 머루포도는 전국 머루 생산량의 6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품질과 풍미가 뛰어난 것으로 유명합니다. 머루동굴의 내부는 평균 13~14도의 온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여름에는 쾌적한 동굴 관광을 경험하게 합니다.
무주머루와인동굴은 머루와인 시음도 가능하며 기존 입장료 안에 시음권이 포함돼 있습니다. 구천동머루와인, 샤또무주, 마지끄무주 등 오직 무주에서 탄생한 와인들을 맛볼 수 있습니다. (이중 샤또무주는 제가 정말 좋아해서 갈 때마다 선물용으로 사온답니다)
그 외에도 와인 족욕 체험, 은은한 조명으로 이뤄진 예쁜 포토존 등 다양한 체험 공간이 마련돼 있습니다. 오늘 글에서 다뤘던 '거북이 엽서 우체함'도 동굴 내에 위치해 있습니다.
무주와인동굴 주변에는 무주 반디랜드, 구천동 계곡 등 여러 여행지들이 위치해 있어 하루 당일치기 여행 코스를 짜기에도 적합합니다.
이번 더운 여름은, 와인 내음 잔잔한 시원한 동굴에서 이색적인 피서는 어떠실까요? > 소개/기능및 서비스/문의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