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넷플릭스 마니아가 됐을까
1. 엄마의 넷플릭스
엄마는 '넷플릭스 마니아'다.
엄마랑 같이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고르려면 족히 30분은 걸린다.
"저건?" "다 봤어."
"이건?" "벌써 봤지."
"그럼, 도대체 안 본 건 뭐야...?"
결국 참다못한 나의 투덜거림으로 영화 타임은 무산.
스크롤을 아무리 내려도 이미 봤다는 붉은 하단 바가 도배처럼 화면을 채운다.
엄마의 지독한 OTT 사랑은 3여 년 전, 내 계정을 알려주면서 시작됐다.
혼자 지내기 심심하단 하소연에
"요샌 다들 이거 보더라"하며 신세계를 열어드린 나였다.
가끔 쉬실 때나 틀어 보실 줄 알았더니만,
평일이고 주말이고 TV 화면에는
액션 영화가 쉴 새 없이 재생됐다.
심지어 아빠가 거실 벽의 절반을 차지하는 대형 TV를 들이면서
엄마는 매일 오후 8시면 자연스럽게 스크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2. 그럼 네가 자주 오던가
오랜만에 주말을 맞아 대전 집으로 내려간 날.
현관문을 열자마자 나도 모르게 한숨을 후 쉬었다.
테이블에 어지럽게 놓여 있는 뻥튀기 과자 봉지.
어김없이 틀어져 있는 미국 액션 영화.
엄마 옆에 단짝처럼 착 붙어 있는 TV리모컨.
"우화야, 이제 왔어? 배고프지."
반가운 얼굴로 걸어 나오는 파자마 차림의 엄마.
지난 건강검진에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서 주의받았다고 했는데,
지난번보다 살이 좀 더 오른 모습이었다.
속에서 잔소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엄마, 진짜 넷플릭스 중독이야. 알아?
맨날 저녁에 뭐 먹으면서 보니까 자꾸 살이 찌잖아.
제발 저녁에 영화 좀 그만 보면 안 돼?"
엄마는 무안한 듯 살짝 웃더니 장난스레 받아쳤다.
"그럼 네가 자주 오던가!"
'서울에 있는데 어떻게 자주 가'
말이 목 끝에 걸렸다.
그 순간, 뭔가를 오래 놓치고 있었다는 기분이 밀려왔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한 채 엄마 얼굴만 가만히 쳐다봤다.
엄마가 매일 저녁 혼자 봤을 수많은 영화들.
스쳐 지나간 수백 편의 이야기들 속에서
엄마는 몇 번쯤, 나를 떠올렸을까.
3. 넷플릭스가 채운 시간
오빠와 나는 스무 살이 되자마자 서울로 떠났다.
타지에서 일하는 아빠는 주말마다 집에 왔지만
잦은 해외 출장으로 자주 집을 비웠다.
일하는 가족들 사이에서
엄마는 혼자 집을 지키는 시간이 많아졌다.
워낙 밝은 성격 덕에 주변 친구들도 많지만
해가 진 뒤 다들 자기 가족 저녁밥을 챙기러 삼삼오오 흩어지면
엄마는 늘 혼자 텅 빈 집으로 걸어왔다.
누구 하나 소리 내 웃지 않는 거실,
식탁에 두세 개 반찬통과 함께 하는 조용한 저녁.
일을 한다고 약속이 있다고
금방 전화를 끊어버리던 딸의 목소리.
그 적막을 깨준 게 넷플릭스였다.
영화 속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때론 울고 웃는 사이에
엄마는 조금씩 외로움의 공백을 채워갔다.
밤이 깊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액션 영화 한 편이
멀리 있는 딸보다 더 오래
엄마 곁을 지켜줬는지도 모른다.
4. 또 와, 우화야
"또 와, 우화야. 알았지? 또 대전 와."
대전에 갈 때마다
하루만 더 있다 가지, 저녁이라도 먹다 가지
투정 부리는 듯한 엄마의 목소리에
나는 언제부터 짜증을 냈을까.
"본가에 있으면 자꾸 늘어진단 말이야.
대전에서 서울 가는 길은 얼마나 막히는 줄 알아?
자꾸 엄마가 하루 더 있으라고 하면, 나 마음 불편해."
내가 단호하게 말을 자르면 엄마는 잠시 멈칫하다가
그냥 해 본 말이지, 왜 너 사정을 모르겠어
하곤 말없이 나를 꼭 끌어안았다.
그 품의 온기에서 나는 왜 그토록 오랫동안
엄마의 외로움을 느끼지 못했을까.
그러니까, 나는 화면 속 액션 배우보다
엄마 곁에 덜 등장하는 딸이었다.
집을 떠나는 건 쉬웠지만,
다시 돌아오는 건 늘 핑계가 필요했다.
5. 이제라도
최근 잠시 한국에 귀국한 뒤
엄마랑 함께 전주 여행을 갔다.
서울 취직 후 몇 년 만에 단 둘이 떠난
여름비가 토독토독 내리던 화요일의 데이트였다.
한옥 유스호스텔에 도착하자
큰 TV에서 어김없이 넷플릭스를 켜던 엄마.
이번에도 볼 영화가 없는 듯 스크롤만 드르륵드르륵.
나는 엄마 곁에 오랜만에 나란히 누워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엄마, 나 퇴직금으로 고양이 분양받을까?
내 친구 엄마도 고양이 싫다더니 하루 종일 같이 시간 보낸다더라.
아님 강아지는? 우리 예전에도 한 번 키웠잖아."
엄마는 우습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그냥 네가 자주 와라.
딸도 있고, 아들도 있는데.
엄마가 동물이랑 놀아야 되겠니?"
"엄마는 나랑 노는 게 좋아?
나처럼 짜증 많은 딸 어디 있다고."
"난 너랑 노는 게 좋아.
그러게, 누가 그렇게 예쁘래?
예쁘니까 자꾸 보고 싶지."
그날 밤, 엄마와 나는 캔 맥주와 모주를 기울이며
몇 년간 미루 왔던 인생 이야기를 떠들었다.
아주 오랜만에 넷플릭스 대신 딸로서 함께한 여름밤이었다.
너무 늦게 알아버린 엄마의 고요한 시간들.
이제라도, 그 빈자리를 내가 천천히 채워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