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 한 줄기에 담긴 여름, 삶, 눈맞춤-국내여행 : 전통시장(1)
여름입니다.
여름엔, 오이를 먹어야 합니다.
오이참치비빔밥, 오이마요토스트, 오이맛살김밥.
상큼한 여름만큼 오이 맛이 잘 어울리는 계절은 없습니다.
창문 밖은 땡볕, 몸 편히 쿠팡을 켭니다.
"오이 2개 1800원" 저기, 오이 하나에 900원은 너무했잖아요.
한 손엔 다이소에서 산 장바구니, 다른 한 손엔 양산을 듭니다.
집에서 도보 20분 떨어진 '망원시장'.
땀방울이 목더미를 적실 때쯤 시장 입구에 다다릅니다.
벌건 대낮에 등장한 조그만 여자애에게
생선가게 주인의 두 눈이 따라갑니다.
안녕하세요, 살짝 고개 숙여 인사하자
아주머니 얼굴에 햇살 같은 미소가 번집니다.
마실 나온 강아지처럼 시장 한 바퀴를 살랑살랑 걷습니다.
오늘 사려는 건 '오이' 하나지만
옷가게 거리도, 만물상 거리도, 노래주점 거리도 스칩니다.
시장에서 만나는 고운 풍경들을, 저는 참 좋아합니다.
한낮에 막걸리 잔을 짠 부딪히는 아저씨들을.
여름 모시옷을 맞춰보는 할머니들을.
부지런히 과일을 옮기는 젊은 청년들을.
여긴 모든 순간이 시나브로 흘러갑니다.
이를테면 '1시간 초특가 세일'도, '지금 놓치면 안 될 특가 제품'도 없습니다.
눈앞을 어지럽히던 팝업창 대신 사람 사이 다정한 눈 맞춤만이 오갑니다.
내일 배송도, 새벽 배송도 없습니다.
땡볕 아래 비처럼 내리던 배송 노동자들의 땀도 이곳에선 필요치 않습니다.
시원한 얼음 동동 띄운 냉면 사진에 끌려 한 걸음,
아는 사람만 아는 투박한 통닭 내음에 끌려 두 걸음,
지글지글 바삭하게 부쳐지는 부추전 자태에 끌려 세 걸음.
어린아이처럼 헤에- 입맛만 다시다
정신을 퍼뜩 차리고 장바구니를 꼭 쥡니다.
길가에서 수박을 쪼개 먹는 삼계탕집 할머니께
농수산물을 파는 거리가 어디 있냐고 물어봅니다.
"앞으로 쭉 갔다가 옆으로 쭉 가."
앞과 옆, 그리고 쭉.
세 음절이면 충분한 한국 할머니들의 길 안내.
이제 진짜 '오이'를 사러 사뿐사뿐 걸음을 옮깁니다.
여름은 자신이 품은 모든 생명들을 선명하게 합니다.
복숭아의 솜털 위로, 사과의 윤기 위로 찬란한 햇살이 내려앉습니다.
빨강과 초록, 노랑— 과일을 고르는 손끝에 여름의 색이 묻어납니다.
못난이 오이 다섯 개 1000원.
채로 쳐서 먹을 계획이니 못생겨도 괜찮습니다.
오랜만에 당근 라페 샌드위치도 생각납니다.
아이 팔뚝만 한 튼실한 당근도 2개 1000원.
데쳐 먹을 팽이버섯도 3개, 숙주도 한 봉다리
샛노란 바나나 한 송이랑 마늘 한 봉지도.
주섬주섬 담다 보니 장바구니는 묵직해졌지만
겨우 아메리카노 한 잔 값 6000원.
계획보다 과소비는 했지만 마음은 산뜻해집니다.
내일이면 ‘민생회복 소비쿠폰’도 들어옵니다.
복숭아도, 토마토도, 수박도
이젠 신선한 여름을 맘껏 맛볼 수 있다는 생각에
과일이 귀한 20대 자취생의 마음은 벌써부터 들뜹니다.
더위에 지친 시장 주민들의 얼굴에도
손님들의 발길에 곧 밝은 햇살로 가득해지겠죠.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으며
다시 살랑살랑 집으로 걸어갑니다.
오이와 당근으로 채울 여름 한 끼,
기분도 함께 시원해질 점심입니다.
리우화의 여행지도
2020년, 코로나19가 전역을 휩쓸었던 그해 여름. 당시 기자초년병이었던 전 대전에 있는 전통시장 곳곳을 다니며 인터뷰를 했습니다.
가슴을 치며 분통하거나 끝내 눈가를 훔치던 시장 주민들. 개미 한 마리조차 지나가지 않던 텅 빈 거리. 파리하게 빛을 잃은 여름 과일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던 사진 기자도 수첩에 묵묵히 기록하던 저도. 말없이 양손 가득 전과 과일을 사들고 사무실로 돌아왔던 일이 생각납니다.
5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을까요?
쿠팡, 컬리 같은 온라인 플랫폼이 일상 속 깊숙이 들어왔고, 배달 음식과 간편식 문화가 퍼지며 집밥 짓는 사람도 줄었습니다. 최근 광장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그나마 찾아주던 외국인 손님들도 예전 같지 않다”며 가는 한숨을 내쉽니다.
세월이 흐르며 소비 방식과 식문화는 바뀌어갑니다. 다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 눈을 맞추고 인사를 건네는 공간은, 우리 한국 사회가 결코 잃어선 안 될 ‘온기’입니다.
이 달부터 민생지원금 소비쿠폰 지급이 시작됐습니다. 오늘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싱그러운 여름을 사러 전통시장 방문 어떠신가요?:)
[집 근처 전통시장을 찾고 싶다면?]
구글플레이에서 앱(APP) 전국 시장 위치를 볼 수 있는 '전통시장 지도'를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소상공인24에서 운영하는 전통시장 위치 찾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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