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을 견딘 바디프로필 촬영기
*제 브런치는 여행기 중심이나
’내 어깨 토닥토닥‘은 제 사적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제 여름이라 바디프로필을 찍으신 작가님들의 후기가 눈에 띄네요. 저도 작년 겨울 촬영 후 블로그에만 올려놓은 후기를 살짝 꺼내봅니다 :)
사실 바디프로필은 참 말도 많고 시선도 다양하죠.
“아니, 그걸 왜 찍어?” 하는 분들께는(특히, 1년째 물어보시는 제 부모님) 사실 쑥스럽지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복근을 갖고 싶었던 걸요!
그래도 여전히 물음표 앞에 서신 분들과, 막 바디프로필을 준비하시려는 분들께 바디프로필 촬영을 하게 된 전 과정을 공유해 드릴게요.
2024년 8월 11일. 여름이 거의 지난날에 바디프로필을 찍기로 했다. 우연히 보게 된 인스타그램 속 누군가의 복근. 탄탄한 팔 근육. 매력 있게 올라간 힙 라인. 섬광처럼 스친 이미지들이 퍼즐처럼 맞춰져 하나의 선명한 목표를 만들었달까.
8월은 100일가량의 단기 목표를 세우기에도 적절한 달이다. 연내 뭐 하나라도 성과를 내겠다는 지각쟁이들에게도 괜찮은 시기다. 바디프로필 촬영일은 크리스마스로 잡았다. 이별도 했겠다, 무료했던 일상에 작은 목표 하나가 끼워지니 초록등이 반짝 들어왔다.
주변에는 알리지 않기로 했다. 손으로 찢은 수제비처럼 각기 반응이 나올 게 뻔했다. 일반식을 끊으면서 냉장고는 다이어트식으로 가득 쌓였다. 운동복와 텀블러는 새로 샀고 운동화는 깨끗이 세척했다. 이제, 다이어트와의 전쟁 시작이다!
헬스는 모든 운동 중 가장 기본이다. 대게 운동을 한다고 하면 헬스장 등록부터 마친다.
그런데 내가 다니던 센터의 운동 기구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성들이었다. 전체 회원 중 70%가 여성 회원이고, PT를 받는 성비 비율 역시 여성이 훨씬 높았음에도. 그에 대한 물음에 담당 트레이너는 찰나의 고민도 없이 답했다.
"여성 회원분들은 의지가 약하거든요."
잘못 들었나 해서 다시 물으니 그는 답한다.
"남자분들은 꾸준히 나오시는데 여성분들은 달에 몇 번 올까 말까 해요. 그래서 센터에서도 힙업 운동 기기를 더 들여놓을까 고민 중이에요."
고작 힙업 기기가 없어서 여성들이 헬스장에 안 나오는 걸까. 그의 말은 귀가해서도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그게 단지 한 트레이너의 편견이 아니라면 그건 그 나름대로 큰 문제다.
그저, 내가 당신이 가진 편견의 예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예외는 언제나 편견을 깨뜨린다.
헬스장을 5개월간 딱 네 번 빠졌다. 초겨울에 스민 감기에도 약의 힘을 빌려 헬스장을 갔다. 야근을 하거나 잠을 제대로 못 잔 날에도 졸린 눈을 비벼가며 운동 머신에 앉았다.
일이 늦게 끝나든 일찍 끝나든 헬스장의 문을 열었다. 운동 시간은 30분에서 1시간, 2시간으로 계속 늘어났다.
매일 헬스장에 가야 하니 약속은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불가피한 저녁 자리는 샐러드만 먹거나 중간에 양해를 구하고 일어섰다.(내 출입처에 계시던 기업 상무님은 내가 비건인 줄 알고 일부로 비건 식당을 찾아 미팅을 잡기도 했다)
몸무게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수치 중 가장 정직하다. 입에 들어가는 모든 것들을 째깍째깍 숫자 화한다. 0.1kg라도 찐 날에는 체중계가 경각심을 가지라고 경고했다. 하루에 먹는 단백질은 닭가슴살과 노른자 없는 흰자. 탄수화물은 죽처럼 만든 오트밀과 단호박, 샐러드가 전부였다. 모두 저울을 재서 그램 수를 정확히 맞춰 먹었다.
간식은 일절 먹지 않았다. 그래놀라는 몇 알 씩만 씹으며 배고픔을 달랬다. 마실 것은 물과 블랙커피, 그리고 식후에 마시는 사과식초 탄 물. 너무 배가 고파 우유 팩을 뜯어도 두어 모금 마시고 다시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독하게 음식 섭취를 통제한 덕에 살은 빠르게 빠졌다.
한 주가 지날 때마다 몸무게 1kg, 체지방률 1%가 감소했다.
그러나 하루에 섭취하는 영양소가 급격히 줄면서 몸의 힘은 점점 빠졌다. 쉽게 피곤해졌고 멍 해있는 시간이 늘었다. 업무에 지장을 주면 안 되니 일상처럼 오쏘몰 비타민을 털어 먹었다. 구황작물만 먹다 보니 소화 불량도 찾아와 소화제도 약 먹듯 챙겨 먹었다.
다리에는 검푸른 멍이 생겼다. 운동을 잘못해서 생긴 줄 알았더니, 영양소 불균형이 찾아오면 멍이 생긴단다. 마르다고 마냥 좋은 것도 아니다. 원래도 보통 체형이었던 터라 3kg 이상 빠진 뒤론 자리에 앉아 있기 힘들 정도로 엉덩이 뼈가 도드라졌다.
눈에 띄게 도드라진 척추와 어깨뼈는 손으로 훑으면 마디 별로 만져졌다. 모든 혈관은 살짝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선명히 비쳤다.
체지방률이 13% 아래로 떨어지면서 추위와도 싸워야 했다. 11월에 접어들 무렵엔 입바람 같은 한기에도 달달 떨었다. 그 무렵엔 걷는 것조차 힘들어서 길거리에서 두어 차례 멈춰서 숨을 고르기도 했다. 두 달 넘게 생리불순이 이어진 건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바디프로필을 준비했던 과정은 분명, 강렬한 기억이었다. 평소 먹는 양을 줄이면서 정신은 굉장히 또렷해졌고, 단백질 위주의 식사는 몸을 가볍게 했다. 특히 5개월간의 금주는 사람의 몸과 정신을 얼마나 맑게 하는지 경험하게 했다. 업무 효율이 최정점을 찍었던 날도 이맘때였다.
근성도 늘었다. 몇 달 동안 퇴근 후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고 헬스장에 가는 건 여간 무모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목표가 있으니 쉴 수 없었다. 이때부터였다.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그래도, 해야지"라는 생각이 자동 응답처럼 나오기 시작한 건.
바디프로필 촬영 준비를 시작한 날부터 끝나는 날까지. 나는 매 순간 나를 이겨냈다. 내가 생각보다 끈질기고, 단단하며, 꽤 독한 사람이란 것도 처음 알았다. 살이 빠져서 달라진 외형이 아니라 그 속에 있던 본연의 나를 마주했던 과정이었다. 그건, 바디프로필을 통해 얻은 ‘진짜 변화’였다.
트레이너님의 말 한마디로 불태운 의지가 이렇게 열기가 오래갈 줄은 몰랐다만. 어쨌든, 디데이 당일에 나는 원래 목표치보다 훨씬 감량한 상태에서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다.
몸무게 39kg, 체지방률 11%.
보디빌딩 대회에 나가는 여성 선수들의 계체량 수준이란다. 중학교 때 최저 몸무게가 42kg였으니, 몸무게만큼은 15년 정도 회춘한 셈이다. 두부 같던 몸에도 나름 근육이 붙었다. 싯업을 너무 열심히 한 덕에 배엔 11자가 아닌 왕(王) 자가 생겨버렸다.
전 과정을 함께 했던 트레이너는 촬영 후 같이 밥을 먹으며 말했다. "우화씨는, 제가 본 사람들 중에서도 확실히 의지가 강하네요."
그 말을 듣자 순간 ‘그러니까, 어디 가서 여자들이 의지 약하단 말 하시면 안 돼요. 그 말, 진짜 별로거든요!’란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그냥 꿀꺽 삼켰다. 행동으로 보여줬으니, 그만하면 됐다.
시험, 취업, 승진 등. 아무리 죽을 듯 노력해도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올 때가 많다. 그 앞에서 우린 수 없이 좌절하고 스스로를 원망하곤 한다.
그러나 운동은 정직하다. 재능도 필요 없다. 노력한 만큼, 몸은 반응한다. 바디프로필은 앞으로 어떤 실패를 마주하든, 나를 지탱해 줄 가장 분명한 삶의 증거가 되어줄 것이다. 온 마음을 다해 살아낸 순간들이 쌓이면, 삶도 진심을 담아 흐른다.
그리고 꼭 바디프로필이란 거창한 목표가 아니더라도, 운동을 통해 자신의 몸이 달라지는 과정은 꼭 누구나 경험해 봤으면 좋겠다. 일단 시작하고, 강박은 버리고, 쉬더라도, 멈추지 말자.
멋진 건, 가장 마지막에 보여주면 된다.
여기까지 말하니 꼭 운동 포교자(?)가 된 기분이지만.
평범한 일상에 작은 특별함을 더하는 일은, 어쩌면 그리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