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기자의 취재 앵글에 담긴 그들의 여름
1. 고층 건물 아래
2021년 7월, 수습 딱지를 떼고 정기자가 됐다.
"넌 남들이 못 보는 틈새를 들여다보는 애잖아. 취재하고픈 분야는 맘껏 누벼 봐."
국장의 첫 칭찬에 며칠을 들떠 지냈다. 막 소서(小暑)를 지난, 초여름이었다.
토요일 오후, 첫 취재. 손바닥만 한 취재 노트와 펜. 심호흡 한 번 쉬고 대전역으로 향했다. 역 뒤편 퇴폐업소 거리, 목공소, 작은 교회를 지나면- 1~2층 가정집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낡은 동네가 나온다.
활기도 온기도 잃은 채, 시간 바늘이 멈춰 선 듯한 곳. 대전 쪽방촌이다.
사람 한 명 살기도 비좁은 곳에 온갖 살림을 쌓아 놓고 사는 할머니. 자전거 뒤에 고물을 잔뜩 이고 가는 할아버지. 작은 창문이 유일한 환기구인 반지하. 건물 사이 골목은 온몸을 비틀어야 겨우 지나갈 만큼 좁았다.
‘에어컨 없는 그곳에선.’
메모를 한번 훑고 고개를 들었다. 쪽방촌 주민들의 삶이 하나둘 앵글에 담겼다. 꽁꽁 얼린 생수통을 안고 누워 있는 사람, 물에 적신 수건으로 온몸을 연신 닦던 사람. 탈탈 돌아가는 낡은 선풍기마저 귀했다.
파닥거리는 부채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향하니 할머니 두 분이 문턱에 앉아 계셨다. 흰 파마머리 사이로 투명한 땀방울이 툭툭 떨어졌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저 지역지 기잔데요. 여름인데 에어컨도 없이 어떻게 여름을 견디시고 계신 지 좀 여쭤보려고요. 시청에서 사람들이 도우러 안 오나요?"
할머니는 눈을 꿈뻑하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오긴, 누가 와. 아무도 안 와. 덥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작년도 똑같았어. 기자 아가씨가 대신 좀 가서 물어봐봐."
나는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손만 뻗으면 에어컨이 있는 집에서, 몇 걸음 나서면 시원한 카페가 있는 도시에서. 이름 모를 이웃은 몇 해간 꺼내 쓰느라 잔뜩 헤어진 부채로 한 계절을 버티고 있었다.
가장 눈에 띈 이는 두터운 털옷을 걸친 할아버지였다. 그는 벌게진 얼굴로 앉은뱅이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는 그의 옆에 쭈그리고 앉아 물었다. "할아버지, 그러다 열사병 걸리겠어요. 왜 여름에 털옷을 입고 계셔요?"
그는 슬쩍 내 눈을 보더니 무심하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옷이 이거밖에 없어." 손끝의 조글조글한 주름에 고된 세월이 스며 있었다.
'부채, 얼음통, 털옷' 취재노트에 적힌 세 단어. 잔인하도록 현실적인, 이웃의 삶.
2. 다리 밑
"기자님, 잘 지내셨어요?" 전화 너머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수습기자 시절 취재 차 인연을 맺은 홈리스 지원 활동가 선생님이다. "선생님, 저 정기자돼서요. 제 이름으로 이제 기사가 나가요. 그래서, 밤 동행해도 돼요?"
8월의 열대야, 자정을 막 넘긴 시간. 대전역 뒤편의 활동 지원센터를 찾았다. 지원가 몇 분이 양손에 먹거리와 생수병을 담은 박스를 들고 밤길을 나섰다. 우린 화려한 번화가 밤빛을 지나 목척교 밑 깜깜한 어둠 속으로 향했다.
다리 밑 옅은 선선함을 느끼며 고개를 둘러보니 크고 작은 텐트들이 눈에 띄었다. 어릴 적 아빠 따라갔던 캠핑장 텐트들은 무지개 조명으로 반짝반짝하고 다정한 그림자가 오갔는데. 여긴 어떠한 빛도, 웃음소리도 없다. 텐트 앞에 놓인 녹슨 냄비와 신라면 봉지들이 이곳의 험한 하루를 대변했다.
"선생님, 여기 물병 놔두고 가요. 좀 있다 나와서 드세요." 몇 번의 부름에도 나오지 않자, 활동가 선생님은 텐트 앞에 물과 햇반을 놔뒀다. 텐트 안에서 아주 작게 바스락 소리가 들렸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날이 너무 더운데요. 노숙인들이 지낼 수 있는 공용 공간이 있다고 들었는데..."
"공용 공간은 통금 시간이 있고 내부 규칙이 있어서 다들 잘 안 가려고 해요. 그리고 이미 다리 밑의 생활에 익숙해진 터라 떠나고 싶어 하지 않더라고요."
한 남자는 흰 러닝차림으로 부채를 부치다 물병을 받았고, 또 다른 남자는 성경책을 읽다가 음식을 받고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운행이 정지된 역사 안엔 많은 노숙인들이 신문지나 모포를 덮고 누워있었다. 활동가 선생님은 일일이 안부를 물으며 음식과 물을 건넸다.
지원 활동을 정리하고 돌아가려는 찰나, 다리 밑에서 노란빛이 반짝이는 게 보였다. 선생님과 빛 쪽으로 향하니 세 명의 노숙인이 대형 램프 아래 모여 있었다. 붉은 플라스틱 테이블 위엔 오징어와 고구마튀김, 막걸리병이 놓여 있었다.
"아이고, 선생님. 날씨도 더운데 어김없이 도십니까. 오늘도 감사히 받겠습니다." 한 아저씨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음식과 물을 받았다. 그리곤 살짝 얼어붙어 있는 나를 보고 누구냐고 물었다. 기자라고 말하자 동그래진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 기자 아가씨였구먼. 도느라 수고하셨을 텐데 튀김 한 조각할래요? 방금 사 온 건데." 그가 젓가락으로 건넨 노란 오징어 튀김 한 조각.
나는 무언가 뒤통수를 얻어 맞은 것 처럼 그 조각을 받았다. 작은 것도 나누기 망설이는 사회에서, 그들은 거리낌 없이 정을 나눴다. 그건 부끄럽게도 내게도 없던, 인간이 인간을 향한 이타적 사랑이었다.
3. 반지하
2023년 8월, 기록적 폭우가 내렸다. 길가에 물 웅덩이가 패어 발목을 흠뻑 적실만큼의 비였다. 한 시간마다 호우 경보가 떠서 집 밖으로 한 걸음도 나설 수 없었다. 새벽이 무너질 듯 큰 비가 내린 다음 날 하늘은 선명하게 개었다. 나는 아침 일찍 고프로를 챙겨 들고 신대방으로 향했다.
붉은 벽돌의 낮은 빌라들이 모여 있는 골목. 집 앞 도보에는 검은 물에 잔뜩 젖은 이불과 옷, 매트리스 등이 허리까지 쌓여 있었다. 가까이 다가서자 구정물 냄새가 물큰 풍겨왔다. "다 버려야겠구나." 옷들 사이 노란색 여아옷이 껴 있었다. 어젯밤, 이 아이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한 반지하 집을 찾았다. 바지를 무릎까지 걷고 온몸이 땀에 젖은 아저씨가 밭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는 간이 펌프로 밤 사이 차오른 물을 빼고 있었다. 조심스레 어젯밤 어떻게 견뎠는지 인터뷰를 요청했다.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됐던 그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어제 일찍 잠들었는데요. 누군가 문을 탕탕 치는 소리에 놀라 일어나니, 빗물이 문 사이로 새어와 온 방이 물바다가 돼 있더라고요. 냉장고나 세탁기도 물에 잠겨 있고, 핸드폰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요. 새벽부터 물을 계속 빼고 있는데요, 아직도 물이 남았네요."
그의 집 안은 더욱 처참했다. 바닥은 흙탕물로 가득했다. 발을 옮길 때마다 눅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미처 빼내지 못한 젖은 이불과 장난감, 냄새 밴 옷가지들은 곳곳에 뒤섞여 있었다. 벽면 곳곳에 남겨진 아이 그림과 키가 커질 때마다 그어 놓은 작은 실선들에 검은 빗물이 얼룩져 있었다.
바로 옆 건물의 반지하 앞에선 한 어머니가 냉장고에 있던 음식들을 큰 대야에 담아 정리하고 있었다. 김치, 나물, 된장, 콩나물. 가족을 위해 소중히 담갔을, 매끼마다 정성스레 차렸을 반찬들. 물에 젖은 음식에서 옅은 쉰내가 났다.
"김치냉장고랑 냉장고가 아예 물에 잠겨서요. 음식들은 죄다 버려야 할 거 같아요. 비만 내리면 음식을 버리고 담는 일의 연속이네요."
내가 빗소리를 들으며 편한 잠에 들었던 수많은 날 동안, 누군가의 일상은 물속에 잠기고 있었다. 취재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 버스 창가에 또다시 빗방울이 맺혔다. 처음으로 비가 원망스러울 만큼 싫었다.
4. 글은 결국 약자를 위해야 한다고
몇 년간 몸 담았던 사회부를 지나 IT부서로 왔다. 다들 AI를 통한 똑똑한 시대를 주창하며 과학 기술을 앞다퉈 선보였다. 나는 서울 한가운데서 사회의 발전을 숨 가쁘게 좇다 여름이 오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역 뒤편 작은 동네로, 다리 밑으로, 건물 아래 반지하로. 여름은 어김없이 반복된다. 해마다 더욱 길어지고 무더워진다. 오늘도 역시 어딘가에선 이름 모를 타인의 일상이 무더위와 폭우 속에서 몇 번이고 스러지고 있다.
눈을 감으면 그 날의 땀냄새 나던 털 옷과 붉게 충혈된 두 눈, 물에 젖은 음식 냄새가 떠올라 마음 한편이 무너진다. 우리 사회의 이면을 목격한 이상, 그 이전의 삶으론 돌아갈 수 없다.
작년에 글쓰기 수업을 듣다 강사님이 강조했던 말이 있다. "글은 결국 사회적 약자를 향해야 한다"라고.
문학인들이 그들을 위한 글을 남겼기에 우리 사회가 온기를 품고 나아갈 수 있는 거라고. 똑똑한 사회보다 타인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글에 담을 때 기록의 존재 가치는 분명해진다고.
올해 여름이 지나기 전에, 다시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기사는 철이 지나면 잊히기 때문이다.
여름 아래로 향한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돌아가도, 그 아래 잊힌 이웃의 삶과 목소리를 듣는 일은 내게 남겨진 가장 중요한 여름 과제다.
"삶의 아름다운 부분에 대해서 쓰고 싶어요.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사람이 인생을 아름답게 느낀다는 것,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그럴 힘이 있다는 것." - 한강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