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모두 커 버렸어도
[이번 주말에는 올 거지????]
수요일 아침, 엄마의 카톡은 퍽 기대감이 가득했다. 아빠도 평소와 다르게 이모티콘을 남발하며 기대감을 표현했다. 매주 주말 출근으로 손사래를 쳤던 오빠도, 부모님의 기대 공세에 이번 주말은 내려간다고 약속한 터였다. [알았어, 금요일 회식하고 토요일 아침 차로 갈게.] 나도 마지못해 메시지를 남겼다. '주말에 현제(남자 친구) 만나기로 했는데.' 그래도 이토록 부모님이 귀향을 바란 적이 있었던가. 데이트 한 번쯤은 날려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다.
엄마 아빠가 그리도 이번 주말을 기다렸던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캠핑'이었다. 요새 부모님이 푹 빠진 여가생활이기도 하다. 원래 두 분이서도 전국 팔방 잘 놀러 다셨다. 그러나 이렇게 초여름이 올랑 말랑 간 재는 좋은 날. 천천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는 여유를 우리와 함께 즐기고 싶으신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직접 양념 닭고기도 준비했다."
아빠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잔뜩 양념 칠 된 고기를 꺼내 보였다. '그 정도까지야..?' 나는 왠지 모를 기시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래는 주방에 발 끝도 안 돌리셨던 아빠. 그런데 이번엔 직접 만든 요리까지 야심 차게 준비한 것이었다. 그뿐이 아녔다. 매운 닭발부터, 꼬치구이, 삼겹살, 비빔면, 가래떡... 맥주에 얹어 와인까지! 엄마가 준비한 음식도 끝없이 이어졌다. 하나하나 음식을 맛볼 때마다, 엄마와 아빠는 '어때애~?' 하는 표정으로 우릴 빤히 쳐다보셨다. 나와 오빠는 (부담을 안고) "맛있어, 엄청 맛있어!"를 연발했고, 부모님은 아이처럼 해맑게 좋아하셨다.
그날 난 전날 회식을 치르느라 꽤 피곤함에 절어 있었다. 깨작깨작 집어 먹고 텐트로 훌렁 비집고 들어갔다. 한두 시간 쪽잠을 자고 텐트 문을 열면, 조금은 아쉬운 기색의 부모님이 빙그레 웃으셨다. 나는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어 노곤한 기운을 참고 의자에 앉아 허리를 꼿꼿이 폈다. 그래도 밀려오는 피곤함에 입 열 힘이 없었다. 오빠 역시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에 종일 곤욕을 치렀다. 평소 장난기 가득한 그였지만, 그 날 만큼은 죽상이 되어 입을 꾹 다물었다. 부모님은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했지만, 피로한 나와 새빨개진 얼굴의 오빠는 제대로 받아칠 여력이 없었다. 결국 대화 사이사이 불편하고도 어색한 침묵이 툭툭 찾아왔다.
그러다 보니 캠핑장에도 밤이 찾아왔다. "저 애 봐봐라. 너무 귀엽지 않니?" 엄마는 흐뭇한 표정으로 옆 텐트를 가리켰다. 한 공룡 잠옷을 입은 네다섯 살 남아가 우다다 달려가고 있었다. 문득 좌우 앞뒤를 둘러보니, 캠핑을 온 많은 부모들이 아이가 어린 젊은 축에 속했다. 하긴, 20대 청년들은 가족이랑 오기 보단 자기들끼리 캠핑을 오니까. 어린아이들이 두어 명 끼어 있는 그들의 캠핑은 유독 환하고 따뜻해 보였다. 아이들의 까르르 재롱부리는 소리가 공기를 타고 우리 가족의 텐트에도 흘러 들어왔다.
그날 난 하루 종일 궁금했다.
엄마 아빠는 왜 그리도 우리를 주말 캠핑에 데리러 오려했는지.
왜 그렇게도 열과 성을 다해 캠핑 음식들을 준비하셨는지.
그런데 가만가만 생각해 보니 알 것도 같았다.
밤새 캠핑장 곳곳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
부모에게 잡은 물고기를 자랑하려는 듯 타다닥, 뛰는 발소리.
밤늦게까지 마쉬멜로우를 구워달라며 칭얼대는 목소리.
아이들과 함께 웃음으로 가득 찬 가족들 사이,
희미한 전등 하나 앞에 두고 늘 두 분이서 마주 앉으셨던 부모님.
부러우셨을 테다. 적적하셨을 테다.
'우리 애들이랑도 와야지.'
재롱을 피우지도, 웃음이 많지도 않은. 업무에 치여 연락도 잘 드리지 않는. 잠깐 고향에 왔다가, 출근을 핑계로 팽하니 가 버리는. 이미 커버릴 대로 커버려서, 이미 결혼을 앞둔 시커먼 어른이 되어 버린. 그래도 여전히 어리게만 보이는 사랑하는 자녀들과 함께 캠핑을 와야겠다고. 그리 다짐하고 또 다짐하셨을 테다.
집으로 돌아가는 다음 날 아침. 아빠는 차를 몰다가 불쑥 무색하고도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애들아, 고맙다. 함께 캠핑 와줘서." 그 목소리가 너무나 진심 어리고 애틋해서, 나도 모르게 눈이 붉게 달아올랐다. 가끔은 우리 존재가 부모에게 얼마나 큰 위로인 지 잊고 살 때가 많다. 이미 다 커 버려 둥지를 떠난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그 마음을 어찌 다 느낄 수 있을까. 다음 캠핑 장소는 제가 정해 볼게요. 내 말에 부모님은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함께 할 수 있을 때, 더 오래 곁을 지킬 수 있길. 그 적적한 마음을 따뜻이 위로할 수 있는 자녀가 될 수 있기를. 그리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