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쏠림만 문제일까? 우리가 잊은 더 큰 질문

AI보다 못한 인재를 길러내는 사회, 학력과 인재를 다시 묻는다.

숫자가 만든 착각, 우리는 정말 ‘세계 최고 학력국가’인가?

한국 사회에서 ‘학력’을 이야기할 때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OECD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다. 수년간 한국은 세계 상위권을 유지해왔다. 문제풀이 능력과 정답 맞히기 속도에서만큼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나라다. 그 덕분인지 우리는 언제부턴가 학력에 대한 자부심을 ‘당연한 것’처럼 여긴다.

하지만 현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이와 전혀 다르다. 교육청에서 교육과정과 기초학력 업무를 맡아 수많은 교사들과 만나온 내 경험을 떠올려본다. 한결같이 돌아오는 이야기는 이렇다. “요즘 학생들, 학력 저하가 심각해요.” 코로나19를 거치며 학력 양극화는 더욱 심화됐고, 단순한 문제풀이와 정답 찾기에는 능숙해도, 새로운 상황에서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진짜 학력’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학력이라는 숫자에 안도하며,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타이틀에 만족하고 있지만, 정작 그 속을 들여다보면 AI보다 못한 인재를 길러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씁쓸한 의문이 든다.


‘학력’이라는 낡은 틀, 산업화 시대의 그림자에 갇힌 교육

문제의 본질은 우리 교육이 여전히 과거의 틀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주입식 암기교육, 선행학습, 문제풀이식 수업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지금도 많은 학생이 ‘정답을 맞히는 속도’와 ‘점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달리고 있다. 그 결과 다른 나라보다 표면적인 학업 성취는 높을지 모르지만, 대학과 사회로 나아갈수록 자기주도 학습 능력 부족, 창의성 부재라는 한계에 직면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허상이 사회 전반에 깊숙이 뿌리내렸다는 것이다. 학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여전히 ‘시험 성적’과 ‘문제풀이 능력’에 머물러 있으니, 교육은 점점 더 정형화되고, 학생들은 정답을 잘 맞히는 기계로 길러진다. 그런데 이제는 AI가 수능 문제를 완벽히 풀고, 인간보다 빠르게 지식을 축적하고 활용하는 시대다. 인간이 여전히 ‘문제풀이 능력’으로 AI와 경쟁한다는 발상 자체가 얼마나 구시대적인지 돌아봐야 한다.


인재의 편향, 의대 쏠림은 증상이자 결과다.

최근 KBS 다큐멘터리 <인재전쟁>은 흥미로운 대조를 보여줬다. 중국은 공대에 인재가 몰리는 반면, 한국은 의대에 인재가 몰린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국가 경쟁력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우리가 말하는 인재란 과연 누구인가?”
혹시 여전히 산업화 시대의 프레임에 갇혀,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톱니바퀴형 인재’를 이상형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때 ‘SW 개발자’가 가장 각광받던 직업이었지만, 불과 몇 년 만에 AI가 'SW 개발자'를 대체하는 세상이 되었다. 미래는 그보다 훨씬 더 빠르고 거칠게 변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의대라는 성공의 보증수표와 안정된 길에 모든 기대를 걸고, 학생들을 끝없는 줄 세우기 경쟁으로 몰아넣고 있다. 하지만 미래 사회가 정말로 필요한 인재는 그 틀 바깥에서 생각하고, 새 길을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다. ‘정답’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사람,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통찰과 상상력을 가진 사람 말이다.


학력과 인재, 다시 정의해야 할 이유

이제는 학력과 인재에 대한 정의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숫자와 점수가 아닌, 진짜 역량을 중심으로 학력을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

진짜 학력이란 예측할 수 없는 문제 상황에서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찾아내고, 때로는 답이 없는 질문 앞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힘이다. 이는 시험 점수만으로는 결코 측정할 수 없는 능력이다.

인재 역시 마찬가지다.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는 더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더 인간다운 가치를 실현할 줄 아는 사람이다. 자유롭게 사고하고, 다양한 관점을 존중하며,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인문학적 성찰과 사회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다.

핀란드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실패를 학습의 일부로 인정하고, 자유로운 토론과 상호 협력을 통해 배움을 확장해가는 문화가 자리 잡혀 있다. 반면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정답’과 ‘성공’만을 강요하며, 실패와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다. 결국 아이들은 ‘생각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정해진 답안지를 채워가는 데만 몰두한다.


AI보다 못한 인간을 양산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눈으로 미래의 인재를 재단한다. AI가 지식과 계산 능력에서 인간을 넘어선 시대에, 인간이 ‘문제풀이 능력’만으로 승부를 보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실패가 예정된 게임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학력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사회적 합의다. 점수가 아닌 역량, 줄 세우기가 아닌 창의적 도전, 자격증이 아닌 자유로운 상상력. 우리는 이제 AI가 감히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을 길러내는 교육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세계 최고 학력’이라는 허상에 갇혀, AI보다 못한 인재를 길러내는 사회로 남을 것이다. 교육이 진짜 미래를 열기 위해서는, 과거의 성공 공식을 깨뜨리고 새로운 질문을 던질 용기가 필요하다.


2025. 8. 6. (수)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


#학력 #세계최고학력 #OECD #PISA #학력허상 #학력저하 #기초학력 #학력격차 #교육현실 #교육위기 #문제풀이교육 #정답중심교육 #창의성부족 #자기주도학습 #교육개혁 #공교육개혁 #AI시대교육 #AI보다못한인간 #미래교육 #교육패러다임전환 #의대쏠림 #인재전쟁 #인재정의 #21세기인재 #국가경쟁력 #새로운질문 #창의적사고 #비판적사고 #융합적사고 #인문학적성찰 #핀란드교육 #실패학습 #토론문화 #협력학습 #교육격차해결 #교육혁신 #교육담론 #교육칼럼 #김대성칼럼 #별의별교육연구소 #미래인재 #교육적상상력 #공교육신뢰 #줄세우기교육 #점수지상주의 #인재양성 #창의적도전 #교육철학 #교육의미래 #교육정책

keyword
이전 19화찜통교실을 외면한 교육예산, 무엇이 우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