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아름다운 꿈을 가진 소녀들이었다!
" Boys, be ambitious!라는 말이 있다. 홋카이도 부학장으로 왔던 클라크 교수가 1877년 미국으로 돌아갈 때 학생들에게 한 말이다. 청년들에게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꿈과 열정'은 정말 중요한 가치이기에, 나 또한 젊었을 때 많이 들었던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산티아고는 나이와 상관없이 '꿈과 열정'을 용기 있게 실천하는 순례자들을 만날 수 있는 길이다. 나이의 제한을 뛰어넘는 아름다운 이들을 만나는 것이 행복임을 알았다."
내가 원해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혼자 걷기로 결정했지만, 사실 여러 가지 염려와 걱정이 있었다. 아무리 용기를 내더라도 50대 후반의 여자가 처음 가보는 순례길을 혼자 걷는다고 하면, 지인들도 걱정을 하고 나도 은근히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첫째는 안전에 대한 염려이다. 요즘의 세상이 이런저런 일들이 많기에, 여자가 혼자 다닌다는 것이 그리 안전하지 않음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마음은 열고 대화를 나눔과 동시에 안전을 위한 조심성도 필요함을 생각했다. 둘째는 건강에 대한 염려이다. 뼈도 약해지고 근육도 손실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걷다가 발목이라도 삐끗하면 걷는 것에 차질이 생기기에, 물집이 생기거나 컨디션이 안 좋을 때의 상황을 미리 염두에 두면서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을 순례길 여행의 주요점이기도 했다. 그래서 동키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는데, 이 결정은 나에게는 매우 효과적인 판단이어서 순례길 걷는 내내 최고의 컨디션으로 걸을 수 있었다.
그룹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분들 중에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60대, 70대 한국 여자분들도 많으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혼자 순례길을 걷는 여자들 중에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을 만날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사실 처음 걷는 순례길이기에 혼자 걷는 분들이 어느 정도 많을지 미리 예측을 하기가 어려웠다. 전 세계에서 오는 분들의 성별은 어떨지, 연령대는 어떨지에 전혀 생각을 하지 못하고 만남에 대한 불투명한 기대를 가지고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5월의 산티아고 순례길은 만남의 축복의 길이었다. 유럽은 거의 모든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을 만난 것 같다. 영국, 덴마크, 스웨덴,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 정말 많은 나라에서 온 젊은이들과 중년들을 만난 것 같은데, 대부분 홀로 걷는 순례자들이었다. 아시아에서 온 청년들도 많이 만났다. 우리나라에서 온 혼자 온 청년들도 많이 있었고, 그다음은 대만에서 온 청년들도 만났고, 베트남에서 혼자 온 여성 청년도 만났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건너온 미국과 호주에서 온 순례자들도 만났다. 모두들 저마다의 우주를 품고 있었고, 저마다의 영화 같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었다. 순례자들과의 만남과 대화는 순례길이 주는 커다란 선물이었다. 귀한 만남들 중에 오늘은 순례자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을 깨주신 정말 아름다운 세 분의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로르카 알베르게에서 친구가 된 독일 친구와 함께 대화를 하면서 걷는 날이었다.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양쪽 손에 스틱을 짚고 그리 작지 않은 배낭을 메고 거북이처럼 아주 천천히 걸으시는 분이 앞에서 걷고 계신 것이 보였다. 너무나 천천히 걷고 계셨기에, 우리들의 거리는 점점 좁혀졌고 마침내 같은 지점에서 걷게 되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천천히 걷고 계셨기에, 대화를 건네려고 얼굴을 보게 되었다. 머리는 백발에 얼굴에는 주름이 꽤 많은 할머니이셔서 마음으로는 흠칫 놀라면서 말을 건넸다.
"Hi! Good morning! Where are you from?"
"I am from Australia, Melbourne!" 연세가 있으신대도 엄청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하신다.
"I am from Korea." " I am from Germany."
우리도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인사를 하면서, 왜 그렇게 천천히 걸으시는지 여쭤보았다. 다리가 좀 안 좋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을 너무나 걷고 싶어서 호주에서 오셨다고 하신다. 동키 서비스도 안 하시고 자신의 배낭을 오롯이 메시고, 알베르게 예약도 안 하시고 천천히 그날 하루의 길을 걸으신다고 하신다. 그런데 얼굴에 평안과 웃음이 가득하다. 오히려 나의 컨디션을 물어보는 여유가 있으셨다.
나는 속으로 엄청 놀랐다. 70대의 할머니께서 유럽도 아닌 호주에서 혼자 오셨는 데다가 다리 건강도 좋지 않아서 아주 천천히 걷고 계시는데도 조금의 조급함은커녕 평안한 얼굴이신 것에 사실 충격을 받으면서 존경의 마음까지 들었다.
'이게 가능하단 말인가? 나는 아주 건강한데도 50대 여자라는 선입견으로 엄청 걱정을 했었는데...'
그리고 엄청 호탕하셨다. 그분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서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손수 적으신 명함을 주시면서 그 주소로 사진을 보내달라는 유머의 말씀까지 하신다. 아주 천천히 걸으시는 분을 뒤에서 처음 봤을 때는 사실 걱정스러운 마음이 있었다. 어디가 불편하시기에 저렇게 천천히 걸으실까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아주 커다란 우주를 품은 마음이 아주 넉넉한 분을 만나는 경험을 하는 것 같았다. 목표가 있으면 한계를 넘어서는 대단한 힘을 가진 분을 만나는 경외감이 들기도 했다. 그분의 속도를 인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우리는 "Buen Camino!" 인사를 하고 앞으로 먼저 걸어갔다. 그리고 독일 친구와 나는 다음 마을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쉼을 가졌다.
한 시간쯤 쉬고 난 후, 우리는 오늘 예약한 알베르게가 있는 마을을 향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십 여분 걸어가고 있는데 앞에서 누가 걷고 있었는지 상상이 되는가? 조금 전에 만났던 멜버른에서 오신 할머니께서 앞에서 아주 천천히 걷고 계신 것이 아닌가! 나는 옛날이야기로만 알고 있었던 '토끼와 거북이' 전래 동화를 눈앞에서 실제로 보게 되는 흥분을 느꼈다. 계속 꾸준히 하는 끈기의 힘과 결과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경험하는 엄청난 순간이었다. 속으로는 나의 모든 세포가 놀라는 감동의 물결이 엄청났지만, 우리는 그분의 속도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그 대단하신 호주 할머니를 스쳐 지나갔다.
그 이후로는 그 할머니를 만나지는 못했다. 할머니는 그 걸음 속도로 800km를 온전히 걸어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씀하셨다. 건강하게 잘 걸으셨는지, 순례길을 완주하신 후 지금은 호주 멜버른의 집에 잘 도착하셨는지 궁금하다. 그 할머니께서 주신 명함을 지금도 나는 가지고 있다. 언젠가 호주 멜버른에 가게 될 날이 있으면 이 명함을 가지고 갈 것 같다. 씩씩하신 호주 할머니는 오늘 이 밤에도 호탕한 웃음을 웃고 계실 것 같다.
두 번째 할머니는 미국 시애틀에서 오신 분이다. 이 분을 처음 본 것은 산토도밍고 마을에 있는 알베르게 부엌에서였다. 이 알베르게는 산토도밍고 시립 알베르게로 꽤 큰 알베르게여서 부엌과 식당을 이용하는 순례자들도 많았다. 나도 한국에서 온 순례자들을 만나서 같이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한 할머니가 쟁반을 들고 지나가시는데 음식이 그릇에서 떨어질 정도로 손을 심하게 떨고 계셨다. 연세도 있어 보였고 손도 불편해 보여서 어떻게 순례길을 걷게 되었는지 궁금했지만, 다가가서 말을 거는 것이 실례가 될 것 같아서 그냥 바라만 보다가 헤어졌다.
다음 날 아침, 알베르게의 아침은 새벽 5시부터 시작한다. 아침을 먹는 사람들, 짐을 싸는 사람들.. 모두들 저마다의 아침 패턴으로 출발 준비를 하고 출발한다. 순례길에서의 나의 아침 패턴은 차를 마시면서 천천히 출발 준비를 하는 여유형이다. 좋은 컨디션으로 하루를 걷는 것이 주요 목적이기에, 아침부터 나는 천천히 움직이면서 나의 컨디션을 최적의 상황으로 만든 후 출발하는 편이었다. 이 날도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출발한 후, 8시가 넘어서 내가 잔 방에서 가장 늦게 출발했다.
5,6 km를 걸으니 다음 마을에 들어서니 예쁜 길거리 카페가 보였다. 나보다 일찍 출발하신 순례자들이 간단한 빵과 커피로 아침을 먹고 있었다. 하늘과 구름이 정말 예쁘고 날씨도 좋아서 나도 잠시 쉬어 가기로 생각하고, 주문하려고 서 있는 줄에 합류했다. 그런데 줄 앞쪽에 어젯밤에 알베르게에서 봤던 그 할머니가 서 계셨다. 할머니는 주문을 하고 트레이에 빵과 커피를 받아서 가시는데, 어젯밤처럼 손을 심하게 떠셨고 트레이에 커피와 주스가 쏟아졌다. 나는 빨리 뛰어가서 대신 트레이를 들어서 할머니가 가리키시는 테이블에 갖다 드렸다. 할머니는 밝은 미소를 띠며 "Thank you!"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도움이 필요한 분을 도와드렸다는 기쁜 감정으로 함께 웃었다. 나는 다른 테이블에서 간단한 아침 식사를 기분 좋게 먹었다.
각자 다른 테이블에서 먹었는데, 비슷한 시간에 같이 출발하게 되었다. 할머니는 당신의 우주만큼 큰 인생 스토리를 말씀하셨다. 미국 시애틀에서 오셨는데, 당신은 파킨슨 병으로 손을 떠신다는 것이었다. 몇 년 전부터 산티아고 순례길을 버킷 리스트로 걷고 싶었는데, 남편이 더 심한 파킨슨 병이 있어서 남편을 위한 병간호를 하기 위해서 오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최근에 남편의 병이 조금 호전이 되면서 남편이 아내에게 다녀와도 괜찮을 거 같다고 권하셔서 오시게 되었다고 말씀하실 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할머니의 스토리에 마음 한편이 찡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 마을까지 같이 걸으면서 많은 대화도 나누고 서로 사진도 찍어주었다. 할머니는 손을 많이 떠시는데 내 사진도 찍어달라고 부탁드렸다. 최대한 잘 찍으려고 노력하시는 할머니의 마음이 느껴져서 또 한 번 마음에 울림이 느껴졌다. 할머니께서 찍으신 사진을 함께 확인했는데, 그 누구도 찍을 수 없는 할머니만의 독특한 느낌이 담겨 있어서 산티아고 순례길의 큰 추억이 되었다. 할머니는 물건을 들 때는 손을 떠시지만, 다리는 엄청 건강하셔서 걸음걸이는 나보다 더 빨리 걸으셨다. 우리는 자신만의 속도로 걸으면서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어느 알베르게에서 우리는 정말 반가운 재회를 하면서 깊은 포옹을 했다.
이 날은 다른 날보다 일찍 출발해서인지 좀 쌀쌀한 날씨를 느끼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어느 한 분이 지나가시는데 아주 얇은 옷을 입고 걸어가시는 모습이 많이 춥게 보였다. 이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나는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나의 성격을 좀 더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조금은 그런 편이지만 각자 저마다의 방법이 있겠거니 생각하고 지나칠 때도 있는데, 순례길에서는 먼저 보고 먼저 느낀 사람이 말을 걸고 도움을 드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나에게 강하게 있었던 것 같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70대 정도로 보이는 할머니였다. 나는 경량 패딩을 입고 있어서 그리 춥지는 않았는데, 얇아 보이는 티를 입으신 할머니께서 많이 추워하시면 잠깐 빌려드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춥지 않냐고 대화를 건넸다.
"The weather is so chilly. Are you okay?"
" A little bit cold. But I am okay!"
할머니는 동키서비스로 배낭을 보냈는데, 낮에는 온도가 올라가기 때문에 옷을 모두 보냈다고 하셨다. 곧 날씨가 따뜻해질 거로 예상되기에 괜찮을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 그 정도로 말씀하시는데 처음 보는 분에게 나의 의견으로 옷을 벗어 드리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 차마 벗어드리지는 못하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오셨는데 쌍둥이로 아들과 딸이 있다고 하신다. 그런데 쌍둥이의 성격이 정반대인 것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하신다. 딸은 활발하고 사교적인 성격인데 비해 아들은 사람과의 친밀한 관계를 가지는 것이 힘들 정도로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사회생활을 하는데도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쌍둥이이고 같은 가정환경에서 자랐는데도 이렇게 다른 아들과 딸의 성격과 기질을 보면서, 후천적인 교육이나 환경보다 선천적인 유전의 영향이 더 큰 것 같다고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자녀를 양육하시면서 할머니가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점들임을 생각하면서, 나는 교육가이기에 대화를 나누면서 타고난 성격이나 기질과 교육을 통한 변화와 성장에 대해 생각을 하는 시간이었다.
이번 산티아고 순례길도 따님이 처음에 5일 정도는 함께 걷다가, 할머니가 잘 걸으시는 것을 확인하고 스웨덴으로 먼저 갔다고 따님 자랑을 할 때 할머니는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할머니와 1시간 여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해가 떠올랐고 어느새 따뜻한 온기를 느끼는 날씨가 되어 있었다. 혼자 걸었더라면 아침의 차가운 공기를 그대로 느꼈을 터인데, 따뜻한 대화로 추위는 어느새 사라지고 포근한 날씨를 금세 느낄 수 있었던 아침이었다. 따뜻한 공기를 느끼며 우리는 각자의 속도를 존중하는 걸음을 걸었고, 그 걸음은 자연스러운 헤어짐으로 이어졌다.
세 할머니 모두 프랑스 길 800km를 완주하시는 것이 이번 순례길의 목적이라고 말씀하셨다. 일흔이 넘으시고 그리 건강하시지도 않으신 분들이 800km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잠깐의 대화를 나누었지만, 저마다의 깊은 인생 스토리를 가지고 계심을 알 수 있었다. 몸이 건강해서 걷고 계시다기 보다, 저마다의 꿈과 가치를 가지고 걷고 계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살아온 인생과 앞으로 살아가실 귀한 삶에 존경의 마음을 담아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