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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th Oct 05. 2024

상실의 미학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필요한 누군가에게 흘려 보내는 거야! 

너희가 밭에서 난 곡식을 거두어들일 때에는 밭 구석구석까지 다 거두어들이지 말고, 

  또 거두어들인 다음에 떨어진 이삭을 줍지 말아라.

 그 이삭은 가난한 사람들과 나그네 신세인 외국 사람들이 줍게 남겨 두어야 한다." (레위기 23:22)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표현하는 참 아름다운 말씀이다. 말씀에 '아멘'하면서도 일상의 삶은 그리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가진 것이 그리 넉넉하지 못하다는 핑계를 대면서 구석구석까지 다 거두려고 애쓸 때가 있고, 거두어들인 다음에 떨어뜨리면 왠지 어리숙해 보일 것 같아서 안 떨어뜨리려고 노력할 때가 있는 것 같다. 일상에서는 무엇을 하나 잃어버리면 몇 날 동안 찾기 위해서 애를 쓰고, 찾지 못하면 상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속상해하기도 한다.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가지 않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무언가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꽤 슬픈 일이다. 왜냐하면 순례길을 걸을 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챙겨 온 것이고 다시 구입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매일매일 함께 했기에 벌써 애착 관계가 맺어져서 무심한 헤어짐을 하기가 쉽지 않다. 순례길에서 나는 나와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은 4개의 물건을 잃어버렸다. 어딘 가에 두고 왔음을 알아차리는 순간에는 다시 만나지 못한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엄청 슬프다. 그리고 그 물건과의 추억을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마음에서 떠나보내는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물건이 다른 누군가에게 쓰임이 있는 물건으로 잘 사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별의 시간을 마무리한다. 지금은 내 곁에 없지만 더 좋은 주인을 만나서 잘 지내고 있을 친구들을 소개해본다!


고마워! 너 덕분에 세상과 연결되어 있었고, 외롭지 않았어!


   모두에게 그러하듯이 이번 산티아고 순례길은 나에게 매우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하나는 일상의 공간을 떠나서 오롯이 기도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하루종일 걸으면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기쁨을 넘어서는 행복이었다. 또 하나는 나의 50년 삶을 되돌아보면서 남은 나의 인생을 창의적으로 그려보고 싶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나의 두 가지 목적에 가장 적합한 길이었다. 그래도 혼자 걷는 순례길이었기에 때로는 외로움을 느낄 때 의미 있는 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했다. 말씀도 듣고 음악도 듣고 누군가의 이야기도 듣는 것이 필요해서 준비한 것이 갤럭시 버즈였다. 그때 그때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는 순례길에서 나의 최고의 친구였다.

   순례길에서의 첫째 날, 24km의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 날씨가 정말 좋아서 너무나 행복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어려운 첫째 날이 주는 긴장감 또한 엄청 있었다. 의식은 기쁨과 행복의 감정이 대부분이었는데, 무의식은 앞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혼자 잘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긴장과 책임감이 있었던 것 같다. 산맥을 넘는 길이어서 순례자들의 걷는 속도도 저마다 순례자들과 긴 대화를 하기는 쉽지 않았다. 저마다의 걷는 속도를 존중하면서 눈인사를 하고 "Buen Camino"정도로만 인사를 하고 지나가기도 했다. 그러한 상황과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해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 말씀과 음악을 들을 때가 많았다. 버즈가 나의 친구였다. 자연이 너무나 아름답고 멋져서 행복한 걸음이었지만, 버즈가 없었다면 걸었던 7시간 내내 즐겁지는 않았을 것 같다. 때로는 엄청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피레네 산맥을 넘으면서 음악을 듣다가 잠시 꺼두고 자연 소리를 듣다가, 말씀을 듣다가 또 끄고 자연을 즐기면서 한참을 걸었을 때이다. 피레네 산맥 8부 능선을 지날 때쯤이었다. 음악을 듣고 싶어서 귀에 버즈가 꽂혀 있는지를 확인하는데, 오른쪽 귀가 휑하다. 아무것도 꽂혀 있지 않는 가벼움이다. 반대로 왼쪽 귀에는 버즈가 묵직하게 꽂혀 있다. 이 무슨 일인가!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시간을 거꾸로 돌리면서 지나간 일들을 생각해 본다. 마지막 음악을 들었을 때를 생각해 보니, 1시간 20분쯤 전이었다. 그러면 1시간 20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오른쪽 귀와 함께 있어야 할 버즈가 없어졌단 말인가? 그 사이에 나는 한 번 멈추어서 쉰 적이 있었다. 그리고 더워서 바람막이 옷을 벗었던 기억이 났다. 아! 옷을 입거나 벗을 때 버즈가 떨어지는 경험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였나 보다. 정확한 장소를 알면 되돌아가서 찾고 싶을 정도로 순례길에서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어디인지도 모르겠고, 나의 버즈는 연초록색이어서 온통 풀밭인 피레네 산맥에서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 그 자체였다. 

   왼쪽으로만 음악을 들으면서 나는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오늘이 순례길 여행의 첫째 날이다. 여행이 끝날 때까지 목숨을 걸고 왼쪽 버즈를 사수해야 한다. 항상 왼쪽 귀를 확인했고, 알베르게에 도착할 때도 알베르게를 출발할 때도 늘 먼저 잘 있는지를 확인하면서 3주의 순례길을 걸었다. 오른쪽 버즈는 지금도 피레네 산맥의 그 어딘가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있겠지. 왼쪽 버즈는 지금도 나와 함께 있다!



순례길에서 너는 꼭 필요한 것 같아. 특히 산을 내려갈 때 너의 존재는 특별하더라!


   나는 한국에서도 트레킹이나 등산을 좋아한다. 한 달에 20만 보 이상을 걷는 편이고, 산을 오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스틱을 구입한 적도 사용한 적도 없었다. 필요성도 크게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무게감이 있어서 걷기에 방해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선입견도 있었다. 2022년 4월에 한라산을 오를 때도 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걸었고 정상까지 잘 올라가서 백록담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순례길 여행 준비 물품 리스트에도 스틱을 넣지 않았다. 배낭도 사고 트레킹 신발도 새로이 구입했지만, 끝까지 스틱은 구입하지 않았다. 스틱 무게도 길이도 부담이 되었고, 사용해 본 적이 거의 없었기에 정말 꼭 필요할 거라는 확신도 들지 않았다.

   출발하기 일주일 전에 한 지인이 순례길 준비가 잘 되고 있는지 물어보면서 스틱을 꼭 집어서 준비했는지 질문을 했다. 함께 청계산을 오른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스틱이 없는 나에게 스틱을 강조하셨던 것이 기억이 났다. 아직 준비를 못했다고 하니, 스틱의 중요성을 강조 또 강조하신다. 한라산은 하루의 등산이었지만, 이번에는 3주 동안의 순례길인 데다가 어떤 길들이 펼쳐질지 잘 모르고, 이렇게 나의 안전을 위해서 강조해 주시는 분이 계시니 구입을 하기로 결정했다. 스틱의 무게와 길이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어서 초경량 3단 접이 스틱을 구입했는데, 배낭보다 신발보다 더 비싸서 결과적으로 최고의 고가 물품 구입이 되었다. 3단 접이여서 캐리어에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순례길 첫날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 순례길에서 정말 꼭 필요한 것이었음을 걷는 내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산을 내려올 때 스틱은 완전 필수품이었다. 스틱을 사용했는데도 무릎 관절에 약간의 통증이 있었는데, 없었더라면 무릎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하기가 힘들다. 그런데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한 후 수도원 알베르게에 빈 침대가 없어서 다음 마을로 이동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스틱을 두고 택시를 타서 고가의 초경량 스틱은 단 하루 동안 나의 친구였고, 그리고는 나를 떠나버렸다. 잃어버리게 된 사연은 지난주 연재글에서 상세하게 사연을 나누었다. (https://brunch.co.kr/@withjm/3)  2,3일 동안 스틱 없이 걷다가 용서의 언덕을 넘은 후, 내려올 때 스틱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고 푸엔테 라 레이나 마을에서 스틱을 다시 샀다는 얘기까지 했던 걸로 기억이 난다.

피레네 산맥을 넘은 후 잃어버린 초경량 스틱
푸엔테 라 레이나 마을에서 다시 산 스틱


매일매일 엄마의 품같이 포근한 너의 존재, 잃어버린 후 더 크게 느껴졌어!


  매일매일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먼저 하는 일들이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순례자 여권에 스탬프를 찍고, 두 번째는 동키서비스로 나보다 먼저 알베르게에 도착한 큰 배낭을 찾고, 세 번째는 알베르게 호스트로부터 아주 얇은 일회용 침대 매트와 베개 시트를 받아서 배정받은 침대로 간다. 그날 배정받은 침대는 단 하루 동안이지만 나에게는 가장 소중한 공간이기에 엄청 의미를 생각하면서 침대를 정리한다. 호스트로부터 받은 일회용 침대 시트를 깔고 베개 시트를 입힌 후,  내가 가지고 온 아주 예쁜 체크무늬 매트를 깔고 침낭을 꺼내서 둔다. 그렇게 의미를 담아서 하루 동안 나의 몸을 맡길 소중한 공간 정리가 완성된다. 

  침대를 정리할 때, 예쁜 체크무늬 매트를 까는 순간에 기분은 엄청 좋다. 순례길의 여정이지만 대충 자는 것이 아니라, 하루 동안 함께 할 나의 공간을 예쁘고 아늑하게 만드는 즐거움이 공간에 가득하다. 그 공간은 먼 길을 걸어온 피곤한 나의 몸을 맡기는 안식처이자, 다음 날 아침에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를 밤새 나에게 주는 엄마의 품 같은 곳이었다. 침대를 다 정리하면 하나의 의식처럼 배시시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몇 장 찍는다. 언젠가 이 사진을 꺼내어 볼 때, 이 순간의 포근한 감정을 느낄 것을 기대한다.

로르카에는 한인 아줌마가 운영하는 알베르게가 있다. 그 알베르게에서 침대 정리를 한 후 한 컷^^
침대 정리를 한 후, 침대에 누워서 그 순간의 감정을 담아 또 한 컷^^


  아침에 일어나면 다시 순례길을 걷기 위해 침대를 정리하고 짐을 싼다. 침낭을 돌돌돌 잘 말아서 배낭 제일 아래에 넣고, 예쁜 체크무늬 매트를 잘 개서 침낭 위에 넣고, 잠옷도 넣고 세면도구도 넣고 수건도 넣고, 걸을 때 필요 없는 물품들은 모두 큰 배낭에 넣는다. 걸을 때는 작은 주황색 배낭을 메고 걷는다. 작은 주황색 배낭에는 모자, 작은 수건, 무선 충전기, 사과, 물을 넣고, 비가 올 날씨면 우의도 넣고 걸을 준비를 한다. 아침을 먹고 출발하기 전에, 큰 배낭을 동키서비스로 오늘 도착할 다음 마을의 알베르게로 보낸다. 동키서비스는 간단하다. 알베르게마다 동키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종이봉투가 있다. 그 종이봉투에 걸은 후 오후에 도착할 알베르게 주소를 적고 5유로를 넣고 큰 배낭 앞에 잘 매두면 된다. 그리고 나는 그날의 순례길을 걷는다. 5~7시간을 걷고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나의 큰 배낭은 나보다 빨리 와 있다. 차로 왔으니 이미 오전에 도착해 있는 것이다. 동키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그날 도착할 알베르게를 미리 예약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알베르게를 미리 예약하지 못해서 동키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일본인 부부를 만난 적이 있었다. 큰 배낭을 메고 계속 걸었기에 일본인 남편은 발목을 많이 아파하고 있었다. 이 부부는 알베르게를 어떻게  예약하는지 몰라서 힘들어하고 있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는 나의 성격과 기질은 그때도 발동이 되어서 알베르게를 예약하는 3가지 방법을 알려주고 헤어졌다. 같은 알베르게에서 묵고 있어서 30분 후에 예약을 했는지 물어보니, 아직 못했다고 한다. 또 나의 오지랖이 발동되어 결국 그날 내가 직접 알베르게에 전화를 해서 예약을 대신해주었다. 일본 사람 2명으로 예약을 해서 알려주었다. 동키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 그들의 표정을 상상해 보라! 이후에 우리는 페이스북 친구가 되었는데, 이 이야기는 즐겁고 훈훈하면서 긴 스토리가 있기에 다음에 구체적으로 쓰고자 한다. 오늘의 글 주제는 상실의 미학이기에^^


   산티아고 순례길 14일 차에 아타푸에르카 마을에 도착했다. 알베르게 이름은 INpulso 알베르게이다. 알베르게 입구부터 순례객들을 환대하는 아늑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입구에 들어서니, 알베르게 호스트와 직원들 모두 환한 미소로 반겨준다. 오는 동안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컨디션은 어떤지 물어보고, 웰컴 허브차를 권한다. 그리 크지도 않은 가족 같은 분위기의 알베르게이기에 엄청 만족한 기분으로 방을 안내받는다. 4명의 여자 순례자들을 위한 방이다. 미국에서 오신 80대의 할머니, 프랑스에서 온 30대의 여성, 독일에서 온 20대의 청년, 그리고 내가 하루 동안 같은 방을 사용하게 되었다. 산티아고 순례자들은 항상 서로에게 친절하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나눈다. 어떻게 산티아고 길을 걷게 되었는지, 이번이 처음인지, 이번 순례길의 여정은 어떻게 걸을 예정인지 등등 대화를 나누는 시간들이 참 정겹다. 이 알베르게 호스트는 그날 함께 묵는 모든 순례자들이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특별한 시간을 진행하였다. 16명 정도의 순례자들이 함께 저녁을 먹었는데, 참 즐겁고 특별한 시간이었다.

    

  다음 날 아침,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이 날은 다른 알베르게에서 묵은 독일 친구와 아침에 만나서 부르고스까지 같이 걷기로 한 날이었다. 나는 아침에 천천히 출발하는 스타일인데, 이 날 비가 온다고 독일 친구가 빨리 출발하자고 한다. 약속 시간까지  만나는 장소에 나가기 위해서 아침 준비 시간이 분주했다. 분주하게 준비하고 서둘러 출발하면 무언가를 두고 떠나게 되는 건, 나만의 상황은 아니겠지! 열심히 걷고 부르고스에 있는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그날의 침대를 정리하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나의 예쁜 체크무늬 매트가 없다는 것을!

   아침에 출발하기 전에 INpulso 알베르게에서 침대를 정리하고 배낭을 싼 상황을 기억하려고 머리를 쥐어짰다. 침낭을 배낭에 넣고 매트를 개서 배낭에 넣는 것은 자동적 행동인데, 왜 배낭에 매트가 없는 걸까? 아차차!!! 분위기가 너무너무 좋은 INpulso 알베르게는 일회용 침대 매트를 주지 않았고, 침대 위에 예쁜 매트가 이미 깔려 있었다. 그것도 유럽 분위기의 예쁜 파란색 계통의 체크무늬 매트가 깔려 있었다. 그래서 도착한 저녁에 나의 매트를 깔면서 나는 생각했었다.  '체크무늬 매트 위에 체크무늬 매트를 까네. 그래도 내 매트는 브라운 색 계통이니 구별이 되어서 다행이다. 아침에 잘 챙겨야겠네!'라고 까지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침에 분주하게 출발 준비를 하다가 나는 내 매트를 챙기지 못했다. 체크무늬와 체크무늬가 섞여 있어서 하나의 매트라고 착각한 것을 부르고스에서 알게 되었다. 엄마 품처럼 포근한 나의 예쁜 체크무늬 매트는 그렇게 분위기 있는 알베르게에서 또 누군가에게 포근한 존재감을 발하고 있을 것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란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 

   "나를 구하는 유일한 길은 남을 구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순례자들은 저마다 걷는 이유와 목적이 다르겠지만,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가치'와 관련된 이유와 목적으로 걷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공통된 모습은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모습보다 처음 본 사람에게도 관심을 표현하는 이타적인 모습을 만나는 모든 순례자들에게서 느낄 수 있다. 

   걷다가 나무 그늘이 있으면 나는 종종 앉아서 쉼을 가진다. 하늘도 보고 바람도 느끼고 움직이는 나뭇잎도 살펴보고 눈도 감아본다.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순례자들에게 눈인사도 한다. 지나가는 많은 순례자들이 나에게 묻는다. "Are you okay?" 혹시 발이 아파서 내가 앉아 있을까 라는 생각에서 물어보는 것 같다. 무엇이라도 도와줄 일이 있으면 돕겠다는 얼굴 표정이다. "Yes! I am good!" 감사하다는 얼굴 표정으로 대답하면, 서로가 미소를 띠며 헤어진다.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 왼쪽 이어폰만 귀에 꽂고 음악을 들으면서 한참 걷다가 의자가 있어서 쉬기로 했다. 물도 마시고 사과도 먹고 더워서 재킷도 벗고 쉬다가 출발하려고 일어섰다. 그리고 왼쪽 귀를 만지니 이어폰이 없다!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있는 순례자들이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이어폰을 떨어뜨렸다고 말하니, 한참 함께 찾아 준다. 땅바닥을 뒤지면서 같이 찾는 모습이 꽤 우스꽝스러웠다. 다행히 찾았고, 계속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쁨을 누렸다.

  손을 꽉 움켜쥘수록 다른 것을 얻을 수 없다. 손을 활짝 펼 때 나의 것은 누군가에게 가고, 어떠한 새로운 것이 나의 손으로 들어올 수 있다. 나의 상실이 누군가에게는 획득이 되고, 그리스인 조르바의 말처럼 그 누군가의 기쁨은 나의 기쁨과 연결이 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날 때는 혼자 떠났는데, 돌아올 때는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한국에 왔다. 그리고 그들과 지금도 연락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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