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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Oct 25. 2024

나는 스타트업에 잘 맞는 사람인가?

스타트업에 잘 적응하고 뛰어난 성과를 내는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

한국의 스타트업에서 약 1년간 업무를 진행하며 스타트업 조직에 잘 적응하고 뛰어난 성과를 내는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에 대해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이미 몇 차례 이직과 전직을 통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스타트업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난 뭘 하는 사람이지?’를 비롯한 물음표만 많아져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지금 이걸 하는 게 맞나?’와 ‘이걸 이렇게 하는 게 맞나?’였고, 다들 여기서 자기 할 일을 척척 해나가고 있는데 나만 헤매고 있는 것 같아 자존감마저 하루하루 낮아졌다.


모두 각자의 어려움과 고충이 있었겠지만, 나보다는 스타트업 환경에 어쨌든 잘 녹아들고 적응하는 것 같아 보였던 동료들의 특징을 정리해 봤다.


1. 비즈니스 액션들을 ‘실험'으로 인식한다 
= 액션 그 자체가 탐색 과정의 일부이다.

스타트업 이전에 경험했던 조직에서는 분석과 탐색을 마치고 난 후 액션을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액션을 한번 취할 때마다 상당한 리소스가 투입되고, 지켜보는 눈이 많아 잘못된 시도 한 번으로 잃게 되는 비용 또한 크기 때문에 액션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반면 스타트업에서는 실패의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에 빠른 시도와 실패를 통해 시장을 이해하는 방식을 취한다. 과거 경험이 적고, 비싼 리서치를 진행할 비용도 시간도 없으니 하나하나 부딪쳐가며 ‘이렇게 하면 고객이 클레임 하는구나’, ‘이렇게 하면 고객이 n% 떨어지는구나’ 등 고객과 시장의 반응을 통해 학습해야 한다.

스타트업의 실험적 접근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면 혼자 매일 탐색을 위한 실험이 아닌 결과를 위한 시험을 치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점점 더 보수적인 액션을 취하게 되고, 조직 입장에서는 왜 제대로 된 탐색조차 시도하지 못하는지 답답해하게 된다.


2. 부정적인 결과를 하나의 레퍼런스로 인식한다 
= 실패에 대한 정서적인 타격이 작다.

스타트업 환경에서는 탐색이 액션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결과조차도 소중한 학습의 기회로 여긴다. 아니, 여길 수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너무나도 흔해 빠진 클리셰에도 불구하고, 막상 실망스러운 결과를 마주하면 스트레스받으며 더 정확하게 예측하고 대비하지 못한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기 쉽다. 그러지 않도록 멘털 관리가 중요하다.

회고를 진행하는 경우에도 실패의 원인을 깊이 파고들기보다 예상과 실제 결과 간의 차이를 분석하고, 앞으로의 행동 방향을 빠르게 설정하는 데 초점을 맞출 수 있어야 한다. ‘이 방법으로는 원하는 결과를 내지 못하는구나, 다음에는 어떤 방법을 시도해 볼까?'로 빠른 사고의 전환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시장과 고객이 급변하고 오늘 먹힌 방법이 내일은 먹히지 않을 수도 있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왜 이 방법이 먹히지 않았는지 분석하는 것조차 의미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냥 ‘이건 더 이상 답이 아니구나'를 빨리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적응하고 살아남는 것 아닐까 싶다.


3. 체계에 집착하지 않고 주어진 자유와 권한을 잘 활용한다 
=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냥 한다.

체계 없음에 대해

스타트업은 어떤 문제를 풀지/그게 진짜 문제가 맞는지/그 문제를 푸는 게 의미가 있는지/그 문제를 우리가 제일 잘 풀 수 있는지 등을 계속 탐색하는 과정을 겪는다. 따라서 구성원들은 업무 체계를 갖추기 어려운 상태에서 일을 상당 기간 지속해야 한다.

체계적인 절차를 따르는 방식에 익숙한 사람은 자꾸 과거 기록과 양식을 찾게 되는데, 애석하게도 내부의 기록은 대부분 불완전하거나 실패한 기록뿐이고 외부에서는 비슷한 시도를 한 기록조차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고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만 가득하다. 이 상태에 적응하지 못하면 지도도 이정표도 없이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이 되어 투입 대비 결과가 형편없는 상태에 놓이게 되어 버린다.

체계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은 일단 아이디어를 적고, 실험하고, 아니다 싶으면 다시 수정하고 그 과정을 반복한다. 그렇게 또 하나의 레퍼런스를 차곡차곡 쌓아 자기만의 이정표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 결국 스타트업에서 살아남는 것 같다.

자유와 권한에 대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소수인 큰 조직에서는 보통 문제상황이 발생하면 ‘액션을 멈추고 직속상관에게 상황을 보고한다’가 정답일 때가 많다. 승인되지 않은 액션을 취할 경우 독단적인 행동에 대해 문책당할 수도 있고. 

하지만 스타트업에서는 개개인에게 주어진 의사결정 권한의 폭이 꽤 넓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상황을 보고하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고 “이런 상황이 발생해서 이런 판단으로 저런 행동을 취했고 abc 결과가 나타났다, 따라서 이를 바탕으로 이런저런 후속 액션을 취해볼 예정이다.”가 모범 답안에 가깝다.

일견 후자가 더 쉬워 보이지만 규율에 벗어난 말과 행동은 징계의 대상이 되는 환경에 있던 사람에게는 새로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 '독단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것'도 모자라 '행동을 먼저 취하고 그 행동으로 인한 결과를 보고한다'는 그 모든 단계가 난관이다. ‘이 상황에서 이런 판단을 내리는 것이 맞나?’ ‘보고 없이 이런 행동을 취해도 되나?’ ‘이 결과가 최선인가?’ 등등. 

정답이 정해진 환경에서는 정답을 잘 숙지하고 따르는 것이 중요하지만 답이 여러 개인 환경에서는 본인이 그동안 쌓아온 레퍼런스와 이정표를 가지고 답을 정하여 c레벨과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 일이자 능력이다. 여기서 스스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직속상관에게 상황과 옵션만 보고한다면 ‘자기 일에 오너십도 없고, 의사결정을 남에게 떠넘기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규칙 없음이 주는 자유에는 경험 없음에 따른 비효율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고 체계가 없기 때문에 시행착오도 많다. 액션을 취하고도 설계를 잘못해서 결과 측정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극단적으로는 ‘그래서 이게 먹힌 건지 안 먹힌 건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고.

그러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낙담하고 자책하는 대신 '이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를 배운 것에 기뻐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스타트업에서 성과를 내며 생존할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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