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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Oct 14. 2023

여러분~ 엄마 밥이 보약입니다.

말하자면 집밥

아침 일찍 두부가 집을 나섰다. 첫차를 타고 병원에 가려 집을 나서는 길이다.


그녀는 엊저녁부터 십이지장 가까운 위치에 자리를 잡은 위 끄트머리에 달린 용종 검사로 약간 긴장감 있는 얼굴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었다.

하나둘 위에 붙어있던 9개의 용종을 제거하고 1년 전 의사 선생님이 십이지장 근처 1.5cm 용종이 더 커지면 조직검사가 필요하고, 위험하니 식단관리 잘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오늘.


태워다 준다는 나의 손을 뿌리치고 “오래 걸릴지도 몰라. 의사 선생님 만나기 전에 전화할게. 데리러 와.”라며 강아지 산책까지 마치고 신발을 신었다.

그간 자기도 나랑 싸우며 식단관리를 못 지켜서인지, 걱정되나? 싶긴 한데, 웃으며 나가니 나쁜 일보다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


생각보다 일찍 전화가 왔다.

“선생님만 만나면 돼. 오면 될 것 같아.”

몸은 어떻냐고 100번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냥 가서 얼굴을 보기로 했다.

“알았어. 지금 길동이 데리고 나갈게.”

가는 동안 잡생각이 머릿속에 말을 걸었다. 입원 안 하고 집에 온다는 걸 보면 괜찮겠지. 안 좋아졌으면 ‘언니 내 용종 더 커졌다는데, 서울 병원으로 가야 하나?’라고 재잘대듯 투덜거려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두부야 어디야? 나 병원 근처.”

언니 보건소 앞으로 갈게. 거기로 와.” 걸어 다닐 기운이 있다는 건... 괜찮겠지.


저기, 잔뜩 인상 쓰고 있는 두부의 바지에 피가 흥건하게 묻어있었다. 조용히 그녀가 차에 오르기를 기다렸다.

“너 주삿바늘 뽑았냐? 남들이 보면 옆구리에 칼 맞은 줄 알겠네. 사람들이 너보고 안 놀래디?”

“언니 세상에 의사가 뭐라는 줄 알아. 술 좀 그만 먹으래.”

이건 또 무슨 씻나락 까먹는 소리?

“잠 못 자고, 술 먹어서 마취가 안 됐다나.”

뭔 소린가 하니, 마취했는데도 의사 얼굴이 보여 눈을 깜빡거렸단다. 다시 마취했는데 중간에 마취가 깨서 간호사 3명이 잡아 붙들었음도, 힘센 두부가 뿌리치고 흐리멍덩한 정신에 잡아 뽑았다는 얘기다.


의사 선생님이 작년 차트를 보고 (그때 약속이 많아 아마도 일주일 중 5일을 하루에 2캔 정도의 맥주를 마셨다고 질문지에 적었다고 했다) 잠을 못 자면 마취가 안 되고, 술을 많이 마시면 잠이 안 온다는 이야기로 두부를 알코올 중독자 취급했다는 것이었다.

“너처럼 많이 자는 애한테?”

“그러니까! 그때 이후로 술도 잘 마시지 않는다고 했거든. 그런데 듣지도 않는 거 있지.”라며 분이 안 풀렸는지 씩씩대는 품새가 속은 멀쩡한가 보다.


“언니, 나 식도가 깨끗하데 역류성 식도염 없어졌어. 용종도 줄어서 걱정 안 해도 된대. 고마워.”

아이고 밥 먹기 싫다고 징징대고 투정 부릴 땐 언제고 고맙단다.

“그 의사 이상한 사람이네, 괜찮냐고 걱정을 해줘야지. 되려 뭐라고 한 거야. 그런 말 듣지 마. 그런데 의사랑 간호사도 많이 놀랐겠다.”     

그럼 안 놀라겠어. 갑자기 환자가 눈을 번쩍 뜨더니 주삿바늘을 잡아 뽑는데.


나도, 한 8년 전 팔목 인대와 신경이 끊어져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분명 나는 수술실에 있을 텐데, 사람들이 소곤소곤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떴다.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고개를 돌렸다.

희미하게 보이는 의사 선생님이 쭈그리고 내 팔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선생님 언제 끝나요?”라고 질문을 한 기억이 있다.

화들짝 놀랜 선생님이 얘기하고 있는 이들에게 손가락질하며 소리 질렀다. “마취. 마취.” 난 선생님이 손으로 가리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날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이 보였다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기억이 안 난다.

난 병실에서 한참을 자고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회진에 오신 선생님이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아무래도 두부와 나는 무척 튼튼한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  

   

길동이를 데리고 나온 김에 예방 접종하려 동물병원에 들렀다.

“무슨 일 있었어요?” 간호사로 일하는 병원 사모가 놀란 눈으로 두부를 바라본다. 마취에 관한 이야기가 2차전으로 넘어갔다.

“남들이 보면 수술하다 나온 사람인 줄 알겠어. 얼른 데리고 집에 가야지.”

“그래서 다 나았어요?” 눈을 깜빡거리며 두부를 바라보는 사모.

“집밥이 좋긴 한가 봐요. 식도가 깨끗하다네. 용종도 줄고.” 두부가 날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두부씨는 좋겠다. 언니가 밥도 해주고, 나도 누가 따뜻한 밥 해주면 좋겠다.”

“그럼 뭐 해, 숟가락 들고 휘적대는데, 내가 주는 건 약이라고 생각하나 봐.” 난 두부를 째려봤다.

“그래도 요즘은 잘 먹잖여.”

“어여 가서 밥 먹자. 뭐 먹지?”

“언니 짜장면.”

두부를 다시 째려봤다. “너 좋아졌다니까 빈속에 밀가루? 차라리 돼지 석쇠 구이에 보리밥 먹자. 피를 그렇게 흘렸는데 괴기 먹어야지. 그리고 그 옷을 입고 다닐 거야?”


집으로 와 길동이를 집안에 들이고, 옷을 갈아입고 두부가 좋아하는 외식을 했다.

그리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드러눕는 두부.

“야! 밥 먹자마자 눕지 말라고.”

“언니 나 마취가 덜 깼나 봐.”

“넌 마취 기운이 나중에 올라오냐?”

쿨쿨 자는 두부. 저렇게 잘 자는 애 보고 잠을 못 잔다니. 분명 수면내시경 중에 잠버릇이 나왔을 거야.    

 

한숨 자고 나온 두부가 개운하다며 텃밭 정리를 하자 한다. 땅을 파고 옆집에서 스멀스멀 넘어오는 돼지감자 뿌리를 캐고, 땅을 뒤집고, 며칠 전 퍼온 퇴비를 섞었다.

파릇파릇 올라온 미운 잡초를 뽑아 정리하니 해는 뉘엿뉘엿

“언니 너무 개운하지?”

“응, 이제 너만 밥 잘 챙겨 먹으면 돼.”


살 안 빠져도 좋으니 아프지만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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