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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Oct 15. 2023

감히, 작가님들의 글을 응원합니다.

보리굴비와 월남쌈

오늘 밥상은 여차여차해서 남은 보리굴비와 텃밭에서 자라 오르는 무잎을 따다, 결명자와 보리를 넣어 끓인 차에 밥을 말아먹었습니다.


매일매일 만든 반찬으로 밥상을 차린다는 건 어려운 일이지요.     


손님이 오신다기에 녹차를 우린 뜨물에 담아두었던 보리굴비, 찜기에 베보자기 깔고 찻잎(솔잎도 향이 은은하니 좋아요.) 그리고 생강과 마늘 편을 깔고 쪘습니다. 비릿한 냄새를 못 맡던 동생 두부가 ‘고춧가루, 고추장, 조선간장, 마늘, 생강즙, 물엿, 매실청, 식초 그리고 깨를 갈아 만든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니 냄새도 덜 나고 먹을 만하다 합니다.


겸사겸사 동생이 그간 먹고 싶다 했던 월남쌈도 준비했지요.

고수 밑동과 사과, 파인애플, 양파 그리고 마늘을 푸드프로세서에 갈아 즙을 짜고 건더기는 걸러줍니다. 이 즙에 맵디매운 태국고추와 느억맘이라는 베트남 피시 소스를 넣고 팜슈가를 넣어야 하지만 집에 갖춰진 것이 없어 설탕 조금 그리고 라임 대신 레몬즙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믹서에 갈아줍니다.

월남쌈 소스를 한숨 재워두면 고추의 매운맛과 달콤한 맛 그리고 시큼하고 상큼한 맛이 짭짤한 피시소스와 어울려 각각 튀는 맛은 사라지게 됩니다.


돼지 목살은 라이스페이퍼에 들어갈 크기로 길쭉하게 잘라 ‘조선간장+양조간장+어간장 믹스와 매실청, 마늘, 생강, 거칠게 갈아놓은 빨간 마른 고추 (크러쉬드 레드 칠리)에 사과나 배(둘 다 넣으면 좋아요.) 그리고 양파즙’을 넣은 소스에 버무려 간이 배도록 합니다.

달걀을 풀어 지단을 부치고 길쭉하게 썰어주고요.

양상추와 파프리카도 얇게 채를 썰어줍니다.

데치지 않은 숙주를 준비합니다.

오이는 돌려 깎은 후 채를 썰고, 고수잎과 태국 바질잎, 그리고 어린 새싹을 준비했습니다. 우아~ 채소 천지네요.


국이 빠질 수 없죠. 동생이 국물음식을 엄청나게 좋아합니다.

똥을 뺀 멸치와 깨끗이 닦은 다시마, 양파, 마늘, 대파잎을 넣고 육수를 냅니다. 거기에 된장을 풀고 다진 마늘을 된장의 텁텁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만 넣고, 감자, 두부, 팽이버섯과 총총 썬 대파나 쪽파를 넣습니다.

한 상이 차려졌네요.

맛나게 배부르다면서도 한 숟가락 더해주는 동생이 있어, 다음엔 뭘 해줄까?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먹고 남은 재료들이 걱정이죠.

그럼 내일 점심엔 찻물에 보리굴비를 먹고, 저녁엔 쌀국수가 들어간 팟타이 (태국 볶음국수)나 고수 뿌리와 향신채를 넣어 육수를 낸 쌀국수를 해 먹을까? 고민하다, 왠지 모를 뿌듯함으로 잠자리에 들어 핸드폰 스크롤을 손가락으로 툭툭치고 돌리다 브런치를 열었습니다.


12시가 넘어서고 다작을 꿈꾸는 ‘다작이’님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너도 작가냐?’라는 글이었죠.

차근차근 읽으며 내 얼굴이 전기가 오는 듯 치직 치지직대며 붉게 물들고 있음을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https://brunch.co.kr/@2988b20b59464bd/445


‘헉! 내가 브런치에 글을 올리며 제일 부끄럽게 생각하는 부분인데. 작가.’

처음 작가라는 칭호로 브런치에서 합격 연락이 왔을 때 몸들 바를 몰랐습니다. 그리고 답글에 올려주시는 ‘작가님~’으로 시작하는 단어. ‘내가 작가라니.’

그래도 전 목적이 있었기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지금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도 중학교 때부턴가 단테의 신곡을 읽었고, 데카메론, 여자의 일생, 전쟁과 평화, 안나카레니나, 제인에어, 펄벅의 대지를 읽으며 엄마 몰래 밤을 지새웠던 적도 있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한여름 밤의 꿈은 당연했죠. 제 이모가 사다 놓고 읽지 않았던 제3세대 문학전집부터 우리나라 작가님들을 파기  시작했고요. 


그런데 10권 시리즈도 단 며칠 만에 읽어대던, 해리포터 시리즈를 기다리며 읽던 나는, 책을 읽고픈 울렁임이 어느 순간부터 사라졌어요.

요리를 시작하고부터인가 봅니다. 요리책을 보기 시작했죠.

전 요리사이니까요. 그리고 어른이 되었으니까요.


일에 쫓겨 살다, 글을 만났습니다. 브런치 안에서 말입니다.

써봤던 단어인 치매를 침해로 쓰고 은, 는, 이, 가가 틀려도 읽어보고 또 읽어보며, 고치고 또 고쳐나가며 나름 노력이란 싱그러운 마음이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브런치에 들어와 좋았던 것은

가족과 내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 그리고 스치고 지나가는 모든 일이 브런치를 먹는 가장 여유 있는 시간처럼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바쁜 아침 시간을 끝내고, 삼삼오오 아니 나 혼자라도 간단한 먹거리를 앞에 두고, 소소한 이야기로 수다를 떨거나 지나가는 유모차에 탄 아이를 보며 미소 짓는 것처럼요.


몽테뉴 수상록, 아는 것이 힘이라던 베이컨, 숲 속의 생활 소로, 헤세의 데미안, 증기기관차 발명한 스티븐슨 말고 로버트 누이스 발포어 스티븐슨 보물섬, 생활의 발견으로 알려진 린위탕 생활의 예술, 시 다시 읽기 이어령,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무소유 법정 존경하는 스님, 칼의 노래 김훈, 최민지 동화작가? 같은 분들 대단하고 범접할 수 없는 분들이죠. 글뿐 아닌 다른 면에서도요.


이분들이 ‘우리 같이 글을 쓰지 못하는 너희들은 작가가 아니야.’라고 말씀하실까요?

전 세상의 모든 작가를 다 알지 못합니다.

그저 서점을 기웃거리다 만나는 책 한 권을 읽고, 사람 사는 이야기가 묻어나는 이야기에 가슴 설레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런 내가 브런치에 들어와 가장 많이 찾는 곳이 요리·레시피입니다.

전문가도 있을 것이고, 비전문가들이 써가는 요리 이야기. 미슐랭에서 일도 해보고 이제 30년이 다 돼가는 요리사인 저도 요리 이야기가 힘든데 어찌나 맛깔나게 잘 쓰시는지.

그리고 요리에 관심을 두고 계신다는 점이 전 가장 기뻐요.

그래서 꼭꼭 읽었던 글엔 ‘좋아요’를 누릅니다.

못 쓰면 어떻습니까!

연습하고 쓰고 또다시 쓰다 보면 대박이 날지!


‘다작이’님의 글에 댓글을 다신 분,

<작가>는 자기 기분을 갖는 직분이 아니라, 소명을 갖는 직분입니다. 이는 단순한 감상이나, 고백이나, 경험을 이야기하는 글쓰기 정도로 될 일이 아닙니다. 나를 나타내건, 사물을 나타내건, 꿈을 나타내건, 인간사의 풍요로움을 위한 농익은 열매 같은 계시를 일궈내는 글쓰기를 해야 하는 것이지요.
<작가>라는 전문성에 유의하여 그 질서를 지켰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부분을 읽고 부끄러운 마음에 브런치에서 탈퇴해야 하나 밤새 고민을 했습니다.

결론은 탈퇴하지 않으려고요.

전 이분이 나가라 하지 마시고, 글이 무엇인지 선배의 마음으로 지도를 해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어제는 거한 상을 차려 먹고, 오늘 남은 음식으로 무엇을 해 먹을지 고민하다, 결명자와 보리를 끓인 찻물에 텃밭에서 무잎 따다 먹었네요.

매일 거할 수 있나요.   

  


그래도 우린

“저녁엔 뭘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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