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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Dec 19. 2023

말하는 전기압력밥솥의 조상 '가마솥'

여섯

올해 들어 눈이 내려 소복이 쌓이는 걸 처음 본다.

이런 날은 뭘 먹어야 할까?


처마 밑에 쪼그려 앉아 눈 내리는 걸 바라보다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냈다.

“두부야, 오늘 저녁에 뭐 먹지?”

“언니, 고구마. 찐 양배추에 고구마랑 겉절이 싸서 먹을까? 우리 굴국도 남았지?”

“그래, 오늘은 고구마 먹자.”     


추워진다는 소식에 속이 알찬 배추가 얼까 싶어 두 포기 잘라다 싱싱한 굴을 넣은 겉절이를 만들어두었다. 거기에 고구마면... 말할 것도 없지.

거실 한쪽에 보관해 둔 박스에서 고구마를 꺼내 깨끗이 씻어 솥에 넣었다. 살짝 남는 자리에 양배추도 씻어 올려놓았다. 이렇게 하면 많은 물이 필요하지 않다. 산에서 받아 온 약수를 한 컵 정도 솥에 넣어 가스레인지 불을 켰다. 처음엔 강에서 끓으면 약으로 줄이면 된다.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들고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아이들 마지막 수업 준비 상황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우리 집엔 다른 집에서 볼 수 있는 흔한 기기들을 찾을 수 없다.


첫 번째 소파가 없다. TV가 없어서인지 식탁에 앉아 모든 일을 해결한다.


두 번째 TV, 집에 오시는 손님들 열에 아홉은 집안을 두리번거리며 찾는 것 중 하나. TV를 너무 좋아하는 두부의 시간을 지켜주기 위해 설치하지 않았다. 굳이 봐야 할 프로가 있다면 읍에 있는 내 작업실로 간다.     

 

세 번째 마이크로웨이브, 전자레인지가 없다. 이것 또한 편의점 음식과 간편 음식을 좋아하는 두부를 위해 집에는 구비해 놓지 않는다.      


네 번째 ‘전기밥솥’, 압력밥솥은 하나 있지만, 전기를 이용한 밥솥은 없다.

두부와 나, 둘 다 밥솥 밥을 좋아하지 않아 사용하지 않는다.

개인적이며 약간 편집증과 같이 우리는 밥솥에 반나절 이상 밥솥에 묵힌 밥의 냄새와 맛을 싫어한다.  

    

그럼 가마솥에 남은 찬밥은 어쩌냐고?

밥 위에 물을 살짝 뿌려 뚜껑을 닫고 강한 불로 끓인다. 솥뚜껑이 달그락거리는 듯한 몸짓을 보이면 불을 끄고 뜸을 들인다. 그리고 뚜껑을 열면 금방 지은 밥과는 살짝 다르지만, 냉동실에 얼려 놓았던 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린 것보다, 반나절 지난 밥을 전기밥솥에서 꺼낼 때보다, 맛도 향도 좋다.  

   

우리 집에 찾아오신 분들이 TV나 소파는 그렇다 치고 많은 손님 식사 준비하려면 전자레인지나 밥솥은 있어야 하지 않냐고 물어보시는 일이 종종 있다. 하지만 밥이 없어 절절매던 사고는 단 한 번도 없다.   

  

집에선 커다란 가마솥이 아닌 간편히 만들어진 쇠솥을 사용한다.

쇠솥은 바닥 면이 두껍고 뚜껑이 묵직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솥은 열전도율이 높아 강한 불에서 한 5~6분이 지나면 끓어오른다. 그러면 약한 불로 줄여 10분 정도 있다가 불을 끄고 5분 정도 뜸을 들이면 밥이 완성된다. 바닥 면이 두꺼워 잘 타지 않고, 묵직한 뚜껑이 눌러주어 가마솥 안 열이 올라가는 현상을 조절하며 압력을 가해준다. 당연히 새어 나가는 열 또한 없이 가해진 압력으로 고온을 일정하게 유지시켜 준다.


예전 우리 할머니들이나 어머니들이 밥을 할 때 가마솥을 차가운 행주로 닦아주었다. 그때는 어린 마음에 저렇게 닦아대니 가마솥이 번쩍번쩍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런 행위는 밥이 끓어오를 때 차가운 행주로 가마솥을 닦아주며 열을 식혀주어 압력을 가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솥 안에서는 일정한 온도가 만드는 미세한 거품과 쌀들이 서로 뒤엉키며 춤을 추고, 골고루 익혀진 쌀들은 불이 꺼지고 뜸 들이는 사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 쌀알 하나하나가 각자인 듯, 서로인 듯 쌀의 고소함과 담백함 그리고 묵직함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밥상의 주인공이었다.     


냄비에서는 맛볼 수 없는 가마솥의 위력을 사람들도 알았다는 걸. 전기압력밥솥을 보면 알 수 있다. 파뱅의 압력솥을 들여와 가마솥의 원리를 이용하여, 지금의 말하는 전기압력밥솥으로까지 발전하였다고 한다.

가마솥은 철기시대에 만들어졌고, 파뱅의 압력솥은 1700년대에 만들어졌으니 ‘말하는 전기압력밥솥’의 조상은 ‘가마솥’이 아닐까?     


이러한 이유로 나는 서양요리를 하는 요리사임에도 나의 어린 학생들에게 첫 수업엔 가마솥 밥하는 법을 가르친다.

한국 사람의 주식은 빵이 아닌 밥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서양요리에 관심이 있다 하여도, 나의 나라 음식에 대한 기본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쓰는 작은 가마솥 중 하나 8인용

고구마 냄새가 솔솔 풍겨오는 것이 잘 쪄지고 있는 것 같다.

에어프라이에 구워내는 진한 냄새 그리고 냄비에 물을 잔뜩 넣고 쪄낸 흐리멍덩한 냄새와는 다른 은은한 고구마의 향 내 코 밑에서 왔다 갔다 하며 ‘얼른 먹어봐!’라고 소리치는 것 같다.

솥뚜껑을 열자 한꺼번에 올라오는 고구마 특유의 달달한 맛이, 먹지 않아도 ‘나 고구마야.’라고 외치고 있다.

양배추에까지 달달함이 묻었는지, 아니면 찜기에 쪘을 때보다 맛 보존이 더 잘됐는지, 맛 좋은 놈으로 잘 골라왔는지 물비린내 없이 달곰하니 간장만 살짝 찍어 먹어도 맛있을 것 같다.  

   

이제 두부가 오기만 기다리면 된다.

시간이…. 이제 곧 오겠군.    

 

집 문이 벌컥 열리며 두부가 들어온다.

“언니 고구마 냄새가 너무 좋다.”

껍질도 까지 않은 고구마에 굴이 들어간 겉절이를 척 올려 한입 먹더니 엄지를 '척'하니 올려준다.    

 

그래 겨울은 이 맛이지.



https://brunch.co.kr/@ginayjchang/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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