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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Dec 12. 2023

보기보다 무섭지 않아요. 전 '비늘 칼'입니다

다섯

엄마의 전화입니다. 

“응, 나 바쁜데.”

“조기 배가 모레 들어온다는데, 갔다 올라냐?”

미안하다는 말은 고사하고 시간 있냐는 말도 없이 갔다 오라 합니다. 


“엄마 아들은?”

“차에서 냄새난다고 안 가.”

“내 차에서는 냄새 안 나고?”

“갔다 오는 김에 할머니, 할아버지 보고와?”

나의 아킬레스건인 부모님보다 더 부모님 같은 나의 외조부모님을 무기로 들고 나서는 엄마.  

   

난 우리 집 큰딸입니다.

장녀가 무슨 죄인지, 궂은일은 모두 내 차지예요.

다른 집 큰딸들은 아니 우리 큰 이모만 봐도 외할머니가 곱게 키웠다고 다. 어려서부터 허드렛일부터 동생 넷을 돌보고 부엌일은 차녀였던 엄마 몫이었다네요. 그래서 억울했다는 말을 가끔 했었습니다. 그래 선가요 엄마는 큰 이모에 대한 모든 원망을 풀 듯 모든 심부름은 큰딸인 나에게 넘겼습니다.

     

“엄마, 나 바쁜데 이번엔 애들 시켜.”

“애들이 언제 거기까지 갔다 오니, 네가 갔다 와.”

“난 주워 왔어.”

“끊는다.”     


나의 외가는 서쪽 바닷가 섬들이 모여있는 곳 중 하나입니다. 이제는 돌아가시고 안 계신 외조부모님 그리고 아직도 대부분 어부이거나 갯벌에서 일하는 외가 친인척들 때문에 조기, 장대, 박대, 꽃게, 바지락, 낙지 등 철이 된 해산물을 받으러 가거나, 사기 위해 섬이 아닌 군산으로 갔어다.      


한 해에 한 번 꽃샘추위가 물러갈 4월 무렵 조기를 사러 가는 시기입니다.    

냉동된 조기 상자를 적어도 네다섯 개 많게는 예닐곱 개까지 차에 실어야 했어요. 그러면 차 안 구석구석에 배인 조기의 비린내 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 두꺼운 포장 비닐을 준비해야 했죠. 그래도 냄새는 사라지지 않지만요.     


집으로 돌아오면, 차 안에서 점점 녹아갔던 조기를 탁하고 바닥에 내려트려 조각조각 떨어진 것들을 주워 담아 녹이기 시작.

다음날, 적어도 네다섯 상자에 담겨있던 조기의 비닐을 벗겨야 했습니다.


흰 면장갑을 끼고, 그 위에 빨간 고무장갑으로 무장하고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칼을 들고 조기를 도마에 뉘어 비늘을 벗기기 시작했어요.

제가 철이 좀 들어가던 무렵 힘들어하는 엄마를 도와주겠다고 덤볐을 때만 해도 칼이 무서웠지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엄마가 무서워졌습니다.

제가 도와드리기 시작하며 사들이는 양이 많아졌거든요.


솔직히 큰 놈들이야 들고 다듬기 편하지만 작은 것들은, 허리가 뻐근해 오고 손이 저려오기 시작하면 엄마 몰래 밖으로 던져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었죠. 애초에 선물이라고 준 상자는 들고 오지 않았어야 했어요.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서진아, 대방 삼촌이 광어 보냈다. 저녁에 집으로 와.”라는 엄마의 전화.

초인종을 누르는 날 반겨주듯 달려 나오는 발소리가 들리면 두려움이 몰렸습니다. ‘도대체 이번엔 얼마나 큰 걸 보낸 거야!’

집으로 들어가면 식탁에 가득 차려있는 음식, 그리고 날 기다리는 도마와 칼.

가끔, 내 몸통만 한 대 광어를 삼촌들이 보내주면 감사하기는 하지만, 커도 너무 큽니다. 엄마 말을 빌리자면 "자연산이잖아. 돈 주고도 먹기 힘들다.”지만, 엄마 본인도 버거워하는 음식 재료 중 하나입니다. 


비늘은 왜 이리도 크고 단단한지 잘 벗겨지지도 않습니다. 턱턱 걸리는 비늘이 이리 튀고 저리 튀어, 내 얼굴로 몸으로 날아올라 추워 히터를 틀 수 없고, 더워도 에어컨을 틀 수 없는 다용도실에 홀로 앉아 대 광어와 사투를 벌여야 했지요. 마지막 둥그런 대가리에 붙은 비늘을 벗기는 일이 관건이었습다. 이렇게 비늘이 벗겨진 대 광어를 3장 뜨기 해 껍질을 벗겨 엄마에게 인도하고, 대바칼과 망치로 뼈와 대가리까지 분해가 마치면 어차피 버린 몸, 다용도실까지 청소를 마치고 빠져나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생선 비늘이 장신구처럼 반짝거리며, 비린내를 풀풀 풍기는 비렁뱅이 꼴이 되어있었죠.


“아우 비린내가 심하네. 먹을 땐 좋은데. 서진인 씻고 와.”라는 엄마.

이럴 때마다 도와주게 된 걸 후회하고 싶지만, 대 광어의 맛을 알기에 손을 놓지 못했었습니다.   

  

요리라는 것이 내 몸에 익어가기 시작하며 조리도구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지요. 내 눈에 들어온 이상하게 생긴 물건, 요놈은 뭘 하는 물건이냐고 점원에게 물어보자 “생선 비늘 벗기는 도구예요.”라는 말에 ‘세상에 이런 것이!’라며 얼른 장바구니에 담았어요.    

이젠 무서운 식도가 아닌 요놈 '생선 칼'로 벅벅 긁으면 되는 거였습니다.


얼른 엄마에게 비행기 타고 10시간 넘게 달려와 조그만 비늘 칼 일곱 개를 선물로 주었어요. 하나는 할머니, 나머지 5개는 이모님들에게 전해달라 했더니, 주말에 할머니 보러 가자고 보채고 급기야 삐질듯한 기새에 눌려 할머니댁으로 출발했습니다.

내가 얼마나 외조 부모님 댁에 자주 갔으면 30분 걸리는 엄마 집보다, 고속도로를 달려야 도착하는 외가댁이 가깝게 느껴질까요.

그 덕에 이모들도 모여 수다를 떨고, 내가 20대 초반에 영국에서 사 왔던 ‘감자 칼’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그때도 7개를 사 왔는데 모두 식당 하는 이모님 댁으로 갔다더니, ‘비늘 칼’도 모두 이모님 댁으로 입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쨌냐. 난 6개를 더 사서 비행기에 실어 보냈습니다.

아직도 잘 쓰고 있다니 흡족할 뿐입니다.

    

이제는 가정용 전동 ‘비늘 칼’도 나오고, 횟집에 가면 비늘 벗겨주고 3장 뜨기도 해 주며 잘라주는 기계도 나와 있는 편리한 세상이 되었어요.

신기하고 희한한 기계가 회를 잘 뜬다 해도,  입맛엔 손으로 뜬 회가 맛이 있다는 겁니다.

그게 손맛이라는 거죠.     


자자. 손맛을 간직하기 위해 다음 조리도구는?     


https://brunch.co.kr/@ginayjchang/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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