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가 돌을 던져도 도망가지 않아 키우게 된 강아지 ‘길동이’, 뒷집 마당에서 친구 무리에게 맞고 있는 게 불쌍해 밥 주기 시작한 고양이 ‘노랭이’ 이렇게 산천 식구는 여자 둘 그리고 수컷 둘이 살고 있다.
길동인 꼬리치고 들어온 덕에 집안에서 살고, 아직도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노랭인 밖에서 산다.
길동이와 노랭이는
- 겁이 많다. 밖에서 많이 맞고 살았던 것 같다.
- 바스락거리면 달려온다. 밥 나오는 줄 알고.
- 편식한다.
- 지 볼일 끝나면 주인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 장난감을 무서워한다. 특히 공
- 뒤치다꺼리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서로 보면 싸운다.
집 개 10년 차인 길동이는 이제는 유기견의 기억을 지우고 싶은 듯 추위·더위 못 참고, 하루에 적어도 3번이나 가는 산책을 눈. 비 오면 발이 젖는다고 안 나간다. 그런데 할머니들이 버린 음식쓰레기 더미에선 굴러다닌다. 아직도 짬밥을 좋아한다. 가장 좋은 추억이었기 때문일까?
노랭인 텃밭에서 일할 때 따라다니고, 옆에 앉아 있고, 문만 열면 나타나는 녀석이 쭉 뻗은 내 손끝이 달랑 말랑한 선을 지킨다. (노랭아 우리 벌써 3년째야) 그리고 밤이 되면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다.
소고기, 쮸르, 간식으로도 딱 여기까지
조금 전, 노랭이 자지러지는 소리에 나가봤다.
노랭이 집을 호시탐탐 노리는 얼룩노란 녀석에게 또 맞고 있었다.
그러니까 집에 들어오라고.
노력해 봤지!
계단부터 집안까지 귀한 소고기 한 점, 한 점 길을 만들어 주기도 했지!
언젠간 들어오겠지...
나는 노랭이 눈을 가진 아이들을 가끔 만난다.
“통화 가능하세요?” 방과 후 선생님이다.
“네.”
“선생님 ‘맛있는 칼국수’ 아시죠?” 칼국수 집은 자주 가서 아는데 왜?
“네.”
“그 바로 전에 별빛교회라고 개척교회가 있거든요. 거기에 공부방이 있어요.” 수업을 와달라는 얘기구나.
“네.”
방과 후 선생님 중 한 분이 전화를 해주셨다.
교회 공부방에 오는 아이들이 어떤 수업을 해도 의욕이나 관심이 없다며 수업을 부탁하셨다.
그런데
“선생님 죄송한데…. 강사비는 못 드리고, 재료비만 드릴 수 있어요. 어떻게 안 될까요?” 왜 항상 이런 일은 나에게 부탁을 하시는지.
“어떤 수업을 원하시는데요?"
"요리사 되는 길을 설명해 주시면 좋고, 선생님이 다루는 재료 설명도 좋고, 요리 수업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많기도 하다. 2시간 안에 이 모든 걸 어떻게?
그리고 말을 듣지도 않는 애들인 것 같은데 어떻게?
"나이는요?"
"초등학생이요." 아아 거절을 해야 할까 고민이다.
"선생님 한 번이죠?"
"네. 더 오시라 할 수 있는 예산도 없어요."
그래서 나는 갔다.
준비해 간 파워포인트를 정리하면서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앉아 축 늘어져 있는 아이들은 역시나 눈에 초점이 흐릿흐릿했다.
그 순간 들리는 한마디"야 이 xx놈아", "xx 죽x볼래", 이건 어린아이의 목소린데.
내 눈을 의식했는지 날 쳐다본다. 역시 꾀죄죄한 외모에 말 안 듣게 생겼다.
"너! 욕하는 어린이. 자리가 어디야?"
우리 노랭이 눈을 하고 헤죽거린다.
"내 바로 앞 책상에 앉아."
"거긴 제 자리 아닌데요." 아이가 건들건들 딴청을 피웠다.
"그냥 앉아. 욕하지 말라는 소리는 안 하겠어."하고 아이를 안경 너머로 봤다. 이때 나의 가장 무성운 얼굴이 나온다고 그랬다.
"이제 모두 자리에 앉지." 아이들을 다 불러 모았다.
"나는 요리 선생님이다."로 시작하며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안녕하세요.”라만 말하며 책상만 쳐다본다.
예정엔 없던 일이었지만, “지금부터 자기소개 시작. 욕하던 어린이부터.” 그리고 가지고 간 음식 재료들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이제부터 선생님이 재료 이름을 말하면, 그 재료를 들고 있는 친구가 일어나서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만져 보게 하는 거야.” 이렇게 두 시간 수업이 끝나자. “벌써 끝났어.”라고 아이들이 서로 주고받는다.
“이제 요리할 거야. 요리해 본 친구?” 역시 ‘라면’
“선생님 우리 너무 힘들어서 그런데 선생님이 해주시면 안 돼요?”
그렇지 수업 시간에 졸 틈도 없이 수업해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은 탈진 상태.
“그래 내가 해줄게. 그런데 선생님이 혼자선 너무 힘드니 너희가 도와줘야 해.”
“네.”
결국 요리도 아이들이 다 했다. 어떻게 재료를 써는지, 바르는지, 굽는지만 가르쳐 주고, 난 입으로만 떠들었다.
아이들은 웃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질문을 하고 있다. “선생님 이렇게 하는 게 맞아요?”
“나보다 잘하네. 그냥 너희가 다 해라.”
욕을 하던 녀석이 수업 중간중간에도 욕을 하더니 조용해졌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파슬리를 다지고 있었다.
나는 웃지요. 우하하하
아이들은 생각보다 정성스럽게 접시에 담았다.
“선생님 맛있어요?”
“너희들이 다 만들었네~ 예쁘고 맛있지?”
“선생님 싸가도 돼요?”
“다 가져가.”
“언제 또 오세요?” 아이들이 똘망똘망 날 바라본다.
“글쎄.” 선생님도 어쩔 수 없구나.
설거지까지 깨끗이 한 녀석들이 내가 만들었데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5시간 만에 끝났다.
방과 후 선생님이 미안했는지 ‘맛있는 칼국수’에서 저녁을 사주셨다.
“애들이 그렇게 밝게 웃는 모습을 처음 봐요. 선생님은 아이들이 좋은가 봐요?”
“난 아이들이 좋다고 느껴 본 적은 아직 없는데, 안쓰러워요.” 나의 솔직한 마음을 전해 드렸다.
그리고 욕을 하던 아이의 이야기를 방과 후 선생님이 해주셨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폭언이고, 심한 폭력을 사용하신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아는 한에선 폭력과 폭언에 노출된 사람들은 항상 불안 속에서 산다 들었다.
그럼 그 아이는 지금부터 불안 속에서 살아야 하나 싶다.
굳이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 우리 집에서 18km가 떨어진 ‘맛있는 칼국수’에 갈 때면 아이들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