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 해, 우리 동아리 아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재밌어지는 요리 교실을 다음 해에도 유지하고 싶어 정말 부단히 노력했다 말한다.
후배들을 위해 그리고 남아 있는 부원들을 위해 견디고 또 견디며, 아이들은 책임감과 뿌듯함이란 단어의 뜻을 이해했다고 했다.
내가 보아도, 우리가 하는 일들을 봐달라 부탁하듯 ‘열심히’란 단어로 살았었다.
그런 아이들를 위해 난 고개를 숙였다.
교장 선생님께 도움을 청했다.
교육청에도 군청에도 관심요청을 드렸다.
매일 매진을 기록한 요리 축제 부스 운영과 3개월 짧은 연습이었음에도 요리대회 수상을 한 아이들의 성과를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 요리 활동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해 설명했지만,
지금까지도 이렇다는 답변이 없어 속상하다.
그래도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해 주시는 교수님들께 도움을 받는 방법에 대해 몇 차례 질문을 드렸지만.
‘학생 대상으로 로컬 교육하는 것이 지역발전에 가장 중요한 사업입니다. 좋은 일 하시네요.’
‘한국 학교 문제는 어디서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심각합니다.’
‘좋은 일 하시니 좌절하지 말고 밀고 나가길 바랍니다.’
정도의 피드백이 전부였다.
하긴 교장 선생님도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을 어떻게 내가 만들어 낼 수가 있을까?
동생은 어차피 요리사가 되겠다고 배우는 것도 아니고,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뒷받침이 없는 아이들을 언니가 어떻게 책임질 거냐는 말에 가슴이 내려앉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걱정을 안 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웃고 있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자.
내가 그동안 메모했던 일들을 정리해 글로 옮기며, 즐거운 생각들이 뿅, 뽕, 뾰보뵹하고 나오고 있었다.
잃어버렸던 내 어린 시절과 내 아들과의 추억 그리고 아이들이 지금 나와 나누고 있는 시절들이, 다시 나를 가르쳐 주고 있다.
언젠가...
요리 축제에서 판매할 떡을 만드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쌀 한 자루를 얻어와 쌀가루를 만들어 고구마 고명을 넣은 떡을 만들었다.
열심히 떡 빚던 중 재범이었나? 그리였나?
“선생님 왜 우리한테 잘해줘요?”
“글쎄.”
난 잠시 생각에 잠기었다 말을 이어나갔다.
“선생님은 우리가 만난 건 기분 좋은 인연이라고 생각해. 난 너희들이 단단하게 커 줘서, 나중에 너희와 같은 상황에 닥친 아이들을 만난다면, 지금 선생님처럼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해. 공부 못하는 게 못난 사람은 아니야. 아직 너희가 잘할 수 있는 걸 찾지 못해서 그렇지. 선생님이 전에 그랬지. 선생님 학교 다닐 때 꼴찌 해본 적 있다고. 아직 너희는 너희가 좋아하는 걸 찾지 못한 것 같아. 그때까지 그냥 지켜봐 주려고. 선생님은 지켜봐 주는 거지, 잘해주는 게 아니다.”
나만 아이들을 지켜본다고 생각했었다. 아니었다. 아이들도 나를 지켜보고 있었나 보다.
판단하지 말고 지켜보자, 그리고 기다려주자. 또 다짐을 해본다.
그렇게 난 매일 못난 선생으로 산다.
하. 지. 만.
“우스야. 남 신경은 쓰지 말고 우스 플레이트 마무리하시라고요.”
“그리야. 왜 선생님이 보여준 샘플 대로 썰지 않았는지, 수업 끝나기 전까지 설명해 주기를 바란다. 말을 해줘야 선생님이 알지. 뭘 원하는지. 응?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