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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Jul 06. 2023

고생 끝에 낙이 온다. 14

산천 요리생 +....

전화벨이 울린다.

“선생님 보고 싶어요.” 졸업한 학생이다.

“무슨 일이십니까? 디엔님”

“헤헤헤 선생님 아무래도 선도부를 해서 아이들에게 책임감이 무엇인지 알려 줘야겠어요.” 이 녀석 또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다.

“디엔아, 저번에도 말했듯 선도부는 무리일 것 같고, 일단 다음 달 모임 때 보고 얘기하자.”

올해 고등학생이 된 디엔이다.     


중학교 1학년 디엔은 한쪽 다리에 깁스한 초등학생보다 작은 아이였다. 끝이 없는 이야기를 하며 졸졸 따라다니던 녀석이 지금은 고등학생이 됐다.      

 

디엔이 중2였을 땐 못 던 것 같다. 내가 동아리 선생님이 되고 디엔을 다시 만났을 땐 중3이었다. 키도 나보다 훨씬 커 있었고, 말수도 줄었으며 천진함이 사라진 귀차니스트가 되어있었다.


디엔이 변했다.


너희들 요리 축제에 나가려면 주말에도 선생님과 만나야 할지도 모르는데, 할 수 있겠어?”

서로 눈치만 보고 있던 아이들을 뒤로

디엔: 주말엔 쉬어야 하는데요.

“얘들아, 수업도 길어질 것 같다. 어떻게 할까?”

디엔: 할머니는 제가 와야 밥을 드셔서 일찍 가야 하는데요.

이런! 쒸~ 여전히 말 수는 안 줄었구나….

“그럼 일단, 수업을 해 보고 다시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디엔의 담임 선생님에게 “도대체 디엔에게 무슨 일이 있었어? 애가 좀 시큰둥하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선생님이 이야기를 하셨다.


디엔은 조부모님에게 맡겨지면서 ‘이제는 네가 우리 가족의 희망이다.’라는 부담을 안게 됐다. 농사짓는 어르신들이 그렇듯 아들과 딸이라는 차별을 받았다. 의지하고 지내던 누나와 마주치면, 이젠 으르렁거릴 정도로 사이가 멀어지며 마음의 문을 닫은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난 그냥 디엔을 지켜보기로 했다.


좋아하는 콜라병뚜껑은 날쌔게 여는 놈이, 양념 병뚜껑을 따지 못해 하는 디엔을 도와주는 일이 번번했다. 그러면 디엔은 씩 웃는다.

요리도구나 재료도 항상 찾지 못해, 헤매며 도움의 눈길을 보낸다.

아이들 말로는 시험을 스무고개 형식으로 친구들이 설명을 해주어야 겨우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시험지를 풀 정도라고 했다.

평소 수업 시간엔 말을 하거나 자거나 둘 중 하나라는 말을 더했다.


모두가 이 아인 포기한다는 소리를 했다.


들어보고 지켜본 그 녀석의 상태는 ‘주의력 결핍 ADHD’ 증상을 의심케 했지만, 다른 아이들 못지않게 요리를 잘하고 있었다.


이 녀석! 부담을 갖지 않고 편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는 듯 보였다.

스스로 멍청이를 택했다.

 

그렇다면 난 디엔을 이해해 보기로 했다.

“생각보다 요리에 소질이 있네! 잘하네”,

“청소는 디엔이 제일 잘하는구나?”

“힘들면 쉬면서 해~”

난 그 애에게 무조건 칭찬만 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주문을 걸었다.

나는 참을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참아낼 것이다.

이러면 디엔이 마음의 문을 나에게 조금이라도 열어주겠지.


슬슬 디엔의 귀차니즘이 사라져 갈 무렵, 성에 눈을 뜨게 됐는지 여자 친구 사귀는 이야기, 애가 어떻게 생기는지, 여자 친구가 있는 아이들이 부럽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디엔이 “애가 어떻게 생겨요?”라는 질문이 잦아졌을 때, 디엔에게 1:1 면담을 신청했다.

나: 아이가 어떻게 생기는지 왜 궁금한데?
디엔: 고등학교 졸업하면 최저 시급 받는 일이라도 시작해서 빨리 결혼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여자도 만나야 하고.
나: 결혼을 일찍 하고 싶어?
디엔: 결혼을 해야 집에서 나올 수가 있죠. 전 결혼하면 강원도에 가서 살 거예요. 여기서 제일 먼 곳에서 살고 싶어요.
나: 그런데 왜 최저 시급 받는 일을 하겠다는 거야? 결혼하면 식구들도 생길 텐데?
디엔: 어차피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최저 시급 받는 일이나 할 텐데. 포기할 건 포기해야죠.


난 할 말을 잃었다. 아직 아이인데.

나: 너 요리대회 나가볼래?
디엔: 저도 나갈 수 있어요?
나: 나갈 수 있지. 그런데 아주 힘든 날들이 될 거야.
디엔: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나: 한번 해보지 뭐.


사실 이 제안은 나에게 큰 모험이었다.


요리대회엔 3학년 요리동아리 팀장과 2학년 학교 부회장이 나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난 2학년 부회장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2학년은 내년도 있으니 3학년 2명이 나갔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아이들은 찬성했다.

이렇게 해서 모범생인 부장 나범이와 전교 꼴찌 디엔이가 한 팀을 이루었다.     


‘디엔아, 넌 이제부터 지옥을 맛보며, 희망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야.’라고 외쳐주고 싶었다.  


“그럼 이제부터 디엔이 냉장고와 조리도구, 양념장 정리를 한다.”

“자 고구마 10개 아주 얇게 채 치는 거야.”

고구마

정말 힘들었다.

디엔인 하나를 가르쳐주면 전에 배운 건 모조리 기억하지 못했다. 

더 이상한 건 새로 가르쳐주는 테크닉이나 요리는 이상하리만치 잘 따라 하고 잘했다는 것.


대회가 다가 올 수록  연습의 강도는 높아갔고, 늦게 끝나는 날이 다반사에, 주말엔 우리 집에서 연습해야 했음에도 아이들은 투정 한번 부리지 않았다.

(밥을 잘해 먹여서일까?)


대회 연습 내내 디엔은 나범이의 인내심을 바닥 밑까지 끌어내리고 있었지만 나는 희망을 보았다. 나의 높아지는 불호령에도 나범이의 당황에도 디엔은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따라오려 했다.


마지막 연습, 1차 실패

나는 “이런 식으로 하려면 나가지 마!”라고 소리쳤다.

어떻게 할 건지 결정을 하라 했다.

1번 포기한다.

2번 지금이 자정이지만 한 번 더 해본다.


아이들은 '한 번 더'를 뽑았다.


난 지금까지 알려주지 않았던 동선의 움직임과 테크닉을 순서대로 다시 적어 주었다. 그리고 1시간 동안 읽어보기를 권하며

“너희는 한 팀이라는 걸 잊지 마라. 서로를 위해주는 거야.”를 외쳤다.


결과는 성공!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면 됐다.     


대회 미션은 1시간 30분 동안, 지역 농산물을 이용한 메인과 디저트 요리를 한다.  

출전용 플레이팅에 2인분을 제출하고, 심사위원 6명의 접시와 관람객 시식용 20인분까지 만들어야 한다!


요리라면 한가락한다는 대학생과 성인 전문가들이 겨루는 대회다.

모두가 ‘불가능하다.’ 했지만 ‘난 가능하다.’ 했다.

예쁘게 만들지 않아도 된다.

미션만 완수하면 된다.

큰 목표는 없었다.


난 단지 동네 밖 구경 못 해본 아이들에게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고, ‘하면 된다.’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너무도 열심히 해준 우리 아이들

그렇게 이 아이들은 동상을 받았다.


대회장 앞에서 대회 내내 동동거리며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시식용 20인분까지 마친 팀장은 자리에 주저앉아 오열을 토해냈다.

마음이 메여왔다.

디엔은 천사 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바라보아주었다.

눈물이 나왔지만 참았다.

“얘들아~ 배고프지, 밥 먹자.”

“먹고 싶은 거 다 말해봐? 다 사줄게.”

우린 아무 일 없다는 듯 밥을 먹고 시상식 단상 앞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고등학생이 된 디엔은 목표가 생겼다.

전남대, 최저 시가 목표고, 최저 시급보다 더 받는 사람이 될 거란다.

대학이 문제겠나. 목표가 생겼다는 게 중요하지.


디엔에게서 가끔 전화가 온다.

‘사랑해요~’라고 그리고 ‘선생님은 나에게 엄마 같은 존재예요~’라고


‘나도 사랑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 축제 후기

1월 13일 전국 요리대회이다. 2달 전 나와 나범이는 푸딩과 전복죽 만들기 연습을 시작하였다. 이태리 요리를 만든다. 처음에는 선생님한테 혼났다. 그리고 다음에도 혼나고 또 혼나고 또 또 혼나고 혼나는 걸 반복하였다. 어느 때 한 번은 잘했다고 칭찬을 받았다. 그때는 기분이 엄청 좋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늦게 집에 가고 선생님은 더 예민해지시는 거 같았다. 늦게까지 하고 혼나니까 기분이 안 좋아지긴 했는데 선생님들은 음식이 맛있다고 칭찬을 해주시고 힘내라고 몇몇 분들은 응원을 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우리만 힘든 것이 아니라 서진 선생님과 윤 선생님도 날이 갈수록 힘들어지신다. 항상 혼은 내시면서 힘들게 집에 가시는 서진선생님, 항상 새벽에 나와 재범이 그리를 데려다주시는 윤 선생님. 잘 버티시는 거다. 미안하고 항상 감사하다. 서진 선생님은 우리에게 화를 내시는 게 아니라 걱정을 해 주시는 거다. 우리가 못 하는 게 답답하니까 그러시는 걸 인정한다. 요리대회 하루 전 새벽 4시 30분쯤에 끝나고 5시쯤에 집에 들어가서 자고 5시 30분에 일어나 6시 차 타고 다시 학교에 나왔다. 요리대회 나갈 준비를 했다. 24시간 중에 30분밖에 못 자서 피곤했지만 하루가 남은 것이니 더 열심히 하자고 마음먹었다.
윤 선생님이 자신은 피곤할 때 책임감을 생각하고 버틴다 했다. 나도 책임감으로 버티려고 인생 처음으로 책임감 하나 때문에 더욱 열심히 했다. 학교에서 대회 가기 전 서진 선생님한테 엄청 혼났다. 심한 말도 들었다. 하지만 저건 우리를 걱정하시는 거다. 살짝 서운함과 마음이 안 좋았지만 그래도 힘을 냈다. 요리장에 도착하여 60분간 요리를 하고 30분 동안 플래이팅을 마쳤다. 나범이는 울었다. 이유는 몰랐는데 끝나고 서진 선생님이 안아주고 잘했다 고생했다 이 말에 눈물이 난 거 같았다. 이제야 나범이가 운 이유를 알 거 같았다. 생애 처음으로 큰 대회에서 인정받고 그랬다. 너무 좋았다. 선이와 내가 대회를 최초로 나가서 내년부터 다른 애들도 나갈 수 있다. 뿌듯하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가 이런 뜻인가 하고 느꼈다. 내년에 애들을 응원한다.  


디엔이의 요리대회 소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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