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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룰루랄라 Oct 28. 2022

산티아고 길에서 매일 뭐 먹어요?

리나레에서 사모스

오세브리오부터는 갈리시아 지역이다. 이곳은 그간 걸어왔던 길과 다른 건축 양식과 음식을 가지고 있다. 시커먼 돌집 창고, 큰 개, 소똥,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 지 빈 집들이 많다. 순례자 길에서의 알베르게, 바가 전부인 작은 마을들도 그간 많이 지나쳐왔지만 갈리시아로 접어들면서 흉가 같은 집들이 많이 보인다. 왠지 음산한 분위기다.


점심 편

오솔길 같은 산길을 넘어 넘어 계속되는 길. 점심이 되어 도착한 필로발이라는 마을에서 뜻밖의 한국어 메뉴판이 보인다. 스페인어로 칼도 오 소파라고 적혀 있고 그 밑에 한글로 시래기 국밥이라고 똑똑히 적혀있다.

주인에게 "칼도 오 소파"라고 하니, 스페인 여자주인은 "시래기국밥?"이라 한다. 궁금한 마음에 시켜보니 정말 감자와 시래기가 들어간 시래깃국이다. 한국 사람들이 자주 찾는지 밥과 고춧가루 통도 준다. 좀 밍밍하기는 하지만 밥과 시래깃국을 먹으니 빵과 다른 든든함이 느껴진다.


사모스로 가는 길은 다른 옵션 길이 있기도 하고, 그 이전 마을에서 대부분 머물러서 길에 사람이 많지 않다. 독일인 아빠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들이 느릿느릿 내 앞을 걷고 있다. 그들을 제치고 개울가와 작은 마을, 뒷 산 같은 작은 숲을 번갈아 가며 걷다 보니 드디어 사모스 수도원이 보인다. 웅장하면서도 외로워 보이고 많은 비밀이 숨어 있을 듯한 건물이다. 짐을 풀고 있으니 미국인 안나가 말을 건다.


"넌 어디서 왔어? 지금 사모스 수도원에 갈 건데 같이 갈래?"


그녀와 4시 30분에 있다는 수도원 투어에 간다. 5유로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데 급하게 나오느라 생각 없이 입고 나온 반바지와 슬리퍼가 마음에 걸린다. 돌아갔다 오면 시간이 맞지 않아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지 하며 들어가니 나와 너무 상단 되는 검은 옷으로 온몸을 감싼 수도사가 투어를 주재한다. 무례 스페인어로!

투어 그룹은 스페인 사람 절반, 외국인 절반 정도로 보이는 데 그런 건 아무 상관없다는 듯 스페인어 설명이 이어진다. 눈이 커지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우리가 안 쓰러웠는지 스페인 사람 중 한 명이 수도사 설명이 끝나자 영어로 번역해줘서 조금이라도 이해가 가능해졌다.


사모사 수도원은 16세기에 건축되었고 20세기 스페인 내란으로 폐허가 된 후 다시 복원했다고 한다. 2층의 화랑 벽에 성 베네딕트 신부의 삶을 묘사한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각각의 그림을 설명해주는데 그림은 그림으로 보면 되지라며 스페인식 영어 듣기를 포기하고 그림을 감상한다. 수도원의 무거운 공기, 빛과 어둠이 교차되는 복도로 그림이 묵직하다.

수도원은 엄청 넓어 보이는데 수도사가 되려는 사람이 없어 이곳에는 열두명이 있고 투어 할 때를 제외하고는 침묵한다고 한다. 어떻게 신부가 되기로 결심했는지, 수도원에서 말을 안 하고 사는 기분은 어떤 것일지 상상도 안 된다.  


저녁 편

수도원 투어를 마치고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그녀와 레스토랑을 찾아 헤매는 데 그녀를 아는 미국인들이 합해져 그룹이 계속 커진다. 그녀와 비슷한 오십대로 별거 아닌 거에도 호들갑스러운 미국인스러운 수다가 계속된다. 음식점은 다들 여덟 시부터 음식 메뉴가 제공이 된다고 한다. 그 흔한 보카디오 샌드위치마저 팔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여덟 시까지 기다려야 뭐라도 먹을 수 있는 분위기다.

수다가 끊이지 않는 이 여인네들은 바에서 기다리며 음료라도 먹겠다고 한다. 배가 고프기도 하고 소란스러움이 싫어 그 무리에서 나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곳을 더 물색해보는데 아까 길에서 본 독일이 아빠와 아들이 야외 테이블에 앉아 닭 요리를 먹고 있다. 안 되는 사교성을 발휘하며 여덟 시부터라는 데 요리를 어떻게 시켰냐고 묻자 어린 아들 덕에 특별히 해 줬다고 한다. 너무 배고프다는 표정을 지어가며 음식점에 나도 안 되겠냐 하지만 어림없다. 대신 이곳은 일곱 시부터 저녁 메뉴가 된다고 한다. 그때부터 앉아서 일곱 시를 간절히 기다려본다.


여섯 시 오십오 분이 되니 드디어 메뉴 주문을 받는다. 10유로의 메뉴 델 디아(오늘의 저녁)를 시키자 와인을 병째 내 온다. 물보다 와인이 흔하다는 스페인은 메뉴에 와인이 포함되어 있고 병으로 주는 곳도 많다. 물론 병으로 나오는 경우 와인 퀄리티는 높지 않지만 메인처럼 푸짐한 애피타이저, 메인 요리, 디저트까지 포함된 메뉴 델 디아는 가성비가 높다. 그러니 와인의 퀄리티까지 바란다면 욕심이겠지.

애피타이저로 시킨 샐러드는 오늘도 X자가 되어 나온다. 이걸 데코레이션이라고 하는 건지 길에서 본 많은 샐러드가 이렇게 나온다.   

소고기 스테이크라고 해서 선택한 메인 메뉴는 부위를 알 수 없는 질긴 맛이었지만 그래도 맛있게 뚝딱했다. 점점 더 위가 늘어나고 있다.   


* Tip : 산티아고 순례길의 음식은 다양하고 푸짐하고 맛나다.


나는 스페인 음식을 맘껏 먹어보기 위해 그리고 요리를 워낙에 못하는 덕분에 거의 매 끼를 사서 먹었다.


아침은 숙소 또는 한 시간 정도 걸은 뒤 마을에서 따뜻한 카페 콘 라체에 큰 시골 빵을 쓱쓱 썰어 버터에 발라 토스트 한 빵이나 프랑스의 크루아상처럼 섬세하지는 않으나 시골 할머니가 만든 것처럼 큼직한 크루아상을 먹는다.


오전 간식은 주문하면 바로 오렌지가 뚝 하고 둘로 갈라져 동그란 무언가에 들어가서 쭈욱 짜 지던 생 오렌지 주스가 비타민도 채워지는 듯하면서 맛도 엄청나다.  


점심은 딱딱한 바게트에 하몽, 치즈, 소시지, 베이컨, 스페인식 오믈렛에서 골라 만든 보카디요를 먹는다. 따뜻한 아침은 하루를 여는 기분 좋은 의식이었고, 점심은 몇 시간의 걷기로 물오른 식욕이지만 남은 거리를 생각할 때 부담스럽지 않은 보카디요는 종류별로 다 그렇게 맛이 있었다. 파스타, 빠에야도 있지만 점심에 먹기에는 내 경우에는 다소 부담스러웠다.


오후 간식은 시원한 맥주 한 잔! 말이 필요 없다.


저녁은 아침, 점심의 부실함을 만회하듯 메뉴 델 디아나 순례자 디너로 풍성한 밥상을 맞이한다. 와인을 곁들인 풍성한 저녁은 하루의 피로와 걸음을 따뜻하게 마무리하는 밥상이기도 하고 순례자 디너는 다른 순례자와 이런저런 대화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보통 알베르게에서 하는 순례자 디너는 전문 음식점보다 맛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다른 순례자와 함께 하는 분위기에 취해 맛있게 느껴진다.


특식으로 한 달가량을 여행하다 보니 계속 사 먹는 음식이 질릴 때도 있고 한식이 당길 때 라면을 애용했다. 라면은 언제라도 그냥 맛있다! 다른 한국분들을 보니 무게가 나가지 않는 라면 수프, 분말 국을 가져와서 아침에 뜨거운 물에 타서 먹기도 했다. 라면 스프는 여기에 있는 훌륭한 야채, 식료품을 슈퍼에서 사서 넣고 한국 맛으로 요리할 수 있으니 요리 좀 한다면 라면 스프는 매우 유용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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