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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룰루랄라 Oct 30. 2022

나가는 길

여기서 멈추자. 

 

걷고 만나고 먹는 길의 아름다움을 알려준 마이 카미노. 광활한 메세타에서 마이 카미노에 대한 깨달음을 준 이후 처음 이 길에서 느꼈던 감동과 열린 마음은 점점 일상이 되어 무뎌져갔고 여기까지 왔는데 아깝잖아, 완주는 끝까지 가는 거잖아라는 의무감으로 발걸음을 떼는 날이 많아졌다. 사리아에서 나를 괴롭히던 시궁창 냄새는 닫혀버린 오감을 의미하는 듯 했다. 이렇게 계속 가기에는 이 길이 너무 아깝다. 남은 길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이 되었을 때, 다시 오자. 그렇게 돌아올 수 있는 좋은 핑계를 만들고 이 곳에서 멈추기로 결심한다. 

   

아름다운 풍경도 한 달간 걷다 보니 감흥과 소중함이 무뎌진다. 인생도 그렇듯이. 비슷한 삶을 살면서 처음 느꼈던 소중함은 잊혀지고 무표정한 얼굴로 무감각하게 하루 하루를 살아낸다. 그럴 때는 어떻게 좋은 것만 하고 살아, 어떻게 마음이 같아, 다 그런 거야라고 자기 위안을 하고 다시 무덤덤함 속으로 들어갔다. 


수입차 십 년, 대기업 제조업 십 년, 마케터로 어느 덧 이십 년 회사 생활을 했다. 사회 생활 1막이 회사와 함께 이십 년이었다면 2막은 자립형 인생을 살아보자는 결심으로 퇴사를 감행했다. 퇴사 과정에서의 에너지 소모,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생각보다 컸다. 바로 2막을 열기 전, 사이 시간이 필요했다. 쉽지 않았던 퇴사 결정, 용감한 출발을 자축하며 떠나기 일주일 전 비행기 티켓을 끊고 무작정 산티아고길에 올랐다. 그런데 여기서 의무감으로 길을 계속 갈 수는 없다.  


이 길이 끝도 아니고 끝을 향해 온 길도 아니기에 이번 길은 오픈 엔딩으로 열어둔다.  


아침이면 새로운 길이 주는 기대감을 가지고 신나게 걸었던 날처럼,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길을 남보다 빠르게가 아닌 노래를 부르고 부엔 카미노를 외치며 뜨거운 햇살에 빨래를 걸어놓고 즐기던 오후의 여유를 가지고 걸어갈 것이다.    


"고생했어. 넌 참 멋진 사람이야! 그리고 나와 함께 해 줘서 고마워, 마이 카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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