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로우 Jun 25. 2024

3700km의 일본 종주가 끝나고

가고시마로 향하는 길


일본의 최남단 사타곶의 주차장에 있던 휴게소에는 다양한 최남단 관련 기념품들을 팔고 있었다. 자전거로도 꽤나 오는지 자전거 체인을 키링으로 만든 굿즈를 팔고 있었는데 돌이켜 보니 살 걸 그랬다. 일본 어느 곳에서도 그렇듯 소프트 아이스크림과 커피도 팔고 있었는데, 보이는 사람 모두 커피가 컵 아래에 깔려 나오는 커피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길래 나도 그것으로 주문했다. 나쁘지 않은 맛이었다.



이곳에서 날씨가 좋으면 이곳에서 야쿠시마 섬도 보인다고 한다. 주차장에는 아까 나를 제치고 지나가던 오토바이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은 나뿐인 듯싶었다. 내심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푯말을 보고 항상 그랬듯 ‘대단하다’라는 소리를 이곳에서도 듣지 않을까 싶었지만, 놀라울 만큼 그 누구도 내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었다.


벤치에 앉아 저 멀리 보이는 사타곶의 등대와 태평양 바다를 멍히 바라보며 남은 커피 아이스크림을 쪽쪽 빨아먹었다. 머릿속에는 종주가 끝났다는 홀가분함과 기쁨보다는, 여기 오면서 지나왔던 고갯길을 되돌아가야만 했기에 고생길이 열릴 것만 같은 걱정만 태산이었다.


북위 31도 기념비와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을 마지막으로 다시 돌아갈 채비를 했다. 중국으로 치면 상하이, 아프리카 북쪽 정도의 위도라고 한다. 돌아가는 길에는 ‘또 오십시오’라는 으레 관광객에게 건네는 전형적인 안내 인사가 이곳에도 입구에 적혀 있었다. 다른 곳에서라면 아무 감흥도 느껴지지 않았겠지만 그 어느 관광지를 갔을 때보다 그 문구가 와닿는 순간이었다. 물론 부정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여길 또 오라고? 절대 안와… 아니, 못 와…


사타곶의 북위 31도 기념비


시간은 오후 1시, 돌아가는 길은 30km. 이미 2시 반 배를 타기에는 글렀다. 그래도 다행히 사고가 나지 않는 이상 마지막 배 시간인 4시 반까지는 도착하지 않을까 싶었다. 맑아진 날씨와 함께 바다가 에메랄드 빛으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지만, 그 바다를 지나며 내가 돌아가야 할 길은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아까 지나왔던 지옥 같은 고갯길을 똑같이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제발 사타곶 구경을 마치고 차를 타고 돌아가는 일본인 누군가가, 안간힘을 쓰며 페달질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불쌍히 여겨서 차를 세우고 차창을 내린 뒤 “어디까지 가?”라고 말을 걸어주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결론적으로 그런 일은 당연히 일어나지도 않았지만,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신기하게도 돌아갈 때는 올 때만큼 힘들지 않았다. 올 때 오르막이 조금 더 급경사였던 걸까? 어쨌든 오르락내리락 반복되는 왔던 길을 어느새 다시 되돌아와서 평탄한 해안선을 따라가는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오전보다 새파래진 하늘에는 비행기가 지나다녔는지 흐트러진 비행권운이 찍찍 그은 낙서처럼 그려져 있었다. 이제야 조금 여유를 가지고 후련함을 만끽할 수가 있었다.



정확히 오후 3시 반에 페리 터미널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싣는 비용까지 포함하여 1300엔으로 티켓을 구입했다. 배가 오기 전까지 터미널에는 사실상 나를 제외하고는 거의 단 한 명도 오지 않았다. 뭐, 이런 외진 곳에 나 말고 과연 누가 배를 타고 왔다 갔다 할지 싶긴 하다.


불편하면 잠을 못 자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배를 타고 이부스키로 가는 내내 앉아서도 피곤함에 졸았던 것 같다. 정확히는 이부스키의 옆인 야마카와라는 곳에 도착했다. 이부스키 역시 가고시마와 함께 꽤 유명한 관광도시였지만 이번에는 가지 않기로 했다. 얼른 가고시마로 돌아가 쉬고 싶었다. 얼른 집에 가고 싶었다.



배에서 내린 뒤 가고시마로 돌아가는 전철을 타기 위해 역으로 향했다. 자전거를 캐링백에 넣기만 하면 전철을 타도 된다는 안내원의 허락을 받고, 낑낑대며 무거운 자전거를 전철에 실었다. 정말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인지 전철마저 아무도 없었다. 단 한 명, 함께 올라탄 노년의 남성이 있었는데 올라타자마자 내게 말을 걸었다. 자기는 현재 일을 은퇴하고 일본 전국을 아내와 여행하며 돌아다니고 있다며, 일본 각지에서 찍은 여러 사진을 태블릿으로 보여주었다. 외국인인 나를 배려해서인지 자꾸 영어로 내게 말을 거셨다. 저는 근데 영어보다 일본어가 편한데…


그 남성은 얼마 안 되어 두어 정거장을 가서 바로 내렸다. 남성이 내리자, 정말 단 한 명의 사람도 전철에 남지 않았다. 배에서 잠을 자서 졸리진 않았지만 지쳐서 정신을 놓은 채 전철에 앉아있던 것 같다. 가고시마에 가까워질수록 탑승객들이 늘어났다. 어느새 서 있는 사람도 많을 정도로 꽤 많은 사람들이 탑승했다. 특히 자전거 옆에 서 있던 두 여학생이 자전거 뒤에 쓰여 있는 ‘일본종주’를 보고 쑥덕쑥덕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아서 좀 부끄러웠다. 관심은 받고 싶지만 관심을 받으면 부끄러운 아이러니한 기분이다.


그렇게 1시간 여를 전철을 타고 가고시마중앙역에 도착했다. 인파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되도록 사람을 피해 부랴부랴 자전거를 들고 역 밖으로 나왔다. 캐링백에서 자전거를 꺼내고, 분리했던 바퀴를 다시 자전거에 장착했다.


먼저 숙소보다 가까운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가고시마는 제주도처럼 흑돼지가 유명하다고 한다. 저녁 메뉴는 흑돼지 돈가스. 가고시마의 흑돼지는 정말 제주도의 흑돼지 맛처럼 ‘백돼지와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맛이었다. 나의 미각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제주도 주민들도 흑돼지를 안 먹는다고 하지 않는 것처럼, 가고시마 주민들도 사실은 흑돼지를 먹지 않는 것이 아닐까?


예약해 둔 호스텔에 체크인을 하러 갔다. 어두운 카운터 옆에는 바도 함께 겸하고 있는지 주방과 테이블 등이 보였지만, 으레 있을 여행객이라던지 카운터에도 사람이 보이질 않았고 적막한 기운만이 감돌았다. 뭐야, 어떻게 체크인을 하라는 건가 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카운터에 있던 노트북에서 비밀번호를 확인하여 셀프 체크인을 하는 형식이었다.


공용 주방에는 ‘즐거운 교류의 장소’라고 쓰여 있는데, 꼭 살인사건이라도 벌어질 것만 같은 음산한 기운이 감돌 정도였다. 이런 숙소는 특징이 지나다니는 숙박객들도 표정이 어둡고 음침하다. 가고시마의 게스트 하우스 중 거의 가격이 2000엔도 되지 않는 정말 값싼 요금의 숙소였으니, 싼 만큼 오롯이 돈을 아끼고자 호텔 대신 이곳을 택했던 내가 견디고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종주가 끝나도 돈 문제는 계속된다. 아니, 앞으로 인생 내내 계속될 것이다...


주행 기록을 모두 정리하자 예상보다 700km나 더 달린 3700km가 나왔다. 글은 3000km라고 썼는데, 700km나 달린 기록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기분이 들어 아쉬웠는데, 사실 자전거를 타지 않는 사람에게는 3000km나 3700km나 다 막연하게 '긴 거리'라고만 느껴질 것이라고 생각하니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이제 가고시마에서 기나 길던 최북단~최남단의 여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서, 가고시마 지도 아래에 단 한 곳의, 아직 내가 일본에서 가보지 못한 곳이 있었다.







바로 오키나와…



https://blog.naver.com/ywhfrv/223316127001


이전 11화 48일 만에 자전거로 도착한 일본 최남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