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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로우 Jun 26. 2024

자전거와 배를 타고 오키나와로

오키나와 일주 외전 0일차

그냥 얌전히 가고시마에서 신칸센을 타고, 후쿠오카에서 배를 타고 집에 돌아가든 했어야 했는데. 어플에 찍힌 3700km라는 기록은 '300km만 더 타면 4000km인데...'라는 내 욕심을 부추기고 있었다. 검색해 보니 정확히 오키나와 한 바퀴가 400km였다. 비행기 말고도 배를 타고 가고시마에서 오키나와로도 갈 수  있었기에 자전거를 포장할 필요나 걱정도 없었다.


원래는 야쿠시마도 가고 싶었다. 지브리 사의 영화 <원령공주>의 배경지로도 유명한, 습하고 육지와 동떨어진 섬의 환경으로 인해 인간의 손이 닿지 않아 자욱하고 진한 녹음을 볼 수 있다는 야쿠시마. 다음에 오더라도 가고시마를 통해서 와야 했기에, 언제 또 내 인생에서 가고시마에 오겠냐고 생각한다면 지금이 야쿠시마에 들를 절호의 찬스였다.


하지만 하이킹 장비나 신발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을뿐더러, 내일부터 며칠 동안 당분간은 비 예보가 있었다. 비가 오면 하이킹도 쉽지 않거니와 라이딩을 하기에도 위험했다. 한 일본 소설에서는 ‘야쿠시마에는 한 달에 35일 동안 비가 온다’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맑은 날을 마주치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쉽게 야쿠시마를 포기했다. 하지만 그 반동이 내가 오키나와로 가는 선택을 하도록 만든 건지 싶다. 원래 ‘오키나와로 가거나 집으로 가거나’가 고민의 요점이었다면, ‘야쿠시마도 못 가는데 오키나와라도 가보자’라는 다른 주제로 핀트가 어긋나 버리고 말았다. 오키나와도 언제 또 오겠는가. 뭐든 지나가다가도 보고 가고자 하는 그 욕심이, 항상 계획된 미래를 걷고 있는 나를 다른 샛길로 잡아 이끌고 만다. 모두들 나를 J라고 하지만 그런 면에서 나는 P인 것 같다.





하루 가고시마에서 쉬어간 다음 날, 나는 페리 터미널에 자전거를 끌고 와서 오키나와로 가는 티켓을 구입하고 있었다. 거리가 거리이니만큼 배로도 꼬박 하루, 저녁 6시에 출발하여 태평양 바다를 가로질러 다음 날 저녁 7시에 오키나와의 나하 항구에 도착한다고 한다. 미리 터미널로 오기 전에 주변 마트에 들러서 즉석밥을 포함한 배에서 해결할 끼니를 한가득 사 왔다.



출항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한적했던 터미널에도 사람들이 점점 북적대기 시작했다. 휴게실에는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통유리 창 너머로 가고시마 건너 편의 사쿠라지마 화산이 저녁노을과 함께 조금씩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자전거를 주차하는 비용이 있는데(꽤나 비쌌던 걸로 기억한다) 캐링백에 넣으면 무료라는 말을 들었다. 아싸. 종주하는 동안 탔던 모든 배들이 자전거 비용을 받았던 것을 생각해 보면 그때도 모두 캐링백에 넣었더라면 무료였지 않았을까. 왜 여기 직원만 친절하게 그 사실을 알려주는 걸까. 어쨌든 바퀴를 분해하고 자전거를 캐링백에 집어넣었지만, 무료라는 대가로 그 무거운 캐링백을 들고 배까지 올라타야 했다. 줄을 서서 사람들이 입장했기에 무겁다고 내려두고 쉴 수도 없이 낑낑대며 승선했다.


가고시마에서 오키나와로 가는 A-LINE 여객선



여태껏 하코다테, 히로시마 등에서 탔던 배들보다 배가 정말 커서 깜짝 놀랐다. 난생 이렇게 큰 배도 처음 타보는 것 같았다.


나는 가장 싼 2등석 칸에서 머물게 되었는데, 쪼르르 일렬로 늘어져 있는 매트 위에서 이불을 덮고 자야 하는 구조였다. 불편해 보였지만 다행히도 방에 많은 사람들이 있진 않아서 사람들과 다닥다닥 훈련소처럼 붙어서 잘 필요는 없었다. 배에는 일반 승객들 외에 군인들이 정말 많이 탑승했다. 일본 군인인 자위대원들이었다. 배의 주차칸에도 군용 차량들이 잔뜩 주차되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오키나와에 주일미군이 있어서 그런 건지 싶었다.





저녁으로 아까 마트에서 사 온 야키토리와, 군고구마 사케를 먹었다. SNS에서 본 돈키호테에서 파는 제품이었는데, 일본의 고구마 소주 같은 전통주가 아니라 마치 군고구마를 갈아 넣은 듯이 꾸덕꾸덕한 술이었다. 먹어보니 정말 느끼하고 맛이 없었다. 오늘도 SNS에 속았다.


배가 크면 배가 덜 흔들릴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산이었다. 다음 날 일어나자 나는 멀미에 시달렸다. 핑핑 도는 머리를 달고 메슥거리는 속을 붙잡은 채 그저 내내 누워있거나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어제저녁 어두워서 보이지 않던 태평양 바다를 잠시 데크로 나가 바라본 것 정도였다.


끝이 없는 새파란 태평양 바다는 아름답다기보다는 미지의 공포에 가까웠다. 난간 아래를 쳐다보자, 난간에서 나자빠져서 바다에 빠진 채 나아가는 배 뒤로 빠르게 떠내려갈 것 같은 상상이 들어 내려다보기를 그만두었다. 얼마나 큰 용기가 있다면 이 무서운 풍경으로 <광장>의 명준이 중립국을 외치며 뛰어들었다는 것일까.



배는 오키나와의 나하로 바로 가지 않고, 중간중간에 있는 오키나와 제도의 여러 섬들에 잠시 정착한다. 그것 때문에 반나절은 넘게 시간을 잡아먹는 느낌이었다. 다시 배에서 두 번째 해가 저물기 시작할 때까지 멀미를 견뎌냈다. 검은 바다 위로 형형색색 빛이 나는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는 풍경이 보였다. 번화가다. 오키나와의 도심지인 나하에 이제 곧 도착할 것임이 분명했다.


전역한 지 2개월이 지났는데, 배에서 군인들과 함께 내리고 있었다. 캐링백에 싸여 있는 무거운 자전거를 낑낑대며 겨우 배 아래로 내렸다.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오키나와 제도를 여행 중이라는 여자 1명, 남자 2명의 한국인 관광객이었다. ‘KOREA ARMY’라고 대문짝만 하게 쓰여 있는 내 티셔츠를 보고 내가 한국인임을 알아본 (그에 반해 일본 군인들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지만) 사람들이, 내게 멋지다고 응원을 해주셨다. 생각해 보니 처음으로 한국인에게 응원을 받았다. 첫 고국의 말로 듣는 응원은 들어오던 이국의 언어보다도 더욱 가슴에 크게 와닿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페리 터미널에서 숙소까지는 거의 바로 코 앞이었다. 돌아다닌 일본의 여러 도시들과 비교해 보자면 오키나와의 게스트하우스들은 정말 2천 엔대 초반이 평균일 정도로 저렴한 시세를 형성하고 있었다(가장 비쌌던 곳은 후쿠오카다. 주말이면 게스트하우스 숙박비도 8천 엔을 넘어간다). 카운터에서 체크인을 하고, 도미토리 룸 패스워드를 안내받은 후 매일의 루틴처럼 배정받은 침대로 향한다.


앞서 이야기했듯 한 바퀴가 400km이므로 넉넉하게 하루에 100km씩만 탄다고 해도 4일이면 돌 수 있었다. 오키나와에서는 어떤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까... 오키나와라면 흔히 다들 떠올리는, 투명할 정도로 에메랄드 색으로 넘실대는 해안가와 모래사장을 바라보며 페달을 밟고 있는 나를 상상했다. 로망의 라이딩이었다. 고된 종주로 얼룩져 있는 수기 끝 문장 마지막에서만큼은 아름다운 힐링 라이딩으로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 물론 그 이후 그 상상은 정말 상상뿐이었음을 알게 되었지만.




https://blog.naver.com/ywhfrv/223316127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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