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일주 외전 0일차
그냥 얌전히 가고시마에서 신칸센을 타고 후쿠오카로 가서, 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어야 했는데. 3700km라는 기록은 '300km만 더 타면 4000km인데...'라는 내 욕심을 부추기고 있었다. 때마침 정확히 오키나와 한 바퀴가 400km였다. 가고시마에서는 비행기 말고도 배를 타고 오키나와로 갈 수 있었다. 그래서 자전거 포장에 대한 걱정도 할 필요가 없었다.
가까운 지브리의 영화 <원령공주>의 배경지로도 유명한, 야쿠시마에도 가고 싶었다. 언제 또 내 인생에서 가고시마에 오겠냐고 생각한다면 지금이 야쿠시마에 들를 절호의 찬스였지만 비 예보가 있어 쉽게 마음을 접었다. 한 일본 소설에서는 ‘야쿠시마에는 한 달에 35일 동안 비가 온다’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고 하는데 그만큼 맑은 날을 마주치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였다. 비가 오면 라이딩을 하기에도 위험하거니와 하이킹을 하기도 쉽지 않다. 애초에 자전거 여행이었기에 하이킹 장비나 신발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 포기로 인해 보상 심리로 오키나와를 선택해버린 것 같다. 원래 '오키나와 vs 귀국'이 고민의 요점이었더라면, '야쿠시마도 못 가는데 오키나와라도 가자'라는 결론이 되어버린 것이다. 오키나와도 언제 또 가겠는가. 뭐든 지나가다가도 보고 가고자 하는 그 욕심이, 항상 계획된 미래를 걷고 있는 나를 다른 샛길로 잡아 이끌고 말았다. 그런 면에서 모두들 나를 J라고 하지만 정확히 나는 P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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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가고시마에서 쉬어간 다음 날, 페리 터미널로 향해 오키나와로 가는 티켓을 구입했다. 거리가 거리인 만큼 가고시마에서 오키나와까지는 배로도 꼬박 하루가 걸린다. 저녁 6시에 출발하여 태평양 바다를 가로질러, 다음 날 저녁 7시에 오키나와의 나하 항구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래서 터미널로 오기 전, 주변 마트에 들러 즉석밥을 포함한 선박에서 해결할 끼니를 한가득 사 왔다.
출항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한적했던 터미널에 사람들이 점점 북적대기 시작했다. 은근히 가고시마에서도 오키나와로 많이 가는구나... 휴게실에는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통유리 너머 사쿠라지마 화산이 저녁노을에 조금씩 불그스름하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배를 타게 되면 자전거를 주차하는 비용이 있는데(꽤나 비쌌던 걸로 기억한다) 캐링백에 넣으면 무료라는 말을 들었다. 아싸. 생각해보니 종주하는 동안 배를 탈 때마다 자전거 주차 비용을 냈는데, 캐링백에 넣었으면 무료였던 걸까? 어쨌든 바퀴를 분해하고 자전거를 캐링백에 집어넣었지만, 무료라는 대가로 그 무거운 자전거가 든 캐링백을 두 팔로 들고 배에 올라타야 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들어가던 탓에 무겁다고 내려두고 멈출 수도 없어서 땀을 뻘뻘 흘리며 겨우 자전거를 들고 배에 승선했다.
여태껏 하코다테나 히로시마 등에서 탔던 배들보다 정말 커서 깜짝 놀랐다. 난생 이렇게 큰 배도 처음 타보는 것만 같았다. 나는 가장 싼 2등석 칸에서 머물게 되었는데, 쪼르르 일렬로 늘어져 있는 매트 위에서 이불을 덮고 자야 하는 구조였다. 불편해 보였지만 다행히도 방에 사람 수가 적어서 다닥다닥 훈련소처럼 붙어서 잘 필요 없이 1칸씩 띄엄띄엄 자리가 배정된 것 같았다. 배에는 일반 승객들 외에도 군인들이 정말 많이 탑승했다. 자위대원들이었다. 오키나와에 주일미군이 있어서 그런지 싶었다. 배의 주차칸에도 군용 차량들이 잔뜩 주차되어 있었다.
저녁으로 아까 마트에서 사 온 야키토리와 함께 군고구마 사케를 먹었다. SNS에서 본 돈키호테에서 파는 제품이었는데, 일본의 고구마 소주 같은 전통주가 아니라 마치 군고구마를 갈아 넣은 듯한 꾸덕꾸덕한 맛의 술이었다. 먹어보니 정말 느끼하고 맛이 없었다. 오늘도 SNS에 속았다.
배가 크면 배가 덜 흔들릴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산이었다. 다음 날 일어나자 하루종일 멀미에 시달렸다. 핑핑 도는 머리와 함께 메슥거리는 속을 붙잡은 채, 그저 내내 누워있거나 잠을 청해 멀미를 잊어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끝이 없는 새파란 태평양 바다는 아름답다기보다는 미지의 공포에 가까웠다. 난간 아래를 쳐다보자 갑자기 나자빠져 바다에 빠진 채 배가 가르는 빠른 물살에 떠내려갈 것 같은 상상이 들어 내려다보기를 그만두었다. 얼마나 큰 용기가 있다면 이 무서운 풍경으로, <광장>의 명준은 중립국을 외치며 타고르 호 아래로 뛰어들었던 것일까. 삶에 대한 고통이 극에 달하면 일종의 용기가 된다니 아이러니하다.
배는 오키나와의 나하로 바로 가지 않고 중간중간 오키나와 제도의 여러 섬들에 잠시 정박했다. 알고 보니 먼 거리라서 하루가 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정박 때문에 오키나와까지 하루나 걸리는 느낌이었다. 저녁이 되자 검은 바다 위로 형형색색 빛이 나는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는 풍경이 보였다. 오키나와의 도심지인 나하에 이제 곧 도착할 것임이 분명했다.
전역한 지 2개월이 지났는데, 배에서 군인들과 함께 내리고 있었다. 캐링백에 싸여 있는 무거운 자전거를 낑낑대며 겨우 들고 내려 오키나와 땅을 처음으로 밟았다. 누군가가 말을 걸었는데, 오키나와 제도를 여행 중이라는 여자 1명, 남자 2명의 한국인 관광객이었다. ‘KOREA ARMY’라고 대문짝만 하게 쓰여 있는 내 티셔츠를 보고 내가 한국인임을 알아본 (그에 반해 일본 군인들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지만) 사람들이, 내게 멋지다고 응원을 해주셨다. 생각해 보니 처음으로 한국인에게 응원을 받았다. 첫 고국의 말로 듣는 응원은 들어오던 이국의 언어보다도 더욱 가슴에 크게 와닿았다.
페리 터미널에서 숙소까지는 거의 바로 코 앞이었다. 돌아다닌 일본의 여러 도시들과 비교해 보자면 오키나와의 게스트하우스들은 정말 2천 엔대 초반이 평균일 정도로 저렴한 시세를 형성하고 있었다(가장 비쌌던 곳은 후쿠오카였다. 주말이면 게스트하우스 숙박비도 8천 엔을 넘어간다). 카운터에서 체크인을 하고 도미토리 룸 패스워드를 안내받은 후 오늘도 루틴처럼 배정받은 침대로 향했다.
배에서 내렸는데도 배멀미가 끝나지 않았다. 샤워를 하는 동안에도 마치 배에 타고 있는 것처럼 게스트하우스가 바다 위에서 넘실대고 있는 듯한 어지럽고 역겨운 기분이었다. 다시는 배에 타고 싶지 않았다.
앞서 이야기했듯 한 바퀴가 400km이므로 여유롭게 하루에 100km씩만 탄다고 해도 4일이면 돌 수 있었다. 이젠 내 입에서 100km가 여유롭다는 말이 나오다니. 어쨌든 오키나와에서는 어떤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까... 오키나와라면 흔히 다들 떠올리는, 투명할 정도로 에메랄드 색으로 넘실대는 해안가와 모래사장을 바라보며 페달을 밟고 있는 나를 상상했다. 로망의 라이딩이었다. 고된 종주로 얼룩져 있는 수기의 마지막 장에서만큼은 아름다운 힐링 라이딩으로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 물론 그 이후 그 상상은 정말 상상뿐이었음을 알게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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