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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로우 Jul 10. 2024

아무도 가지 않는 오키나와 북부

일본종주 37일차 : 오키나와 세소코~아다




숙소에서 아침 일찍 체크아웃 후,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츄라우미 수족관이었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오키나와 여행의 필수 코스로 꼽히는 곳으로, 여러 방송 매체에서도 많이 소개되다 보니 가보지 않은 사람도 한 번쯤 들어본 수족관이다.


사실 오사카에서 쉬면서 가이유칸 수족관을 갔는데, 굉장히 실망스러워서 이곳도 갈지 말지 어제 고민을 했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가이유칸의 관람객들은 저연령대의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 단위의 손님이 대부분이었다.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다니며 물고기들을 구경하고 있는 사이, 겨우 찾아낸 수족관 내부의 쉼터 같은 의자에서 앉아 쉬고 있는 아버지의 심정을 나 역시도 이해할 것만 같았다. 수족관은 어른이 되어버린 나에게 유치하다는 기분밖에 주지 못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점점 익숙한 즐거움을 잃어버리는 참 슬픈 일이다.



개관 시간 전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다가 8시 30분이 땡 하자마자 입장했다. 오늘도 라이딩을 서둘러야만 했다. 시간에 쫓겨 유리창 너머 유영하는 물고기들을 대충 눈으로 훑어보며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이럴 거면 왜 굳이 돈 내고 수족관을 온 거냐고 물어도 할 말이 없다.


그렇게 거의 15분 만에 수족관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유명한 고래상어 코너에 도착했다. 오히려 고래상어를 보러 오기까지, 고래상어를 제외하면 오사카의 가이유칸보다는 볼거리의 다양성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영화관을 콘셉트로 한 대형 스크린 위에 상영되는 영화처럼 압도적인 스케일을 자랑하는 이곳 츄라우미의 고래상어 코너는, 마치 이곳만을 위해 이 수족관이 만들어진 것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이곳 하나만으로도 그 다양성의 부족함을 상쇄하기에 충분했다.



압도적인 스케일의 포스를 자랑하는 고래상어는 수족관을 빙글빙글 돌며 1분마다 내 눈앞을 지나갔다. 가이유칸에서 느꼈던, ‘수족관은 어린이들을 위한 것’이라는 내 편견을 깨부술 만큼 아름다운 장관이었다. 가이유칸은 추천해 줄 수 없지만 츄라우미는 어른도 시간을 내어 갈 만하다. 인정.


이윽고 엄청난 수의 학생들이 몰려왔다. 모두 수학여행으로 온 일본 중고등학생들이었다. 우리에게도 아름다운 제주도가 있지만, 이런 수족관을 국내 수학여행으로 올 수 있다는 것에 내심 일본 학생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고등학교 수학여행은… 서울도 제주도도 아닌 전라도였는데. 왜 내 학교는 전라도를 수학여행 코스로 결정한 걸까?



어쨌든 열심히 사진을 찍고, 이곳을 본 이상 이 수족관 이상의 스케일이 아니라면 만족할 수 없는 뇌가 되어버렸다. 일본 종주의 단점이라고 하면은, 너무 많은 명소들을 지나오면서 봐버리기에, 마치 수십 종류의 맛있는 음식을 아껴가며 먹지 않고 한 번에 먹어치워 버린 것에 비유할 수 있을까.


수족관을 빠져나와서 본격적으로 오늘도 라이딩을 시작했다. 오늘도 어제처럼 먹구름이 뒤덮인, 을씨년스러운 하늘이 날 반겼다. 오키나와까지 와서 이틀째 흐린 날씨라니. 운이 지지리도 없다고 생각했다.


츄라우미 수족관 이상으로 오키나와의 북부에 오는 사람은 거의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키나와 최북단인 헤도곶으로 가는 내내, 해안선을 따라가다 보니 바다를 원 없이 볼 수 있었지만은 전혀 ‘오키나와의 바다’ 같다는 인상을 느끼지는 못했다. 북부에 오는 사람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날씨 때문일까. 둘 다일 것이다.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서 쓸쓸한 파도소리만 내 라이딩의 짝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오후 2시 즈음 오키나와의 최북단인 헤도곶에 도착했다. 커다란 비석과 함께, 많은 관광객 중에서도 특이하게도 이곳에 흥미를 느낀 듯 찾아온 몇몇 사람들만이 드문드문 걸어 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의 표정에서도 ‘와! 최북단이다!’라는 인상보다는 ‘음, 최북단이군.’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은 인상이 느껴졌다. 그들 사이에서 나는 이제는 자동화 기계처럼, 자전거를 비석 앞에 세워두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람이 별로 없는 제주도의 섭지코지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헤도곶 주차장에 있던 휴게소에 앉아 아까 마지막 편의점을 지날 때 사둔 메론빵과 음료를 먹었다. 지금까지 지나온 거리까지 포함한다면, 마지막 편의점 이후로 거의 100km 동안 편의점이 지도에 존재하지 않는다. 얀바루 국립공원으로 대표되는 이곳 오키나와 북부는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되어 있고, 동시에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찾아오지 않는 오지이다. 나 역시 오키나와를 한 바퀴 돌아야 한다라는 일주라는 사명감 따위가 없었더라면 아마 평생 오지 않았을 곳일지도 모른다.




헤도곶 이후로 차들도 거의 30분에 한 대 간격으로 지나갈까 말까 했다. 코스 전체를 통째로 나 혼자 쓰는 기분이었다. 도로에는 단지 야생 새들의 흐릿한 울음소리와 적막함만이 감돌았다. 날씨가 흐리다 보니 더욱 공기가 무겁다는 느낌을 받았다. 곰이 오키나와에 살지 않아서 다행이지, 일본 본토였더라면 벌벌 떨면서 라이딩을 했을 것이다.


도로에는 얀바루쿠이나(흰눈썹뜸부기)라고 불리는 토종새 주의문이 정말 많았다. 거의 100m 간격마다 하나씩 본 것만 같다. 불행하게도 도로를 달리는 내내 보았던 표지판 개수와 대비해서 얀바루쿠이나를 단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얀바루쿠이나는 그렇게 한국의 고라니만큼 자주 무단횡단을 하지 않는 듯하다.


바다 쪽으로 도로가 향할 때마다 드문드문 나무 사이로 보이는 바다에조차 단 한 명의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외진 산간도로를 오르락내리락 넘어서, 오후 4시쯤 '아다'라는 오키나와 북부의 정말 작은 마을에서 라이딩을 마쳤다. 이런 오지에서는 라이딩을 하다가 오후 늦게 조금이라도 어두워졌다가는, 불빛도 없는 공포의 라이딩을 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여유롭게 숙소로 도착했다.



숙소는 아고다와 같은 숙박 어플에서도 나오지 않는, 구글 지도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숙소였다. 다행히 일본 지인을 통해서 전화로 숙소를 예약했다. 숙박비가 6000엔이었는데, 저녁식사와 다음 날 아침 조식을 포함한 금액이었다. 밥은 먹지 않겠다 하니 숙박비가 3600엔으로 저렴해졌다. 내가 묵을 방은 다다미로 된 작은 컨테이너 박스 같은 곳이었다.


나는 대충 마을에 있는 구멍가게나 마트라도 가서 끼니를 때울 속셈이었다. 단, 한 가지 간과했던 것은 하필 이 작은 마을에 있는 유일한 마트가 이 날 휴무라는 것이었다... 마지막 편의점에서 산 군것질거리들은 이미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나는 자판기에서 음료수로라도 배를 채울 각오를 했다.


먼저 체크인을 하러 숙소에 왔을 때, 주인인 듯한 아주머니 한분께서 나와서 나를 맞이해 주고 방을 안내해 주셨다.


"밥은 먹을 거야?"


"네? 저 그 예약을 조식 제외하고 예약을 해서... 괜찮습니다."


"그럼 밥은 어떻게 할 건데?"


"그러게요. 그러고 보니 오늘 마트가 하필 휴무더라고요..."


"그러니까 물어본 거야. 그냥 돈 안 받아도 되니까, 저녁 먹고 싶으면 해 줄게. 아무 요리나 상관없지?"


나는 극구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지만 아주머니는 사양하지 말라면서 주방으로 홀연히 들어가 버렸다. 자전거 복장을 하고 있는 내 차림새가 꽤나 배 곪은 듯한 인상을 팍팍 풍겼나 보다. 이윽고 쇼가야키 정식이 차려져 나왔다.


나는 고개 숙여 마음 깊이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오키나와의 인심은 정말 따뜻했다. 이게 아니었더라면 정말, 자판기에서 뽑은 음료수만 마시면서 내일 편의점이 나오기 전까지는 쫄쫄 굶어야 할 처지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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