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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로우 Jul 16. 2024

오키나와 동부를 달려서

일본종주 38일차 : 아다~요나바루


일어나자마자 부랴부랴 체크아웃을 하고(사실상 키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키 반납이라던지도 없어서 그냥 짐을 챙겨 나오는 것뿐이었다) 어제 휴무였던 마을 마트로 향했다. 마트라고 검색해서 왔지만, 막상 오니 정말 영락없는 동네 구멍가게였지만 말이다. 


대충 아침으로 때울 컵라면과 앞으로 남은 오키나와 북부를 라이딩하면서 중간중간에 먹을 빵, 음료 등을 구입했다. 지도에 편의점이 검색되는 것은 알고 보니, 패밀리마트 자판기였다. 라면에 물을 받고 기다리는 와중에 나 말고도 젊은 남자 둘이 이런 이른 시간에 가게를 어슬렁대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남자 둘이 테이블 반대편에 와서 내게 말을 걸었다. 


“자전거로 어디까지 가고 있어요?”


라고 묻자 나는 왠지 젊은 남자가 주는 그 가벼운 이미지에 조금은 경계심을 느꼈다.


“지금 일본 종주를 하고 와서 오키나와 일주를 하고 있어요.”


“네? 진짜요? 와, 형 대단하시네요.”


그때 마침 여기 슈퍼의 주인인 듯한, 아까 계산을 하던 중년 남성도 뒤에서 나타나더니, 


“이 사람, 일본 종주하고 있대요.”


라고 그들이 대뜸 알려주는 것이었다. 같은 마을 사람이고, 정말 조그마하고 외진 동네라 그런지 다들 잘 아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슈퍼 주인도 갑자기 대화에 동참했다. 일본어로 왁자지껄 떠드는 분위기에 모든 말을 정확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대충 젊은 남자들은 알고 보니 바이크로 오키나와 이곳저곳을 다니고 있다고 한다. 


“기념으로 사진이나 한번 찍는 게 어때?”


얼떨결에 슈퍼에서 컵라면을 먹던 도중 모르는 사람 넷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생각해 보니 길고 긴 종주의 기간 동안에 함께 사진을 찍자는 사람이 없었다. 인터넷에서 여행기를 읽다 보면 응원을 받기도 하고 함께 찍은 사진들이 참 많이 보였는데, 왜 나는 그런 일이 없는걸까? 하고는 내 성격이 그만큼 남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조금은 뭔가 낯선 사람이 다가오는 것에 대해 경계심을 가졌지만, 알고 보니 오키나와 특유의 따뜻한 정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슈퍼를 떠나는 마지막까지 그들은 내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주었다. 어젯밤 식사를 대접해 주셨던 숙소 주인분도, 아침에 슈퍼에서 만난 이들도. 오키나와 사람들은 정이 많은 것 같다.



간혹 오늘 아침까지 머물렀던 마을처럼, 한국으로 따지면 ‘리’ 정도의 정말 작은 마을들을 제외하면 다시 정말 외진 산간도로를 밟아야 했다. 차도 지나다니지 않고 사람도 없다. 그래도 사람이 없는 덕분에 나는 부끄러울 필요 없이 목청을 높여 Saucy Dog의 <Cinderella Boy>를 부르면서 페달을 밟곤 했다. 


경사를 꽤 올라가자, 눈앞에 마치 바다처럼 드넓은 얀바루국립공원의 짙은 산림이 펼쳐져 있었다. 아열대라는 기운을 팍팍 뿜어내는, 가고시마에서도 그러했듯 이곳의 숲은 한국과 일본에 평소에 보던 숲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따지자면 '밀림'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것만 같은 오키나와의 얀바루국립공원은, 약간은 무섭기도 불가사의하기도 하고, 숲 속에는 어떤 동물이 살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다. 



오전 11시쯤 되자 거의 100km만일까, 정말 반가운 바다가 바로 눈앞에 나타났다. 그동안 아예 바다를 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산간도로에만 쭉 있다가 드디어 해수면 높이까지 내려온 것이었다.


하지만 산간도로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산길로 들어갔다가 해안가로 나왔다가를 반복하며 타던 도중, 도로변에 카페로 보이는 한 건물이 눈에 띄었다. 간판에 ‘COFFEE FARM’이라고 쓰여 있었다. 응? 커피 농장? 오키나와에서도 커피를 재배할 수 있다고?



카페로 들어가자, 다른 한쪽 출구로 저 멀리 커피콩을 재배하는 듯한 농장이 보였다. 하지만 이곳에서 직접 재배한 오키나와 커피는 무려 한 잔에 2000엔이었다. 나는 가난한 대학생 여행객이기에 망설임 없이 오키나와 커피를 포기하고 대신 메뉴 중 젠자이를 주문했다. 검색해 보면 젠자이는 일본의 단팥죽을 의미하는데, 오키나와에서는 젠자이를 주문하니 빙수가 나왔다. 보통 소바가 메밀면을 말하지만, 오키나와에서는 밀가루 면인 것과 비슷한 것 같다.


빙수로 얼얼해진 속과 함께 다시 도로를 달렸다. 도로 곳곳에 아직 치우지 않은 ‘뚜르 드 오키나와’ 대회의 거리 표지판들이 보였다. 배를 타고 오키나와에 저녁에 도착했던, 일주 출발 전날인 11월 12일에 ‘2023 뚜르 드 오키나와’가 열렸다고 한다. 하루만 더 일찍, 가고시마에서 하루 쉬지 않고 오키나와에 왔더라면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미 3700km를 밟고 온 녹초가 된 몸으로 라이딩을 제대로 하지도 못했을 것이기에 미련은 없었다.



남쪽으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마을도 점점 많아지고 곳곳의 건물들도 시야에서 늘어나기 시작했다. 100km만에 보는 첫 편의점. 함께 도로를 달리는 차량도 하나둘씩 많아졌다. 오키나와 북부를 탈출한 것이었다. 


3일 만에 출발점인 나하가 표지판에 다시 보였다. 오키나와 섬은 세로로 긴 섬이기 때문에 당장 마음먹고 섬을 가로질러가면 오늘 나하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도상 바로 옆에 목적지를 두고도, 단지 일주만을 위해서, GPS로 오키나와 섬을 한 붓으로 그리기 위해 빙빙 돌아서 나하로 가고 있는 것이었다.



드디어 도시다운 도시도 나왔다. 우루마 시라는 곳이었다. 도시를 통과해서 가던 도중, 한 오토바이를 타고 있던 남자가 내 앞을 앞지르더니 멈춰 서서는 뒤돌아 헬멧을 벗었다.


“오랜만이네!”


알고 보니 그는 이틀 전 첫날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던, 오키나와 일주를 하고 있던 서양인이었다. 딱 하룻밤을 만난 사이었지만 우리는 정말 오랜 친구처럼 반가워서 악수를 하며 인사를 했다. 바이크와 자전거의 속도도 다른데 이곳에서 만나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이곳저곳 나보다는 오키나와를 만끽하며 그는 돌아다녔을 것이다. 



저녁 6시가 되어 예약해 둔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한글로 게스트하우스라고 적혀 있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특이했다. 굳이 이곳도 따지자면 여행을 올 도시가 아닌 것 같은데, 한국인들이 오는 걸까? 시골 가정집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게스트하우스였다. 실제 주인이 이곳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지, 아들과 딸인 듯한 아이들이 거실 같은 로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도미토리 룸을 예약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 싱글룸을 안내받았다. 딱히 손님이 없어서 업그레이드를 해준 것 같아 감사했다. 


애플리케이션의 기록을 보니 첫번째 날과 두번째 날보다 더욱 긴, 130km를 달렸다. 드디어 내일이면 오키나와 일주, 아니, 완전히 일본 종주가 끝이 날 예정이었다. 눈 딱 감고 50km만 달리면 된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게 학창 시절부터 운동을 지지리도 못했던 내가 자전거를 좋아하기 시작한 이유이기도 했다. 힘들더라도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서 잠시 쉬다가 다시 타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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