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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로우 Jul 18. 2024

오키나와 일주 마지막 날의 대참사

일본종주 39일차 : 오키나와 일주 完


오키나와를 달린 지 4일째, 라이딩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오키나와의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조금 여유롭게 오전 9시가 되어서야 숙소를 나서서 라이딩을 시작했다. 작은 도시 요나바루의 거리에는 출근하는 현지인들, 등교하는 학생들이 일상을 그저 묵묵히 이어가고 있었다. 반대로 나는 2달간의 일본에서의 비일상을 이어나가며, 오늘 드디어 그 마침표를 찍을 예정이었다. 


남은 거리는 단 50km뿐이었기에 느긋하게 움직여도 늦지 않게 나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나가던 길에 도시락 가게가 보여서 도시락을 사서 아침을 해결했다. 먹을 곳이 없어 바로 옆 편의점에서 음료를 사서 대충 주차장 아스팔트 바닥에 철퍼덕 앉아서 도시락을 먹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게 힘내라며 무기차 음료를 사서 건네주었다. 일본 종주라는 문구를 보고 건넨 것이겠지만, 어지간히 주차장에 앉아 도시락을 먹고 있는 모습이 내가 봐도 여간 보기 안쓰러울 것만 같았다. 감사하게 받았다. 



해안가를 달린 것은 아니었지만, 푸른 바닷가와 모래사장이 멀리 보이는 오키나와의 남부 전경은 꽤 휴양지 느낌이 쏠쏠 풍겨왔다. 오키나와를 달린 지 4일 만에 이제야 내가 상상하던 오키나와를 보던 기분이다. 그렇다지만 바다 쪽으로 핸들바를 돌리거나, 그 어느 해변으로도 향하지 않고 국도만을 밟아 남부를 통과했다. 해변을 가든 어딜 가든, 먼저 종주를 끝마친 후에 쫄쫄이를 벗고 쉬고 싶었다. 여기 말고 어디든 오키나와라면, 나하 근처에도 해변이 있겠지.


그렇게 오키나와 최남단인 캰 곶,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 등 모두 들르지 않고 지나쳤다. 그나마 이토만이라는 곳의 미치노에키에 잠시 들렸다. 관광객인지 현지인인지 미치노에키는 목요일임에도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역시나 오키나와라 그런지 해산물을 파는 가게들로 가득했다. 나는 바다포도를 사서 먹었다. 바다포도는 처음 먹어보았는데, 때마침 엊그제 들었던 한 유튜브 영상에서 유튜버가 했던 말이 정확했다. 바다포도 맛은 그냥 바닷물이 톡톡 터지는 맛이라고.




어쨌든 미리 감상을 이야기하자면 자전거를 타기에는 오키나와보다 제주도가 훨씬 재미있다. 아니, 제주도는 동부, 남부, 북부, 서부마다 각각의 특색이 있어 지루하지 않고 정말 라이딩하기 즐겁다. 하지만 오키나와 일주는 절대 추천하지 않는다. 오키나와를 가장 비효율적으로 여행하는 방법이 있다고 하면 바로 오키나와를 한 바퀴 돌아 일주하는 여행일 것이다.


그래도 나하에 도착하기 직전에 '도요사키 해변공원'이라는 해변가를 지날 수 있어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맞아, 내가 오키나와에서 꿈꾸었던 것은 바로 이런 라이딩이었다. 11월 비수기라 해변가에서 놀고 있는 사람은 딱히 보이지 않았지만, 야자수 아래 에메랄드빛 해변가가 눈앞에 펼쳐지며 오키나와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그런 '완벽한 라이딩' 말이다.



이제 마지막 종착지인 나하까지 단 5km가 남아 있었다. 시간으로는 총라이딩만으로 거의 40일이 걸린 여행의 마지막 단 15분이었다. 대장정을 마무리할 생각에 싱글벙글해진 나는, 그렇게 기분 좋게 페달을 밟으며 해변공원을 통과했다. 









그렇게 나는… 종주가 끝나기 15분 전, 해변공원을 빠져나오는 길에서 낙차 했다. 길이 이어지지 않아 잠시 잔디밭 위를 타는데, 자전거가 그냥 휙 하고 꼭 바나나를 밟은 것처럼 미끄러졌다. 오히려 순식간에 넘어진 것이 아니라 잔디밭을 타고 지나가면서 자전거가 쓰러지면서, 동시에 관성으로 몸이 앞으로 날아갔다. 찰나의 순간 눈앞에 도로경계석이 보였다. 나는 이마와 코를 도로경계석에 그대로 찍어버렸다. 


“아… 시발…”


입에서 저절로 튀어나오는 욕지거리와 함께 뒤를 돌아보자 자전거가 맥없이 도로에 나뒹굴어져 있었다. 오른쪽 무릎은 아키타에서 다친 지 30일 만에 다시 갈리고, 땅을 짚던 손가락도 다쳤다. 


문제는 얼굴이었다. 도로경계석에 찍혀 미간과 코에 피가 나고 있었다. 어쩌면 얼굴에 평생 흉터가 남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총 39일의 라이딩에서 마지막 15분 사이에 다칠 수가, 이런 기구한 운명이 다 있을까? 그렇게 신사에서 동전을 던지며 종주동안 다치지 않기를 빌며 참배를 했는데. 미신을 믿는 성격은 아니지만 참배는 아무런 효과도 없다는 것을 몸소 증명했다.



정신없이 피가 줄줄 흐르는 다리를 움직이며 남은 라이딩을 마쳤다. 4일 전 출발했던 장소에 400km를 되돌아와 도착한 것이다. 하지만 기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일단 상처부터 해결하기에 급했다. 부랴부랴 근처 드러그스토어를 찾아 응급처치할 밴드를 구입하고, 게스트하우스엔 체크인보다 이른 시간에 찾아가 피를 씻어내기 위해 샤워만이라도 하면 안 되겠냐고 사정사정 부탁을 했다.


천만다행인 것은, 도로경계석에 얼굴을 ‘갈은’ 것이 아니라 ‘찍은’ 것이었다. 그래서 흉터가 생길 만큼 피부가 벗겨지거나 하는 정도로 그리 심각하진 않았다. 어쨌든 약을 바르고 다친 부위인 코와 이마, 그리고 다리에 밴드를 붙였다. 코에 밴드를 붙이고 다니는 건 싸움꾼 만화 캐릭터에서나 볼 법한 모습인데. 꼭 중이병 같았다. 나는 진짜 다쳐서 붙인 거지만. 


국제거리에서 팔고 있던 탄피. 가짜겠지? 관광상품으로 팔면서 비행기에 들고 탈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오키나와에 온 지 4일째가 되어서야 '국제 거리'에 와보았다. 정신은 지치고 몸은 다쳐서 그런지 영혼이 빠진 사람처럼 터벅터벅대며 거리를 걸었다. 국제 거리에는 오키나와로 수학여행을 온 듯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많았다. 아직 전역하지 않은 군대 후임에게 줄 유니크한 미군 카모 티셔츠를 선물로 샀다. 내 부대에서는 대체로 소위 '싸제'도 카모 패턴이면은 허락해 주었기 때문에. 


숙소 로비로 돌아와 태블릿을 켜서 사진들을 정리했다. 기록을 정리하니 오키나와에서 총 달린 거리는 390km. 제목은 3000km이지만 일본 종주로 달린 총거리는 4134km였다. 이제 내일이면 2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간다. 종주가 끝난 성취감, 행복한 마음보다는 그저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또 한 가지 해결해야만 할 커다란 과제가 내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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