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30분 나를 찾는 시간

by 루니

더 이상 과거의 영광에 갇혀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새벽 4시 30분의 시간.


조용히 울리는 알람소리에 시작하는 이 시간은 고요히 온전히 '나'로 있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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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저녁까지, 나는 누구의 엄마이고, 아내이며, 직장 동료였기에, 사이사이 틈새로 스며드는 '나'라는 존재가 있을 자리를 잃었던 것 같습니다.

그 작은 틈마저 다른 것들로 메워질 때면 나는 나 자신을 잊고 누군가의 계획에 맞춰 살아가는 톱니바퀴가 되는 기분에 사로잡혔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내 하루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시간표로 채워진 하루가 점점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출근해서 새벽에 퇴근하던 시간.

아이들의 웃는 모습은 아침에 잠시 보던 시간이 다였던 그 시간을 지나 회사를 쉬고 있는 지금.

아이들을 등원시킨 후 산에 올라가거나, 하천을 따라 걸으며 온전히 내 것으로 채워지는 시간을 보내다 보니 현재 발걸음 하나하나, 바라보는 풍경도 내 눈과 내 마음으로 보낸 이 시간과 감정은 나에게 감사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난 후 나 자신은 항상 뒷전이었습니다.

10대에는 부모님이 정해준 길을, 20대는 사회가 요구하는 길을 걸었습니다.

30대는 순리대로 결혼을 하고 아내라는 역할이 추가되었죠.


그 이후 태어난 아이는 엄마라는 책임이 되어 30대의 직장 내 커리어와 싸우다 40대가 되어서 한꺼번에 울컥 터져 나왔습니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면서 승진을 멀어졌습니다.

받은 적 없는 편의를 이유로 승진이 누락된 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즐거움에 나만의 신념을 지키던 진취적인 나는 어느새 톱니바퀴 부품이 되어 하루하루를 버텨내듯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아이의 아픔 때마다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습니다.

아이의 아픔이 내 탓인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회사 일정에 겹쳐 미뤄지는 것에 대한 원망이 섞여 눈물로 왈칵 쏟아지곤 했습니다.

이런 나 자신이 너무 이기적으로 느껴져 더욱 괴로웠습니다.


누구나 겪는다는 내 외침.

이런 마음을 털어놓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늘 비슷했습니다.

"다 그렇게 살아."

"왜 너만 유독 별나게 구냐."

"엄마가 되면 원래 그런 거야"


주변의 차가운 반응 앞에서 나는 더욱 원망과 미안함이 섞인 복잡한 감정에 위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 자신이 자꾸 없어져가는데, 나도 나를 찾고 싶다고 내면에서 아우성치는데, 이를 이해해 줄 사람 하나 없다는 현실이 너무나 서러웠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추천을 받아 이직한 회사에서도 나는 나 자신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서도 자신감을 잃은 채 한없이 자책만 했습니다.

'한심한 나'

'자격없는나'

'이런 나를 실망하면 어쩌지'

이런 목소리들이 내 안을 소극적으로 만들어갔습니다.

한때 당당했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요. 그 목소리에 짓눌려 도망가고 싶을 때마다,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새벽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화상 모임에서 조심스럽게 속마음을 꺼내놓으며 내 안의 상처받은 어린아이를 치유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계속해서 속삭이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아이가 내 발목을 잡고 있어.'

이런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죄책감이 밀려왔습니다. 아픈 아이 곁에 온전히 있어주지 못하는 내 현실이, 그리고 그런 상황을 원망하는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내 안의 아픈 나

그런 감정이 들 때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들고 외로워서 관심받고 싶었지만 번번이 외면당했던 어린 시절의 '나'가 내 안에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을요.


부모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그리고 남이 정한 삶의 방향을 틀림을 입증하기 위해 혼자서 알아서 살아야 했던 그 시절, 그 아이가 나도 모르게 내 아이에게도 같은 강인함을 바라며 몰아붙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고분고분하지 않아서 잘 못 살 거다'란 친척들의 압박과 '여자'라는 결혼 해서 '편히 살라'는 부모님의 말이 틀림을 입증하기 위해 더 열심히 더 멋지게 나 자신을 포장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나도 스스로 내 방향을 입증하기 위해 살아왔는데, '너도 그렇게 강하게 살아가야지!'라며 사랑한다면서도 냉정하게 그리고 조급하게 아이를 바라보며 과거의 상처를 전의 시켰습니다.


그런 나의 아픔을 들추고, 내 삶의 엄마라는 역할에 매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상황들이 싫어 나는

도망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가끔 생각합니다. '엄마를 퇴사하고 싶다고'

그리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회사가 아닌 나를 바라보게 도와줘서 고맙다고'


아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나를 바라보지 못하고 남이 정한 길에 맞춰 '열심히'살았을 테니까요.

아이의 아픔 덕분에 나의 아픔 어린 시절을 바라보게 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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