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테토스와의 대화
"우리는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자신의 해석에 영향을 받는다."
– 에픽테토스
같은 말을 듣고도 왜 어떤 날은 괜찮고 어떤 날은 기분이 좋지 않을까?
오래 전, 팀 회의에서 BM 구조 및 방향성에 대한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었다.
"게임에서 친구랑 같이 방을 만들 수 있는 BM 상품을 만들면 어떨까요?"
이 피드백에 대한 재미있겠다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나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기분은 그대로 숨기지 않고 날 선 말투로 내뱉고 말았다.
"친구와 게임을 같이 하는데 왜 과금을 지불해야 하나요. 저희 게임 장르 특성상 친구와 활동을 권장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색하며 건넨 말은 회의실 분위기를 차갑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분위기는 회의가 끝나도록 계속 어색하게 남아 있었다.
일주일 후, 비슷한 상황이 또 있었다.
UI/UX 기획안에 대한 피드백에서 BM에 대한 내용이 나왔다.
"게임에서 자신만의 공간임을 보여줄 수 있는 깃발을 적용하는 건 어떨까요? 깃발 꾸미기를 BM으로 확장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처음엔 '길드가 아닌데 개인이 깃발을 가질 이유가 있을까?' 싶다가 자신의 공간을 표현하고 이를 상징하는 요소는 유저들에게도 좋은 반응이 보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 이 의견 좋네요. 이 부분을 UI에 적용해서 노출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러자 그 의견을 낸 팀원의 기분이 밝아지는 것이 그대로 느껴질만큼 회의는 부드럽게 마무리되었다.
유사한 상황. 동일한 피드백을 준 대상인데, 첫 번째는 예민하게 받아들였고, 두 번째는 조언으로 들렸다.
무엇이 달랐을까?
그날 밤, 이 차이가 궁금해서 생각하다 만난 에픽테토스의 말이 마음에 박혔다.
"왜 같은 피드백인데 어떤 날은 예민하게 받고 어떤 날은 괜찮을까?"
에픽테토스의 대꾸: "사건이 너를 흔드는 게 아니야. 그 사건을 네가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너를 흔드는 거지."
순간 이해했다.
팀원 말 자체는 중립적이었다.
하지만 첫 번째는 "내 경험과 내 지식을 무시한다"로 해석했고, 두 번째는 "더 나아질 수 있는 기회"로 해석했다.
사건은 같았지만, 내가 붙인 의미가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게임을 운영하다 보면 유저들의 반응이 흥미롭다.
같은 밸런스 패치에 대해서도 어떤 유저는 "망했다"라고 하고, 어떤 유저는 "좋아졌다"라고 한다. 객관적 수치는 동일한데 각자의 플레이 스타일에 따라 해석이 다른 것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일어나는 사건 자체를 바꿀 수는 없지만, 그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해석의 주인은 사건이 아니라 나였다.
그날부터 나만의 '해석 전환 루틴'을 만들었다.
힘든 일이 생기면 3단계로 기록:
사건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을 바라보고 기록하기
예: "'구체화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현재 해석 (내 자동 반응)
예: "내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안 해석 (다르게 볼 수 있는 관점)
예: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도록 돕고 있다"
예: "내가 놓친 부분을 짚어주고 있다"
처음엔 억지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어색했다.
하지만 연습하다 보니 놀라운 변화가 있었다.
같은 상황에서도 덜 상처받게 되었고, 오히려 배울 점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후 알게된 로블록스라는 게임에서는 방을 만들어 친구와 함께 할 수 있는 아이템 상품이 있었다.)
그 이후 비슷한 피드백을 받았다.
"이 부분에 이걸 적용하면 어떨까요? 그럼 즐거운 파티 분위기가 날 것 같아요."
이번엔 즉각적으로 생각했다. '아, 내가 어떻게 해석할까?' 그리고 선택했다.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 하지만 그냥 지적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요?"
에픽테토스의 대꾸: "조언이 나쁜 게 아니라, 네가 그렇게 해석하는 거야. 해석을 바꾸면 감정도 바뀌어."
물론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만 해석하라는 건 아니다.
때로는 분노도, 슬픔도 필요하다. 하지만 에픽테토스가 말하듯, 우리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해석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아는 것. 그리고 해석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훨씬 자유로워질 수 있다. 사건을 바꿀 수 없을 때도, 나는 여전히 내 감정의 주인일 수 있다.
최근 당신을 힘들게 한 일이 있나요? 그 일을 다르게 해석해 보면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댓글로 나눠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