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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라떼 Dec 05. 2023

길가다가 사연있는 여자가 되다

눈물많은 F가 죄인은 아니잖아요

난 눈물이 참 많은 사람이다.


감정적인 성격이라 남들에겐 별 것 아닌 일에도 쉽게 감동하고 쉽게 상처받고 쉽게 좌절한다. 너무 슬픈 내용의 영화나 드라마는 잘 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걸 틀면 대성통곡하고 있을 내가 충분히 상상이 가니까. 선뜻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집으로> , <7번 방의 선물>이라던가 최근에 김혜자 선생님께서 열연하셨던 <눈이 부시게> 같이 대놓고 '너를 울리겠다'라는 느낌이 드는 내용이면 보지 않는다. 예고편만 봐도 눈물이 나길래 본편을 보는 걸 포기했다.


원래부터 눈물이 많았던 건 아니다. 사실 학창시절엔 피도 눈물도 없는 성격에 더 가까웠다. 집안 식구들에겐 한 없이 까칠한 장녀였고 모든 것이 나를 우선으로 돌아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그런 내가 나이를 먹고 나니 완전 변해버렸다. 눈물은 왜 그리 시도때도 없이 흐르는지. 이게 우울증인가 싶을 정도로 힘들었던 나날들. 이직, 결혼과 동시에 고향을 떠나 시작했던 서울살이가 나를 이렇게 만들어 버린걸까? 




예전이라면 쿨하게 넘겼을 한 마디 한 마디가 심장을 콕콕 찔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대방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텐데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받아들였을까. 더 이상 뒤로 감을 테이프도 없었는데. 나는 그렇게 돌리고 또 돌렸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때의 기억이 기록된 회상 테이프를. 머리 속에 한 번 그렇게 테이프가 재생이 되기 시작하면 길을 걷다가도 괜시리 울컥 속상했던 일들을 떠올리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는 했다.


그렇게 나는 길을 가다가 사연있는 여자가 되었다.


한 때는 이런 나의 성격을 고쳐보려고 노력했다. 너무나 감정적인 내가 싫어서. 솔직하게 감정이 표정에 드러나는 내가 싫어서. 나의 감정은 눈물이 되고 그것이 누군가에겐 나를 공격할 약점이 되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내가 우는 모습이 지겹다는 말을 누군가의 입을 통해 돌고 돌아 내 귀에 들릴 때는 정말 죽고 싶었다. 너무 잘 우니까 한 번 울려보고 싶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화가 났지만 그 사람에게 따지진 못했다. 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떻게 보였던 걸까? 




그래서 쿨해보이는 사람이 참 부러웠다. 누구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멋져보였다. 나도 맺고 끊는 걸 잘하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해서. 따지지도 못하고 혼자서 방구석에서 눈물이나 흘리고 있는 스스로도 못 견디겠어서 후회했던 지난 날이었다.


이젠 이런 나를 인정하기로 했다. 감정에 솔직한 내가 좋다. 누군가에겐 당황스러운 나의 모습일지라도. 억지로 나를 바꿀 필요는 없지 않을까. 누구에게 어떻게 보여지기를 생각하기 보다 내가 스스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가 더 중요할 테니까.


눈물이 많은게 죄는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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