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커니 Sep 26. 2022

스타트업 5개월 차에 '총괄'로 고속 승진하다.

기뻐해야 하나? 기분 나빠야 하나? 어리둥절 김커니


회사는 대대적인 변화를 겪었다. 내부 실무적인 일을 해오던 두 명의 직원이 한 달 사이에 회사를 떠났다. 한 명은 사직 한 명은 임신 휴직이었다. 분명 대표님에게 멘붕이 왔으리라.... 물론 임신 휴직하는 직원은 모두 예상하고 있었으며 빈자리를 채우려고 날 고용했다. 다른 한 직원의 사직은 어느 누구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마무리가 순조롭다거나 매끄럽게 느껴지지 않았기에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인지했다. 그렇게 회사는 크나큰 변화를 겪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잘 돌아갔고 대체 인력이 들어왔다.


직급은 부대표. 작은 회사이지만 여느 회사와 다름없이 부대표라는 직함으로 오는 사람에 대한 불안감으로 높은 관심과 함께 부정적인 의견도 잠깐 돌았지만 곧 일단락이 되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나도 아는 분이었고, 대표님께 오래전에 그분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상상력이 풍부한 야심 있는 분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부대표님은 오자마자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하는 뉘앙스를 풍겼다. 점심이 제공되는 회사가 어디에 있느냐는 여론을 조성하는 듯하며 이제 점심은 각자 먹어야 한다는 얘기도 하고, 재택 하는 날에는 줌을 켜고 재택 할 것을 요구하는 등 회사 내부에 불편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회사 점심은 제공되고 있으며, 줌 재택은 시작한 지 일주일도 안돼서 종료다. 부대표님은 회사 내부 직원들을 믿지 못했음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대표님이 왜 그분을 부대표로 모셨는지 알 거 같았다. 그렇게 약간은 껄끄럽게 맞추어가는 상황이 지속되오며 안정권으로 돌입한다고 생각할 쯤에 나는 회사의 콘텐츠 기획 총괄이라는 어마어마한 업무를 맡게 되었다.


매주 수요일 콘텐츠 기획 회의를 하는 날이다. 언제나 그렇듯 콘텐츠 주제에 대해 논의했고 블로그와 인스타 발행과 컨펌에 관한 얘기를 하게 되었다. 보통은 내가 콘텐츠를 준비하면 위에서 그 내용을 확인했고 간단한 피드백을 거쳐서 발행되는 과정으로 일은 진행된다. 즉, '선 피드백, 후 발행'이었지만 새로 온 부대표님은 '선 발행, 후 피드백'으로 변경하고자 했다. 위에서 피드백이란 명목으로 내 글에 직접적으로 손을 대었던 전과 비교하면 나로서는 훨씬 기분이 좋은 일이긴 하지만 누구의 필터도 거치지 않은 내 글과 이미지들이 바로 공개된다는 부담감 더 커졌다. 게다가 기존 진행 방식은 그 누구의 책임도 물을 수 없는 상황이며, 부대표로서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로 신경 쓸 것이 많다는 이유로 나에게 콘텐츠 기획 총괄을 맡으라 하니 당황스러웠다. 


작은 규모의 스타트업이긴 하나 그래도 총괄이면 어느 정도의 압박감이 존재한다. 시간제로 일하는 나에게 총괄이란 역할을 주다니 나를 신뢰하거나 부대표님이 콘텐 관련 업무에서 힘을 빼고 싶다는 인상을 받았다. 스타트업이 체계가 없다는 말을 실감했고 이래서 내가 총괄을 맡는 게 가능한 구조라고 생각했다. 결국 나에게 책임을 지우려 한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배하며 총괄이란 역할이 내키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러한 명목들로 인해 내 일에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았다. 거창하게 총괄이라 이름 붙였지만 결국 내가 하는 일은 블로그 포스팅과 인스타그램 피드 업로드이다. 어찌 보면 책임을 진다는 거 자체가 내 콘텐츠에 대한 신뢰와 관련이 있기에 내가 총괄이 아니어도 그 책임은 온전히 나에게 있는 것이었다. 일의 퀄리티나 스타일 역시 총괄이든 총괄이 아니 든 변함이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총괄을 맡은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았고 여전히 누군가의 컨펌을 바란다. "컨펌 없이 일하니 편하지 않아요?"라는 질문에 "부담스럽다."라고 말하는 소심함을 보이는 최고령 신입으로 혼자서 일을 진행하는 자신감이 아직 부족하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스타트업이라 해도 회사에서는 나를 신뢰하기에 5개월 만에 총괄 역할을 주었으리라... 이쯤 되면 나 자신을 믿어도 되겠다 싶다. 이제는 좀 더 자신감 있는 최고령 신입이 되자. 아니 더 이상 신입이 아닌 최고령 능력자 팀원이 되자. 

이전 07화 낙하산이란 스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