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모습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국립 오케스트라 단원인 한 남자의 독백이 이어진다. 희곡이다. 나는 그가 소개하는 브람스 교향곡 제2번을 틀어놓고 책을 읽었다. 그는 콘트라베이스 악기야말로 최고의 악기이며 <깊이에의 강요> 책에서 말한 그 깊이가 있는 악기라는 장엄하고 긴 주장을 펼친다. 그러나 그런 악기를 연주하는 자신은 정작 여자를 사귀지 못하는 현실을 한탄한다. 세라는 소프라노이며 콘트라베이스랑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콘트라베이스는 마치 자신의 방에서 감시하는 듯하며 때로는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어머니 같기도 하다. 또한 "콘트라베이스는 음악과 인생이 똑같이 땅 속으로 꺼져 버릴 것 같은 위협을 느끼는 절대적인 무의 경지를 죽음의 상징으로 분연히 투쟁하는 겁니다"라는 표현도 한다.
나는 다시 디터스도르프의 마장조 협주곡을 들으며 다음 장을 넘긴다. 이제 콘트라베이스는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악기가 되었다. 거추장스러워 넘어지기도 한다. 그는 맥주를 마시며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오케스트라 사회에서 만연한 계급 제도를 폭로한다. 음악은 예술이고 예술은 순수한 정신이며 인간적이어야 하는데 음악을 하는 현실은 정치적이다. 콘트라베이스는 가장 낮은 계급이다. 또한 오케스트라에 속한 공무원이라는 생활은 안정적이지만 밀폐공포증을 유발하는 말할 수 없는 공포를 느끼게 한다.
예술은 너무 이상적이라 어렵다. 그러나 이상적이지 않으면 기술이 된다. 그 사이를 방황하는 예술인의 고뇌를 말하는 것 같다. 비단 예술인이 아니어도 사람은 누구나 이상을 꿈꾼다. 더 행복하고 더 아늑한 무언가를 꿈꾸지만 현실은 의무감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 현실을 부정하면 나락으로 떨어지기 십상이다. 거대한 콘트라베이스가 마치 주목받지 못하는, 그러나 삶을 살아가는 성실한 우리의 모습 같다.
독일에서 가장 많이 상연되는 연극이다. 우리나라에서 상연될 때 꼭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