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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리요 Oct 30. 2022

서른 살에 엄마 아빠와 친해지기

#11. 집으로

원래부터 있는 것들의 이유를 찾기는 쉽지 않다. '인간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정답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나는 평생 가족의 이유를 고민했다. 가족이라는 게 왜 있는 건지, 나는 가족이 필요한지, 가족이 도대체 뭔지 알 수 없어서 한참을 헤매고 아파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할수록 상처로 뒤덮였다. 그게 힘들어서 차라리 가족이라는 게 없었으면 하기도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원하는 모양의 가족을 갖지 못해서 가족을 부정하고 있었다. 원래부터 있던 것인데, 마치 없는 것처럼 산 것이다.


원래부터 있는 가족의 이유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애써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냥 나에게 가족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갖고 태어난 이 가족과 한평생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그뿐인 일이었다.


등잔 밑에 있는 보석을 평생 찾아 헤매다가 끝내 찾았을 때, 방황한 30년이 아쉽고 분하겠는가 아님 기어코 찾아낸 그 보석이 반갑겠는가. 나는 너무 반가워 기뻐 뛰고 춤을 추었다. 나는 지금 가족과 우리 집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엄마, 아빠와 공감하며, 때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굳이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그저 그들을 바라보며 즐거워한다. 무엇이든 좋아하면 예뻐 보이는 법이다.


가족의 이유가 무엇일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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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집으로


나는 아빠를 닮아 아침 새처럼 부지런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곧장 일어난다. 이불을 정돈하고 거실로 나가서 한참 전에 일어나 운동하고 소파에 앉아있던 아빠에게 "안녕-" 하고 인사를 한다. 부엌으로 가 가스불에 물을 올려두고 엄마에게 인사를 한다. 식물 방에 가서 식물 등을 켠다. 이제 우리 집은 식물이 하도 많아서 아예 베란다를 식물 방으로 쓴다. 아빠는 식물을 두어도 별 말을 안 한다. 내가 청소를 잘 안 하면 참다 참다 아주 가끔, 식물 방바닥에 흙 좀 치우라고 한 마디를 하는 정도다.


식물을 좀 살펴본 후 아빠 옆에 가 앉는다. 그리고는 엄마 아빠의 이야기에 끼어든다. 어제는 무슨 일이 있었네, 뭘 먹었네, 내가 일터에서 만나는 어린이들처럼 엄마 아빠 옆에서 재잘재잘 떠든다. 이런 나를 볼 때마다 애들 마음이 이해가 되어서, 엄마 아빠가 내 이야기를 듣듯 일터에서 나도 어린이들 이야기를 그냥 듣는다. 나처럼 수다쟁이인 아빠는 요즘 이슈며 경제 관련 이야기를 줄줄 전해준다. 엄마랑 나는 아빠 덕에 앉은자리에서 세상 소식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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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되면 운동을 간다. 운동을 하고 돌아오면 엄마가 점심을 차려 주신다. 자취할 때는 바빠서 찌개든, 덮밥이든 단품요리만 해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집에서 먹는 엄마 밥상에는 반찬만 8개가 올라온다. 엄마는 매주마다 일주일치 메뉴를 정해서 알려준다. 그 덕에 매일 잠들 때면 내일 먹을 점심 메뉴를 기대하면서 잔다. 점심에는 보통 엄마랑 같이 밥을 먹는다. 밥을 먹고 나서 설거지를 할라 치면 엄마가 할 테니 두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요즘 젊은 애들 너무 살기 힘들어-"라고 하는데, 그 말이 썩 위로가 된다. 엄마의 삶도 순탄하지만은 않은데.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오늘 하루도 더 열심히 살아야지 다짐한다.


내가 하는 일은 목공 비슷하다. 밤늦게 작업이 다 끝나고 나면 바닥에 못과 나사가 가득이다. 그게 별것 아닌 것 같아도 피곤한 와중에 그걸 일일이 주우려고 하면 은근히 힘들다. 어느 새부터 매번 엄마 아빠가 와서 도와준다. 중년의 엄마 아빠가 허리 굽혀 못을 줍는 게 짠하지만 그래도 도움은 받고 싶어서, 서서 못 줍는 도구를 샀다. 엄마 아빠는 그걸 '줍줍이'라고 부르며, 때마다 "리요! 오늘 작업하는 날이지? 이따 열 시까지 줍줍이 하러 갈게."하고 말한다. 그 말이 고된 노동의 피로를 덜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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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에는 아파트 바베큐장 대여를 신청해서 밖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온 가족이 바비큐를 하는 날만을 고대했다. 아빠는 로켓와우로 잔뜩 시켜놨던 눈꽃 삼겹살을 꺼내고, 엄마는 생협에서 온갖 채소와 과일을 쓸어왔다. 나는 10년 동안 캠핑하며 갈고닦은 실력으로 앞장서서 고기를 굽고, 동생은 연신 휴대폰 카메라를 터트렸다. 하늘은 파랗고, 바람은 약간 차가웠으나 햇볕이 뜨거웠다. 내일이 세상의 마지막 날이라 할지라도 더없이 행복했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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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방에 침대를 놓았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부모님 집에 커다란 침대를 놓아봤자 나갈 때 번거로울 거라 생각해서, 요를 깔고 자고 있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내 마음이 이렇게 바뀌게 될 줄 정말 몰랐다. 휑한 방에서 지내던 일 년 사이에 이 집에 정이 들어버렸다. 언제, 어떤 이유로 나가게 되든 지금은 이 집이 내 집이라는 생각이 들어 침대를 마련했다. 점차 짐이 늘었다. 소파도 놓고, 달력도 걸고, 내 취향의 사진들과, 친구들이 전해준 엽서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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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누굴 만나든, 이토록 온 마음을 들여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가족이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마음을 주고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 회사에서 만나는 직장 동료, 연애 상대, 모두 무척 가깝게 지냈다가도 별별 이유로 헤어질 수 있는 대상들이다. 가족은 조금 다르다. 갖고 태어났든, 선택해 결혼을 했든, 그 외 어떤 방식으로든 가족이 되면 쉽사리 헤어질 수가 없다. 그게 참 좋더라.


좋아도 함께, 싫어도 함께 하려 발버둥 치다가 결국 사랑을 조금 배우게 되었다.


그나마 가족이었기 때문에 서른 살이 되어서야 엄마 아빠가 조금 친해질 수 있었다. 가족이 아니었다면 벌써 손절했을지 모른다. 물론 어떤 이유로 만났건 진저리 나게 싫으면 누구라도 손절칠 수 있다. 그러나 가족은, 어찌 됐건 한 번쯤은 더 고민해보는 대상이지 않겠나.




서른 살에 엄마 아빠와 친해지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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