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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리요 Oct 27. 2022

서른 살에 엄마 아빠와 친해지기

#9. 우리 엄마가 달라졌어요

'난 엄마를 실망시키는 게 두려워. 내가 아는 엄마는 연약하기 때문에, 내가 잘못 건드리면 무너질 것 같다는 불안감이 어릴 때부터 너무 컸어. 그래서 속으로는 엄마한테 상처 줄법한 말이 생각나고도, 꾹 참아 삼키고 지나갈 때가 많았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라면서는 내 행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실망시켜야 할 수도 있다는 걸 배웠어. 내가 누굴 억지로 실망시키거나 상처 주려고 하지 않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만으로 어쩔 수 없이 상처 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거든. 그래서 그냥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하기로 했어. 그게 갈등을 일으키고 엄마를 서운하게 만들더라도 나는 어쩔 도리가 없었어. 내 인생을 이끌어가는 주체는 나니까. 어떤 일에 건 내가 제일 기쁘고, 내가 제일 아프니까. 난 엄마 아빠와 생각이 달라. 내 생각이 엄마 아빠 생각과 달라서 상처를 준다고 해도,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결정할 거야. 엄마 아빠가 내 인생의 주요한 사건을 결정하게 두고 싶지 않아. 그랬다가 혹 뭐가 잘못되기라도 해서 엄마 아빠를 탓하고 원망하고 싶지 않아. 내가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을 탓하기 시작하면 난 정말 불행해질 거야. 어릴 때부터 엄마가, '너도 나중에 커서 내 나이 돼봐라. 똑같을걸.' 하고 말하면 반발심이 들면서도 은근한 기대감이 있었어. '내가 정말 엄마처럼 될까?' 그런 생각을 했어. 근데 아니었어. 난 자랄수록 엄마랑 달라질 뿐이었어. 나랑 엄마는 다른 사람이야.'


- 엄마에게 보낸 장문의 카톡 메시지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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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우리 엄마가 달라졌어요


엄마 아빠와 피 터지는 말싸움을 한 이후로도 좀 더 노력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며 부모님을 이해하려고 해 봤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아빠는 여전히 아빠의 스타일을 고수했다. 나는 식물을 무척 좋아하는데, 아빠는 집이 더러워진다며 식물을 놓지 못하게 했다. 운동 기구를 놓겠다는데, 자리 차지한다며 바로 차단했다. 


엄마는 얼굴만 마주쳤다 하면 소개팅 자리를 주선하며 결혼을 강요했다. 엄마 아빠랑 사는 것도 이렇게나 힘이 드는데, 또 다른 어떤 인간과 산다 한들 내 인생이 덜 피곤할까. 연애는 엄마 아빠랑 사는 것보단 덜 피곤하긴 했다. 그 어떤 인간관계도 부모와의 관계만큼 지치진 않았다. 이 스트레스로 가득한 삶을 벗어나기 위해서 이젠 부모님을 피하는 방법밖엔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도 방 밖에 나가지 않고 조용히 방에 있다가, 출근할 때가 되어서야 슬며시 나가 밥만 먹고 출근했다. 아빠는 나랑 성격이 비슷해서, 두 번 다시 나와 불꽃 튀는 일이 없게 하려고 거리를 두는 것 같았다. 엄마는 서울로 출퇴근하는 평일엔 외할머니댁에서 지내고, 휴일에만 본가에 와서 지냈다. 엄마가 돌아오는 주말엔 나가서 종일 운동을 하거나 친구 집에서 자고, 엄마가 다시 할머니 댁으로 가면 집에 들어왔다. 하루는 주말에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한강에서 혼자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었다. 엄마한테 영상통화가 왔다. 


"어디야?"

"한강."

"뭐해?"

"자전거 타."

"혼자?"

"응."

"왜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들어? 집에는 안 들어와?"

"엄마가 자꾸 결혼 얘기해서 집에 가기 싫어."

"...... 엄마가 결혼 얘기해서 집에 오기 싫어?"

"응. 아빠랑 재밌게 놀아- 안녕-"


통화를 끊고 가만히 생각하니 내가 지금 이 나이에 부모랑 사는 게 불편하다고 시위를 하고 있나 싶었다. 좀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니 오은영 선생님이 '모든 부모는 겉으로는 어떻든, 대개 자식을 사랑한다.'라고 하시던데, 엄마 아빠의 행동들도 나를 사랑해서 하는 행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엄마의 전화 한 통에 마음이 싱숭생숭해져서 집에 들어가 엄마를 마주했다.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데 엄마가 말을 걸어왔다.


"결혼은 왜 안 한다는 거야?"

"그냥 이런저런 이유가 있지. 아이 그리고, 하기 싫은 거 안 하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해?"

"그래도 무슨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내가 엄마한테 왜 이런 거 일일이 설명해야 돼- 엄마 나한테 관심도 없잖아. 엄마는 그냥 내가 엄마 원하는 대로 해줬으면 싶지,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그런 것도 모르잖아. 엄만 나랑 친하지도 않잖아."


엄마에게 핀잔을 주려고 한건 난데, 내가 꺼낸 말에 내가 울컥했다. 목구멍이 울렁거리는걸 겨우 눌러 참고 밥을 커푸커푸 먹었다. 엄마는 말이 없었다. 


-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엄마는 출근해 없고 카톡이 와 있었다. 


'엄마가 너한테 왜 관심이 없어. 엄마는 네가 어떤 생각하는지 알고 싶은데.'


눈 뜨자마자 읽은 카톡이 이런 내용이라니. 열이 올라서 답을 보냈다. 카톡을 보내자마자 1이 사라졌다. 엄마가 읽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 마구마구 카톡을 날렸다. 하고 싶은 말을 카톡으로 와다다다 보내는데, 엄마가 자꾸 내가 한참 앞에 보낸 말에 뒷북을 치는 것처럼 답을 보냈다. 속으로 '뭔 소리야. 자꾸 뒷북을 치고 있어!'라고 생각하며 다시 쉴 틈 없이 카톡을 보냈다. 내 카톡 폭격을 비집고 엄마가 짧은 톡을 보내왔다.


'빨라'


'뭐지?' 하고 가만히 기다리는데 조금 뒤에 또 톡이 왔다.


'너무빨라', '천천히'


눈을 가늘게 뜨고 보다가 그 짤막한 말의 의미를 이해한 순간,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생각지도 못했다. 엄마는 나랑 속도가 달라서 카톡을 빨리 치지도 못하고, 빨리 읽지도 못하는 거였다. 내가 무자비하게 카톡을 보내니 정신이 없던 엄마는 그걸 따라 올라가서 읽다가, 내가 새 카톡을 보내면 또 맨 하단으로 끌려내려가고, 이제 뭘 좀 읽고 이해해서 답을 보내려면 그게 또 한참 걸리는 거였다. 황급히 보낸 엄마의 짧은 톡에서 휴대폰을 멀리 들고 허둥지둥하는 엄마의 모습이 읽혔다. 나는 손가락을 멈추고 한참 울었다.


-


다음 주말이 되었다. 엄마가 집에 왔다. 아침에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는데 엄마가 또 말을 걸었다.


"너는 누구랑 친해?"

"갑자기? 나는 뭐, 00랑, 00랑...... 친한 친구 한 열 명쯤 있지. 왜?"

"엄마도 너랑 친해지고 싶어서."

"...... 갑자기?"

"엄마는 너랑 안 친하다며-"

"그렇지...... 우리가 친하진 않지. 엄마도 뭐, 가족들이랑 다 친하진 않잖아."

"가족이면 다 친하지 왜-"

"그래? 난 아니야. 가족이라도 친한 사람 하고만 친하지, 안 친한 사람하고는 안 친해."

"그래?"

"응. 초록이(동생)하고는 친해. 아빠는 사회에서 만났으면 친구 안 했을 타입이지."


엄마는 또 말이 없었다.


-


또다시 다음 주말, 그리고 또 그다음 주말. 엄마는 나를 만나는 날마다 다른 주제로 말을 걸어왔다. 


"네가 지난번에 가족도 친해야 친하지, 안 친한 사람하고는 안 친하다고 했잖아. 네 말 듣고 가만 생각해보니 나도 그렇더라고. 그럼 어떻게 해야 친해져?"

"너는 뭐 좋아해? 다음에 너 좋아하는 거 먹으러 한번 가보자."

"네가 지난번에 너는 엄마하고 다르다고 했잖아. 그러고 보니까 그렇더라. 너도 나랑 다르고, 나도 우리 아빠랑 다르더라."


엄마의 숱한 질문에 결혼에 대한 질문은 더 이상 없었다. 엄마는 달라지고 있었다. 나를 궁금해하고, 나랑 친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평생 나만 엄마를 짝사랑한다고 생각하다가, 우린 도무지 안 되겠다 싶어서 포기하려던 차였다. 지치고 아픈 이 관계를 이제 그만 털고 싶었는데, 엄마가 나를 붙잡으니 놓을 수가 없었다.



엄마가 달라지면 덩달아 달라지는 건 꼬마 금쪽이 뿐만이 아니었다. 

나 역시 엄마가 나에게 관심을 기울이자 거짓말처럼 마음이 녹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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