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엄마 아빠도 남이야
학교 다닐 때 '내일이 세상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뭘 하겠나?'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혼자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여행을 떠날 거라고 답했다. 많은 애들은 "가족과 함께 삼겹살이나 구워 먹을래요."라고 답했다. 나는 그 답을 듣고 이상하게 짜증이 났다. 그 답변들이 내 열등감에 불을 질렀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세상이 멸망하는 날 오순도순 모여 앉아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마지막 행복을 함께 누릴 가족이 없었다. 나는 가진 적도 없고, 가질 수도 없을 것 같은 가족을 가진 애들이 부러웠다. 부러워 배가 꼬여서, 혼자 고깃집에 가서 2인분을 구워 먹었다.
-----
아침에 눈을 떠서 휴대폰을 확인하니 카톡과 부재중 전화가 한가득이었다. 새삼 내가 또 한해를 열심히 살았구나 싶었다. 서른이 되었다. 말로만 듣던 그 서른이 나에게도 찾아왔다. 빨간불 가득한 카톡을 일일이 읽으며 마음속에 감동을 새겨 넣었다. 내가 태어난 날을 기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실로 기쁘고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한해를 잘 살아낸 나를 칭찬하며, 내년 한 해도 열심히 살아야지 다짐했다. 축하 메시지와 함께 온 카톡 선물들에 배송지를 입력하면서 들떠 있었는데, 엄마가 갑자기 훅 들어왔다.
"그거 어차피 다 네가 뿌린 돈이잖아."
울컥했다. 물론 내가 뿌린 돈은 맞다. 대부분 내가 경조사를 챙기는 사람들이 내 생일에 축하 메시지와 선물을 보내준 거니까. 그러나 마음을 전한 일을 그저 '뿌린 돈'이라는 단어로 함축하니 내가 주고받은 마음들이 짓밟힌 것 같아서 속상했다. 단어 하나하나에 예민한 나 같은 사람은 엄마의 저런 말을 흘려듣지 못한다.
"그렇긴 한데, 그걸 그냥 돈이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지. 이게 다 마음이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해서 이렇게 챙겨주는 거잖아."
"다 남인데 뭘 너를 소중하게 생각해."
-
엄마는 이모들과 카톡으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우리 집이 이사한 지 얼마 안돼 집들이를 하려는데, 코로나가 걱정된다고 이모들이 안 오겠다 했단다. 엄마는 그런 이모들의 반응에 서운해하며 '내가 지들 이사 갔을 때 돈을 얼마나 보냈는데.'를 시전 했다. 그 말이 내 귀에 꽂히는 순간, 나는 기회를 포착한 하이에나처럼 엄마를 헐뜯었다.
"엄마 삭개오*같아. 왜 그렇게 돈 밖에 몰라?"
(*삭개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유대인 고리대금업자로, 주위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높은 이자를 쳐 부자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돈밖에 모르는 삭개오를 싫어했다. 키가 작은 삭개오는 예수를 보기 위해 나무 위에 올라갔다가 그의 눈에 띄어 그를 집에 초대하게 되고, 그 뒤로 마음을 바꾸어 고리대금업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게 된다.)
나는 엄마에게 상처를 주고 방으로 들어왔다. 엄마는 말이 없었다.
출근했다가 저녁에 집에 돌아오자 엄마 아빠가 나를 불렀다. 왠지 찜찜했다. 낮에 한 그 말이 생각나면서, 왜 삼켜야 할 말을 입 밖으로 뱉었나 생각했다. 엄마 아빠는 거실에 앉아 있었다. 서늘한 기운이 돌았다.
-
"너 사업한다고 빌려 준 돈 언제 갚을 거니?"
"2년 뒤에 갚기로 했잖아. 갑자기 지금 그 얘기를 왜 해."
"네가 남이면 내가 너한테 왜 돈 빌려줘? 왜 잘해줘? 나 남한테 그렇게 안 해!"
약한 부분이 건드려진 엄마가 나를 깎아내렸다. 부모님 돈을 빌려 자영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부담감이 한 짐인 하루하루를 살고 있던 나였다. 이미 손을 벌린 것부터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는데, 돈 갚으라는 독촉을 받자 견딜 수 없이 궁색해졌다. 당황한 마음은 공격으로 표출되었다. 엄마 아빠 집에 살면서 말 못 한 불만이 쌓여있던 차에 자존심이 건드려지자 참지 못하고 비난을 뱉어냈다.
나: "그것 가지고 생색 좀 그만 내! 엄마가 빌려주겠다고 해서 준거잖아. 이미 준거잖아! 빚쟁이도 아니고, 왜 이미 빌려준 돈 가지고 사람을 괴롭혀? 갚을 거야, 갚는다고! 그리고 엄마 아빠가 남이 아니면 뭔데? 나 아니면 다 남이지. 나는 나 아니면 다 남이야! 엄마가 나는 아니잖아?"
엄마: "그래, 갚어! 다-갚어! 지금 갚어!"
나: "왜 이랬다 저랬다 해! 2년 뒤에 갚기로 했잖아. 왜 그렇게 책임감 없이 행동해. 엄마가 결정한 거잖아. 엄마가 그렇게 하기로 한 건데, 왜 엄마 감정 때문에 나를 힘들게 해. 그렇게 일관성 없이 하는 거 싫다고!"
아빠: "넌 뭐 얼마나 그렇게 잘났냐? 뭐가 그렇게 다 마음에 안 들고, 그렇게 불편해? 사람마다 다 틀린 거지!"
나는 울분을 토하며 소리쳤다.
나: "틀렸다는 말 좀 그만해! 틀린 게 아니고, 다른 거야. 왜 자꾸 틀렸다고 해!"
아빠: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넌 뭐가 그렇게 잘났어? 네가 뭔데 나를 가르치려 들어?"
나: "아빠도 모르면 배워야지! 아빠가 틀린 거잖아...... 틀린 거랑 다른 건, 다른 거라고....."
아빠: "그래서 뭐 어쩌라고! 마음에 안 들면 나가!"
나: "나갈 거야! 안 그래도 돈만 모으면 나갈 거라고!"
엄마: "그러니까 빨리 결혼을 해-"
우리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이 빛의 속도로 마음에 맺혔지만, 이 말까지 꺼내면 엄마 아빠에게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힐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다시 고스란히 내가 상처 입을 게 뻔했다. 나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기로 했다.
엄마 아빠와 잘 지내고 싶은데 그게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늘 그래 왔듯 내 방에 박혀 오롯이 혼자 그 안에 있었다. 그 안에서 꽁꽁 싸매고 아무도 듣지 못하게 숨죽여 오랜 시간을 울었다. 그러나 마음이 아무리 어린아이 같다 하더라도 세상은 서른 살을 어린아이로 보지 않아서, 나는 결국 울음을 머금은 채 밖으로 나왔다. 출근을 하고, 운동을 하고, 밥을 먹고, 책을 읽었다.
-
마음이 너무 힘들 때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서 하소연을 했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너희 부모님 그렇게 안보이시는데......"라고 말했다. 무엇이든 겉으로만 봐서는 다 알 수 없는 법이다. 친구들과 통화를 하며 실컷 엄마 아빠 험담을 하고 나면 속은 시원했다. 그런데 친구들의 말은 들을수록 위로가 되기보다 좌절이 되었다. 다들 가족관계가 좋아 보였다. 우리 집만 이상한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이상한가? 나만 이렇게 가족이 힘든가? 우리는 역시 안 되는 걸까?'하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영국인 친구와 통화를 하는 중에 뜻밖에 위로를 얻었다.
"Hey, you know what? Sometimes I feel really bad when I'm being with in this family. Because...... I'm like, I feel like I am a sharp stone. You know, there is a person who do not get along with family members. That's me. I alway feel like I'm alien in this group."
(야, 그거 알아? 나는 가끔 이 집안에 있는 게 너무 힘들어. 왜냐하면 나는...... 나는 뭐랄까, 모난 돌 같아. 왜, 그런 사람 있잖아. 가족 안에서 유독 잘 못 어울리는 사람. 그게 나야. 난 항상 이 집에서 이방인 같아.)
"Yeah- I know. Me, too. You're kinda black sheep."
(어, 뭔지 알아. 나도 그래. 너는 말하자면 '검은 양'이네.)
"Black what?"
(검은, 뭐?)
"A black sheep. There's a unique person in each family. It is it."
(검은 양. 가족마다 한 명씩 유별난 사람이 있어. 그런 사람을 검은 양이라고 해.)
"Yeah, you're right. I am the black sheep."
(네 말이 맞아. 내가 바로 이 집의 골칫덩어리야.)
영국에서는 가족마다 한 명씩 있는 말썽꾸러기를 '검은 양'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친구는 본인도 자기 집의 검은 양이라고 했다. 그 말이 어찌나 위로가 되던지. 무려 '가족마다' 있다고 하니 이게 내 문제만은 아니구나 싶었다. 집에 한 명쯤은 있는 검은 양, 그게 바로 나였다. 그 말을 들은 이후로 조금씩 마음이 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