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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리요 Oct 25. 2022

서른 살에 엄마 아빠와 친해지기

#7. 다름에는 끝이 없더라

엄마 아빠도, 나도 모두 장성한 어른이니 이제는 우리가 같이 살아도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런데 다 커서 온 어른이 부모님 집에 살면 그거 만큼 괴로운 일이 없더라. 내가 어릴 때보다 더 달라진 우리는 도무지 결합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었다. 이미 각자 갈 길로 가고 있던 자식과 부모가 만나 같이 사는 것은 우리 전쟁의 방아쇠를 당기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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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다름에는 끝이 없더라



"위이이이이이이잉-!"


시끄러운 청소기 소음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빠가 청소기를 돌리는 소리였다. 시계를 보니 아침 7시가 안 된 시간이었다. 빨라지는 심박수에 맞춰 솟구치는 짜증과 함께, 아빠가 새벽마다 문을 두드려 깨우던 대학 시절이 날카롭게 떠올랐다. 도대체 누가 이 시간에 청소기를 돌린단 말인가! 당장 방문을 열고 나갔다.


"뭐 하는 거야?! 이 시간에 청소기를 돌리면 어떡해!"

"으잉? 뭐 어때?"

"다들 잘 시간이잖아. 아파트 공고문 안 봐? 주간 활동 시간은 보통 10-8시라고. 지금 다들 쉴 시간인데, 청소기를 돌리면 민폐지!"


신경질적으로 아빠에게 쏘아붙인 뒤 방에 들어와 이불을 팩 덮었다. 놀라 튀어 오른 내 심장, 또렷한 정신. 잠은 이미 다 달아나버렸다. 방문 밖에서 엄마가 "아유 그러니까 왜 이렇게 아침부터 청소기를 돌려 애 자는데 깨게- 이 시간에 청소하면 안 된대잖아요, 이따가 해."하고 조용히 한 마디를 덧붙이는 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이번으로 몇 번째인지. 10년이 지났어도 아빠는 여전히 본인 마음대로다.


아빠는 밤이건 낮이건 더럽다 싶으면 청소기부터 돌렸다. 곤히 자다 깨는 것도 짜증 났지만, 그보다 아파트에서 우리 집이 소음의 근원지가 되는 게 불편했다. 우리가 단독주택이면 뭐라 안 하겠는데, 무려 아파트 꼭대기층에 사는 사람이 그러니 속이 터졌다.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바로 아래층 사람이 타면 괜히 눈치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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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갑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빠랑 대화를 하면 뚝뚝 끊기기 일쑤였다. 내가 엄마랑 부엌 식탁에 앉아 무슨 대화를 하고 있으면, 열 걸음쯤 떨어진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아빠가 맥락에 맞지 않는 말을 갑자기 시작했다.


"걔가 그런 말을 하는데 뭔가 기분이 좀 그런 거야. 그래서 내가-"

"리요! 요즘 사업은 잘 되니?"


...... 대략 이런 식이다. 아빠랑은 대화 자체가 잘 안 됐다. 국수도 면발이 불면 뚝뚝 끊겨 들어 올릴 수가 없질 않나. 들어 올려야 먹을 텐데. 아빠와 나의 대화는 마치 불어 터진 라면 같았다. 다 끊기는데 무슨 대화를 이어 간단 말인가? 아빠와의 대화에는 다음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할라 치면 말을 끊고 자기 할 말만 할 뿐 아니라, 사고방식이나 가치관도 너무 달랐다.


예시 1)

나: "옆 사무실 사람이 좀 불편해. 맨날 내가 뭐만 하면 이러지 마라, 저러지 마라. 아니 자기만 쓰는 건물도 아니고, 같이 쓰는 공간인데 왜 그렇게 나를 닦달하나 모르겠어 정말."

아빠: "그 사람 여자지?"

나: "응?"

아빠: "그 사람 여자냐고. 여자들이 좀 그런 게 있어."


예시 2)

나: "이거 꿀 되게 맛있다. 산거야?"

아빠: "아빠 친구 누가 갖다 준 거야. 그거는 사는 거랑은 완전히 틀려. 향부터 틀려."


아빠는 이상한 데서 성별을 거론하거나, 다른 것을 틀렸다고 말하곤 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들이었다. 대체 거기서 성별이 왜 나오며, 다르다와 틀렸다를 왜 구분하지 않고 쓰는 것인지. 아빠야말로 틀렸다,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라고 말하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받아들이자, 아빠랑 좀 잘 지내보자.'라는 생각으로 말을 아꼈다. 지금 내가 무슨 부장님 하고 이야기 하나 싶을 때가 많았다. 아빠가 말하면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스무 살에나 스물아홉 살에나, 여전히 '아빠의 집'에 살고 있었다.


-


이렇게 아빠의 집에서 조용히 묻혀 살아가나 싶었는데, 엄마가 서서히 전쟁의 서막을 올렸다. 서른을 코앞에 둔 자식에게 결혼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만나는 사람은 없냐, 왜 안 만나는 것이냐, 결혼할 생각이 없냐, 애는 언제 낳으려고 하냐 등 명절날 친척집 가면 저 건넌방에서나 들리던 그 레퍼토리가 날 위해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나마 이 집에서 엄마가 말이 좀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맹목적으로 뭐 하나에 꽂힌 인간과는 대화가 안 되는 법이다. 결혼에 꽂힌 보수 기독교인 중년 여성...... 부장님 같은 아빠만큼이나 어려운 상대였다.


엄마를 마주하는 식탁에서 매일매일 100분 토론이 이뤄졌다. 아니, 이건 토론도 아니었다. 각자가 가진 결론이 뻔해서 전혀 타협점이 없는 논쟁이었다. 틀림과 다름은 확실히 달랐다. 틀림은 정해져 있는 것이고 끝이 있는 것이지만, 다름은 그렇지 않다. 다름에는 끝이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의 공격에 지쳐 집 밖으로 돌기 시작했다. 운동을 다니고, 친구를 만나고, 술을 마시고, 친구 집에서 자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다가 서른 살 생일을 맞은 날,

켜켜이 쌓인 스트레스에 폭주한 내가 기어코 방아쇠를 당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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