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리요 Oct 19. 2022

서른 살에 엄마 아빠와 친해지기

#6. 컴백홈?

[네이버 어학사전]


home: (특히 가족과 함께 사는) 집[가정] / 집의, 가정의

house: (명사) 집, 주택, 가옥 / (동사) 살 곳을 주다, 거처를 제공하다

- 예문: The government is committed to housing the refugees(정부는 난민들의 거처 마련에 몰두하고 있다).




-----

#6. 컴백홈?


동생, 나, 친구 이렇게 셋은 따뜻하고 아늑한 우리 집, '보금자리'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함께 맛있는 음식을 해 먹고, 운동을 가고, 감정을 공유하고, 마음을 나누는 일상이 행복했다. 우리가 사는 그 집이 내 집이고, 그게 내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받고 태어난 것이 아닌, 100% 내 의사에 의해 만들어진 나의 가족. 나는 그 집이, 그 가족이 좋았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내 가족을 꾸린 지 1년 만에 급속도로 퍼지는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는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같은 직장에 다니던 나와 친구는 일자리를 잃었다. 먼저 다른 일자리를 구한 친구는 용인으로 이사를 나갔다. 나도 머나먼 경기도에서 자영업을 시작했지만, 동생을 홀로 남을 것을 생각하니 차마 '보금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부모님은 일터 근처에 월세든 전세든 구하는 게 낫지 않냐고 조언하셨다. 그러나 정든 '우리 집(home)'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매일 같이 머나먼 통근길을 오가기가 힘들었지만, 언젠가 우리가 함께 이사해 다시 우리 집을 꾸릴 날을 고대하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 수개월 출퇴근으로 지쳐갈 무렵, 엄마가 어떻게 지내는지 보고 싶다며 사무실에 찾아왔다. 



뭐 맛있는 거 먹겠냐길래 멀리서 왔으니 엄마 먹고 싶은 것 먹자고 했는데, 굳이 나 먹고 싶은걸 고르라 했다. 엄마에게 좋은 음식을 대접하려는 마음에 초밥을 먹겠다고 했다. 대충 근처에 있는 초밥집에 들어갔다. 엄마랑 마주 앉아 음식을 시키고 기다렸다. 엄마랑 단 둘이 앉아 밥을 먹는 건 처음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엄마를 마주하니 어색했다. 음식이 그리 늦게 나온 것도 아닌데, 어색한 공기가 견디기 힘들어서 괜히 "음식이 왜 이렇게 늦게 나오지?" 하고 쉰소리를 뱉었다.


다 먹고 나오는데 엄마가 카드를 내밀었다. 내가 계산하려고 초밥 먹자고 한 건데! 기어코 계산하는 엄마 얼굴을 바로 보지 못하면서 속으로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백반 먹자고 할걸 그랬다.'라고 생각했다. 일 하러 들어가 봐야 한다고, 엄마 이제 가라고 하는데 엄마가 덥석, 내 손을 잡았다. 순간 얼어버렸다. 



'뭐지? 왜 갑자기 손을 잡지? 엄마가 손을 잡으면 어떻게 해야 하지?' 



남들이 들으면 말도 안 된다고, 오버하지 말라고 할 법한 생각이 머릿속을 빠르게 돌았다. 엄마가 손을 잡으니 정말, 너무 어색해서 어째야 할 줄 몰랐다. 엄마 손을 뿌리쳐야 하는 것인지, 나도 덩달아 꼭 잡으면 되는지,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허리부터 목을 타고 턱까지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그러다 엄마 장단에 맞춰주지 않으면 엄마가 상처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대한 엄마가 잡은 그 모양을 유지할 정도로 악력을 조절하며 뚝딱뚝딱 걸었다. 


엄마가 가고 나서 홀로 사무실에 들어왔다. 우두커니 불 꺼진 사무실에 서서 손을 쥐락펴락 했다. 

따뜻하고 뭉툭했던 엄마 손이 생각났다. 눈물이 울컥 났다. 엄마가 그리웠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엄마 아빠가 사무실 근처니 잠깐 나와 같이 밥 먹자고 연락을 해왔다. 무슨 일로 또 여기까지 오셨나 하고 나갔는데, 집을 계약하고 오는 길이라고 하셨다. 고된 출퇴근을 걱정하신 부모님이 결국 서울 본가를 두고, 연고도 없고 와 본 적도 없는 경기도 어디에 집을 구하셨다. 줄곧 부모님을 등지고 내 집, 내 가족을 찾아 헤맸다. 그런데 지금은 부모님이 나와 가족을 이루고 집이 되어주려고 나를 따라온 모양새였다.


이사를 선택한 부모님의 용기와 헌신이 반갑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나는 '부모님 집(house)'이 내 집일 거라는 확신이 없었다. 내가 예전에 살았던 그 집은 엄마 아빠 집이었지 내 집이 아니었으니까. 뾰로통한 마음이 삐죽거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참에 부모님과 잘 지내보고 싶기도 했다. 엄마 손길이 필요했고, 아빠 조언이 필요했다. 내 마음은 사춘기 청소년의 마음처럼 요동쳤다.


'괜찮을까? 내가 부모님 집에 살아도 정말 괜찮을까? 

엄마 아빠 집이 내 집이 될 수 있을까?'


-


내 일터와 가까운 곳에 집을 구한다는 명목으로 부모님이 이사를 하셨다. 미혼이고 자가가 없는 나는 자연스레 부모님 집에 흡수되었다. 이사 오는 날, 일 나가기 전에 온갖 짐으로 정신없는 새 집에 들어가 대충 어디에 뭘 놔달라 요청을 하고 출근을 했다. 퇴근을 하니 집이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뒷구르기를 하고 봐도 이건 아빠 집이다 싶은 깔끔함이었다. 


현관에서 가장 가깝고, 안방에서 가장 먼 내 방 문을 여니 새집 냄새가 훅 풍겼다. 방에는 옷장 하나 덩그러니, 선반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어차피 금방 나갈 건데 뭘 더 놓나 하는 심정으로 가장 필요한 것만 놓았기 때문이다. 텅 빈 바닥에 요를 깔고 누웠다. 아직 온기가 돌지 않아 바닥이 차가웠다. 


'어차피 금방 나갈 텐데. 내 집 생기면 침대도 놓고, 소파도 놓아야지.'


이불을 코 끝까지 올려 덮고 몸을 웅크렸다. 그러자 부모님 집에 살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면서 실감이 났다. 




'차갑고 어색한 이 집으로 다시 돌아왔구나.'

이전 05화 서른 살에 엄마 아빠와 친해지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