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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리요 Oct 14. 2022

서른 살에 엄마 아빠와 친해지기

#5. 어라? 우리가 좀 가까워졌나?

엄마 아빠와 조금 떨어져 지내니 좋았다. 서로 좋은 것만 공유하고, 나쁜 건 볼일 없는 사이. 부모님과 나는 깔끔하고 유쾌한 관계가 되어 있었다. 그 무렵 직장 생활이 무척 힘들었다. 그러나 자주 볼 일 없는 엄마 아빠에게는 내색하지 않았다. 말해봐야 해결될 것도 없다고 생각했을뿐더러, 오히려 여러 군말이 붙어 피곤해질게 뻔했다. 자랑할만한 것만 보이고, 아픈 면은 보여주고 싶지 않은 상대. 만나면 웃고 떠들고 사진 찍다가, 해가 지면 애틋한 인사를 나누며 각자의 집으로 흩어지는 사이. 나는 엄마 아빠와 거리두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스물아홉 생일을 맞은 해, 코로나19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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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어라? 우리가 좀 가까워졌나?


생일날만 해도 확진자 수가 4명이었다. 그러더니 며칠 만에 갑자기 불어 천명, 이천 명...... 전염병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만큼 급속도로 확산되는 알 수 없는 질병 탓에 교육 서비스업종인 우리 회사는 무급휴직을 시작했다. 첨엔 일단 지켜보자더니 한 달, 연이어 두 달.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자 회사는 결국 사직을 권유했다. 평생 교육서비스업을 하기 위해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공이며, 자원봉사며, 경력이 다 그쪽인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방황했다. 


갈피를 못 잡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배달 알바를 시작하고, 취미로 했던 운동을 좀 내세워 체육관에 파트 강사로 취직했다. 그러다가 어찌어찌 타고 온 소식통에 괜찮은 사업거리가 될법한 일을 발견했다. 그런데 사업을 시작하려면 보증금과 권리금이 필요했다. 엄마 아빠한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난데, 돈 있어?"

"돈? 갑자기 무슨 돈?"

"아니, 나 뭐 하고 싶은 일이 하나 생겼는데, 돈이 많이 필요해서."


나는 머쓱해하면서 너무 구구절절하지도 않게, 그렇다고 너무 없어 보이지도 않게 설명을 이어갔다. 엄마는 돈이 어딨냐고 대꾸했다. 나는 약간 짜증 섞인 말로 엄마를 나무라듯, "아, 없으면 말어!"하고 끊었다. 전화를 끊고 눈을 질끈 감으며 쪼잔하고 궁색한 나를 속으로 욕했다. 얼마 안 가 아빠한테 다시 연락이 왔다. 


"너 뭐 돈 필요해? 얼마나 필요한데?"

"몇천만 원 정도인데...... 꼭 빌려줘야 하는 건 아냐. 그냥 괜찮아 보여서 해볼까 했어."

"...... 너 자신 있어?"

"자신? 막 자신 있고 그런 건 아니지. 그냥 해보고 싶어. 운동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일로 돈 벌고 싶어서."

"자신 없으면 어떻게 해- 그렇게 큰돈 들어가는 건데."

"아이, 됐어! 뭐 이런 거 저런 거 따져- 그냥 하지 마. 안 할래."

"아이...... 그럼 저기, 지금 엄마가 얼마 정도 돈이 있어. 그거 어차피 너 결혼할 때 주려고 한 건데, 미리 해."


-


평생 떼써본 적이 없었다. 그럴 만큼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그런데 내 생활이 힘들어지니까 결국 엄마 아빠 마음 불편하게 만들어 돈을 뜯어냈다. 이렇게 까지 하게 된 데에는 그간 엄마 아빠한테 쌓였던 서운함, 내 안에 자리 잡은 상처가 키운 열등감, 그리고 이제 다시는 정말로 엄마 아빠와 한 집 살 일 없게 내 집 장만하여 완전히 독립해내려는 욕망이 컸다. 


감염병 여파로 거리두기를 하느라 극성인데도, 돈 많은 주변 친구들은 꾸역꾸역 국내여행이라도 다니며 포스트를 올렸다. 어떤 친구들은 새로 산 외제차를 올리고, 또 다른 누구는 부모님이 해주신 신혼집에 들어가기 전에 리모델링을 한다며 포스트를 올렸다. 


'나도 어릴 때 엄마 아빠 등골 빼먹을걸. 그때 빼먹었으면 지금 나도 쟤들처럼 자가도 있고, 자차 몰고 여행도 다닐 텐데. 난 뭐한다고 부모한테 안 기대려고 용을 쓰다가 이제 와서 능청맞게 손을 벌리는 처지가 됐을까.'


속으로 곯아봤자 나만 쓰린 일이었다. 이제라도 부모한테 기대자,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일어난다는데 나도 좀 그래 보자 라는 생각으로 에라 모르겠다 하며 건 전화였다. 근데 이렇게 냉큼 빌려준다 하다니! 게다가 아빠는 괜찮을 것 같다며, 잘해보라는 덕담까지 얹었다.


'비 온다고 우산 좀 갖다 달라는데 칼 거절하던 엄마 맞아?'

'내가 뭐 한다고 하면 그게 돈이 되겠냐면서 부정적인 말부터 하던 아빠 맞아?'


너무 응원해줘서 오히려 어색한 엄마 아빠의 반응에 힘입어 사업자 등록을 하고 임대계약을 마무리지었다. 내 인생에 이런 날도 있나 싶었다. 엄마 아빠의 응원을 한 몸에 받다니! 심지어 잘 되던 가게도 문 닫는 코로나 시국에 이토록 큰돈을 투자받다니. 혼자 잘 살아보겠다고 나갔다가 다 잃고 들어온 탕자가 된 것 같아서 엄마 아빠에게 미안하고, 지금까지 내가 너무 선을 긋고 살았나 하는 생각에 홀로 멋쩍었다. 


엄마 아빠랑 좀 잘 지내볼까 하는 생각이 슬그머니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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